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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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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지 않는다 출판 산업에 관한 이야기에 대중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작고, 돈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변방의 '급진성'이야말로 미래를 만들고, 결국 인간을 살리니까요. 출판 산업은 오래된 아날로그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탄생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꿈을 꾸는, 늙지 않는 미디어라는 본질이 있습니다. (97쪽) 오늘도 내일도 어떤 이유로든 책은 또 '죽을 거'라거나 '망할 거'라는 말을 들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책이라는 올드 미디어가 정말로 죽은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종이책은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곁에 지금도 존재합니다. (127쪽) 디지털이, AI가 모든 것을 뒤바꿀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을 둘러싼..
줌치라는 말을 배우다 “돈이 요물인기라. 줌치를 열래야 열 줌치가 없대이.” 권영란과 조경국의 『경상의 말들』(유유, 2024)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유 출판사의 문장 시리즈 중 지역 말(사투리)를 펼치는 에세이는 우리말의 사용성을 늘려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편집 구성은 책(주로 문학 작품)에서 지역 말이 쓰인 예를 한 구절 뽑고, 이에 대해 저자들이 짤막한 생각을 펼쳐 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충남 서부 지역 말과 서울말에만 익숙한 나로선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내 안의 언어 스펙트럼이 약간이라도 늘어난 기분이 들어 신기하다. 위에 소개한 ‘줌치’ 같은 말도 그중 하나다. 처음엔 물고기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허리춤에 차는 ‘주머니 또는 호주머니’를 일컫는 말이었다. 읽고 보니 아주 어렸을 때 이웃 어른이..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4년 4월 12일) 4・3사건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중략)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_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9쪽.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오백 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중략) 세월이 삼십 년이니 이제 괴로운 기억을 잊고 지낼 만도 하건만 고향 어른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잊힐까 봐 제삿날마다 모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때 일을 명심해 두는 것이었다. _현기영, 『순이 삼촌』(창비, 2015), 60, 62쪽. 12·3 내란 21세기의 한..
키케로의 『의무론』 해제 요약 · 키케로가 아테나이에서 공부하던 아들 마르쿠스 키케로에게 보낸 글  ·  저술 시점은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 암살 이후로, 아마도 키케로가 그리스로 가던 길을 돌려서 로마로 돌아왔던 8월 31일 이후임  ·  이 책의 전승 사본 중 신뢰도가 높은 쪽은 9~10세기경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독일 또는 프랑스 지역에서 만들어진 네 판본임 → 1994년 편집자 M. 윈터보텀이 이들을 중심으로 여러 판본과 고대 인용문 등을 합쳐서 옥스퍼드판으로 편찬 ·  이 책의 최초 인쇄본은 1465년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가 인쇄 → 성경과 도나투스 책 이후에 세 번째 책으로 찍음 ·  모두 3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시민의 윤리 준칙을 다룬 교과서 → 인간다운 삶이란 인..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5년 4월 6일) SF 미스터리 SF 미스터리는 ‘원초적인 이야기’다. 눈앞에 잘 보이지 않거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상상하는 것(SF), 그리고 비밀을 숨긴 채 청자가 자신의 입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미스터리). 이 두 가지가, ‘이야기꾼’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을 때부터 가장 유효했던 그의 무기이자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_설재인 [예스24] SF와 미스터리의 공통점은? | 예스24 채널예스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지금의 문제점들이 해결된다고 인간에게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ch.yes24.com 감정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고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5년 3월 30일) 가름끈 가름끈은 책에서 읽던 곳이나 특정한 곳을 표시해 두기 위한 책갈피 역할을 한다. 갈피끈이라고도 한다. 책갈피(서표, 書標)가 얇은 종이나 가죽, 플라스틱, 천 따위로 만들어서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두는 얇은 물건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라면, 가름끈은 책에 부착된 형태라는 점이 다르다. 인쇄물을 묶고 표지를 달아 책의 형태로 만드는 제책(製冊·제본이라고도 함)의 방식 중 양장제본에서 책머리(책등의 윗부분)에 가름끈의 끝을 접착하거나 꿰매는 방식으로 만든다. 영어로는 북마크(bookmark) 혹은 바운드 북마크(bound bookmark)라고 한다. 넓은 의미로 북마크로 일종으로 정의하지만, 구분을 위해 ‘(책에) 묶인’ 책갈피로 명명한다. 갈피란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사이나 틈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가능성에 대하여(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 2025년 3월 23일) 가능성 열입곱 살 나이에 소녀는 가능성을 탐식하는 철학적 대식가가 되어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던져진 좌절의 뼈를 골수까지 빨아먹고도 늘 허기졌다. _젤다 피츠제럴드, 『왈츠는 나와 함께』, 최민우 옮김(휴머니스트, 2025). 감시사회 우리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 메시지와 위치 정보를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앞으로 어디로 갈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_에릭 슈미트(구글 최고경영자) 감정 나는 내 감정에 많은 것을 요구했다. 나의 모든 이야기에는 피나 눈물도 아닌, 나의 씨앗도 아닌, 이보다 더 친밀한 나 자신의 무언가가 한 방울씩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가진 여분이었다. 이제 그것은 사라졌고 나는 여러분과 같아졌다. _스콧..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5년 3월 16일) 4줄 공식 “당신의 글이 재미없는 이유는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기승전결’ 때문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의 핵심은 외부 사건 변화가 아니라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변화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4줄 공식이다. ‘주인공이 욕망을 품는 순간’, ‘주인공이 결심하고 행동을 시작하는 과정’, ‘방해 요소와 갈등이 주인공을 시험하는 순간’, ‘주인공이 변화하고 결심을 해소하는 과정’의 순서로 4줄의 글을 쓰면 된다. ‘4줄 공식’을 세우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단순한 선악 구도의 이야기를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참신한 이야기로 바꾸어 준다. 요컨대, 주인공의 내적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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