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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비극을 애도하다 30일의 금요일에 우리는 복수형을 숙고한다                                                      레나 칼라프 투파하                                                      조희정 옮김  국경에, 한 무리의 기자들, 희생되는 타이어들이 우리 뒤에서 불타고, 피크닉 텐트 아래에선, 가족들의 장례식, 우리가 모여서, 우리가 그 아슬아슬한 위기를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나를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자 지구에서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질주하는 기도와 맞닥뜨린다, 수의 같은 습한 공기에 구멍을 내며 외쳐대는 낭송 소리들. 우리는 망상 같은 안부의 말들과 맞닥뜨린다, 포옹들 사이사이 초현실적인 '평화가 우리 위에 임하길', 발사..
조지에게(윤지양) 조지에게                                           윤지양 나 사실 신을 사랑해 그가 만든 여자와 남자와 개와 눈물을 사랑해 아니더라도 사랑해눈곱조차 사랑해실핏줄을 사랑해 눈 없는 것도보이지 않는 것도너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다고 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데일찍 깨닫지 못했어너를 뺀 모든 걸 사랑한다는 걸 알아절뚝거리며 가는 이도 사랑해 어느 날 손톱마냥 부러진 이도 오르는 계단도 높은 빌딩도 치솟다 무너질 문명도 증오하고 사랑해 거울에 얼핏 비친 빛나는 구석을 증오했어 커튼과 함께 말린 따듯함과 창문의 투명함이 식을 때까지 바라봤어 곧 아침이 올 거야 두드림 뒤에 따라올 가여운 존재를 실은 너무 사랑하고 있어 =====「조지에게」는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인『기대..
착한 소설 김유나, 『내일의 엔딩』(창비, 2024).착한 사람이 착한 내용을 착하게 쓴 소설이다. 평온하고 담담한 문장이 우선 눈에 띈다.요즘 소설에 넘실대는 인스타그램식 경구도 거의 없다. 그저 쓰러져 누워 버린 아버지를 6년간 간병하면서겪고 느끼고 생각 나는 것들을,특히 자기 삶의 궤적들을 천천한 속도로 회고하고 확인할 뿐이다.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영화엔 러닝타임이라는 게 있어. 네 속도만 고집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다른 시간도 좀 따라가 보고 그래라."자기의 속도로 세상을 질주하는 게 아니라, 러닝타임, 즉 유한성(현실)을 받아들이고,다른 시간, 다른 속도와 섞여서 살아가는 것,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성장이고 성숙일 테다. 단단한 디테일이 돋보였으나, 약간의 격정도 허용하지 않는 무난함으로..
모노 컬처와 매직 서드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미국 하버드대 여자 럭비팀 존재 이유를 ‘모노 컬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노 컬처란, 농업에서 온 말로 본래 ‘농사에서 동시에 하나의 작물만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정 문화 하나가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아 공동체 전체를 틀어쥐는 것을 말한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운동부는 하버드대가 집단 비율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백인 상류층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려고 하버드대는 체육특기자 전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버드대 재학생 인종 비율은 백인 과반을 유지한다. 2006~2014년 기준 유색인종 비중은 아프리카계, 히스패닉, 아시아계 모두 10%대를 유지했다. 성적 기준 외 체육 특기자, 동문 자녀, 총장 추천 학생(부유층 자녀), 교직..
‘낙원의 꿈’ 깃든 정원 책을 펼치면, 먼저 눈에 띄는 건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 빚어낸 우아하고 싱그러운 문장의 향연이다. 혀끝에서 몇 번이고 굴리고 싶은 달콤한 수사, 마음의 현을 살며시 건드리는 생생한 표현이 페이지마다 넘쳐난다. 나도 몰래 손을 놀리다 문득 정신 차리면, 어느새 판면엔 밑줄이 가득했다. 과연 올리비아 랭이구나 싶다.『정원의 기쁨과 슬픔』(허진 옮김, 어크로스, 2025)은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이들이 마음에 담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랭이 마흔 살에 결혼해 영국 서퍽에 정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1961년 유명 정원사 마크 루머리가 디자인했으나,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와 부엽으로 뒤덮인 정원 딸린 집이었다. 그녀는 비밀의 방처럼 칸막이 진 이 정원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다. 이로부터 노동과 사유가 ..
유명한 사람들은 왜 유명해지는가 좋은 책이어서 팔리는 것일까, 팔리는 책이어서 좋은 책일까. 출판계에서 떠도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예전에는 내용이 좋고 만듦새가 좋은 책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언젠간 눈 밝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엔 팔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착각에 불과했다. 『페이머스 : 왜 그들만 유명할까』(박세연 옮김, 한국경제신문, 2025)에서 캐스 선스타인은 비틀스를 예로 들면서 명작이나 명곡이라서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듣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비틀스 노래는 명곡이라서 듣는 이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세계적 스타인 비틀스가 불러서 유명한 노래가 된다. 제인 오스틴과 메리 브런턴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였으나, 오늘날 브런턴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
크리스티앙 보뱅, 글쓰기에 대하여 “시간은 일 속에서, 휴가 속에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소모된다. 시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속에서 소모된다. 그러나 어쩌면 글쓰기는 다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시간을 잃는 것과 매우 가까운 일이지만, 또한 시간을 온전히 들이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남아서 눅눅해진 시간을 조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 순간은 감미로워지고 모든 문장은 축제의 밤이 된다.”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사랑에 결여된 그 사랑을 침묵 속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이다.”=====크리스티앙 보뱅의 『빈 자리』(이주현 옮김, 1984Books, 2025)에 나오는 말이다. 무슨 책이 새로 나왔나 살피다가 책 소개 글에서 이 문장들을 만났다. 글이란, 시간을 써서 시간의 파수꾼이 ..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5년 3월 1일) ‘의식을 앞질러 제멋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몸’은 전 프로야구 투수의 자세를 분석한 가시노 마키오의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구와타 마스미는 ‘똑같은 자세로 30회를 던져달라’는 가시노의 요구를 의식하며 공을 던졌다. 동작 측정 결과 그는 ‘매번 다르게’ 던졌다. 똑같이 던지려고 노력했지만 공을 놓는 지점 등이 모두 달랐다. 반면 공은 모두 같은 위치에 꽂혔다. 그의 투구는 “늘 똑같은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똑같도록 행위를 조정”하며 몸이 해법을 찾아낸 실례라고 이토 아사는 설명한다. _이토 아사, 『몸은, 제멋대로 한다』, 김영현 옮김(다다서재, 2025).   가치와 비전을 갖고 일을 하면 아무리 천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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