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어서 팔리는 것일까, 팔리는 책이어서 좋은 책일까. 출판계에서 떠도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예전에는 내용이 좋고 만듦새가 좋은 책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언젠간 눈 밝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엔 팔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착각에 불과했다.
『페이머스 : 왜 그들만 유명할까』(박세연 옮김, 한국경제신문, 2025)에서 캐스 선스타인은 비틀스를 예로 들면서 명작이나 명곡이라서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듣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비틀스 노래는 명곡이라서 듣는 이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세계적 스타인 비틀스가 불러서 유명한 노래가 된다.
제인 오스틴과 메리 브런턴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였으나, 오늘날 브런턴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명작이라서 읽는 게 아니라 유명한 사람의 작품이라서 읽는다. 유명한 사람은 작품이 더 많이 읽히면서 점점 유명해지고, 아무리 괜찮은 작품을 썼더라도 무명작가의 작품은 거의 읽히지 않으면서 망각의 늪에 빠진다.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말이다.
그런데 이 유명인들은 애초에 어떻게 유명해진 걸까. 유명해지려면, 물론 어느 수준 이상의 실력은 필수적이다. 실력이 모자라, 일시적으로 유명해지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떤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 건 능력도, 자질도, 품성도 아니다. “특정 요인이 명성과 관련 있다고 해도, 그 연관성이 약하다.” 저자는 성경 구절을 빌려 이 현상을 설명한다.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게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며, 똑똑하다고 빵을 얻는 게 아니며, 지식이 있다고 부유한 게 아니며, 기술이 있다고 은총을 받는 게 아니다.”
성공을 결정하는 건 그보다는 주변 요인들이다. 이를 증명한 것이 유명한 ‘뮤직 랩’ 실험이다. 이 실험은 온라인 사이트 이용자 1만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 사이트에 무명 밴드의 노래 48곡을 올린 뒤 이용자를 8그룹을 나눠 다운로드 숫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어느 그룹이든 초기 다운로드 수가 많았던 노래가 마지막까지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어떤 노래가 더 좋은 노래인가는 유명해지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책이나 음악을 많이 팔고 싶다면, 출시 초반에 마케팅 역량을 쏟아부어 일단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게 좋다.(사재기는 사기 행위이지만, 놀라운 효과가 있다.ㅜㅜ) 특히, 책, 음악, 영화 같은 문화 상품의 경우, 직관적 효능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용이 좋아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초기 반응’에 따라 전체 판매량이 결정된다.
게다가 비틀스의 예에서 본 것처럼, 명성은 누적적이다. 유명하면 잘 팔리고, 잘 팔려서 더 유명해지고, 그러면 작품이 더 잘 팔리고……. 이른바 ‘마태 효과’ 또는 ‘누적 이익’이 적용된다. 어떤 인물이나 대상의 명성은 그들이 이미 확보한 인기와 관심에 비례해서 점점 높아진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들의 생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다른 이들이 뭔가를 좋아하고 원하면, 그들도 그것을 좋아하고 원한다.”
사람들은 자기 신념이나 취향을 고집하기보다 대세를 좇아 주류 집단에 속하려는 성향(네트워크 효과)이 있는 데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게 생각하기를 바라기에 주류의 의견을 따르는 성향(평판 폭포)이 있다. 일단 유명해지면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무엇이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로 인해 더욱 이름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나타난다. H.J. 잭슨 토론토대 교수는 말한다. “성공은 가치를 높이고 확장한다. 세월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규칙을 바꿔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을 깊이 분석하고 가장 인정받는 몇몇 시를 기준으로 삼아 다른 이들의 작품을 평가한다.” 유명해지면, 아예 그들을 기준으로 세상이 재편되고, 이들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들을 기준으로 평가받기에, 이들은 갈수록 유명해진다.
명성의 달성은 이처럼 재능, 노력, 끈기 같은 개인 특성보다는 우연과 행운, 역할 모델, 강력한 후원자, 타고난 성장 배경, 사회적 환경과 시대정신 등에 더 많이 좌우된다. 인종,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 사람의 잠재력이 꽃필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가령, 노예 해방 이전의 미국에서 흑인들은 아무리 대단해도 유명해질 수 없다. 또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혁신을 생각한 천재는 능력과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한테 불리한 외적 조건 때문에 실패한다.
그래서 우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감춰진 재능을 찾아내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저자는 묻는다. “무하마드 알리보다 권투 실력이 더 뛰어나지만, 대중 앞에 한 번도 서지 못한 선수가 있지 않을까?”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누군가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혀 있으리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쇼에서 자기 유명세를 활용해서 무명의 재능을 발굴해 유명해지게 했다. 리처드 버틀러 등이 연구한 「무명에서 베스트셀러로」에 따르면, 1996년 9월부터 2002년 4월까지 그녀의 추천 도서 48권은 모두 베스트셀러 15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방송 이후, 이 무명 작가의 책들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들 또한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큐레이션을 통한 ‘뜻밖의 발견’은 언제나 유효하다. 저자는 말한다. “관심을 받지 못한 수많은 아인슈타인이나 셰익스피어들은 얼마든지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 우리 사이에 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존재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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