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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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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파우스트 박사) 베토벤의 비서가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3악장을 쓰지 않은 연유를 물었다. 작곡가는 시간 여유가 없어 아예 2악장을 좀 길게 늘여 작곡했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시간 여유가 없다니! 게다가 ‘태연하게’라는 말까지! 그런 식의 답변은 거의 경멸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강사는 1820년경 작곡가 처지를 일러주었다. 당시 베토벤의 청력은 손쓸 수 없는 소모성 질환 탓에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고, 자기 곡을 지휘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게 정설이라 말했다. 32번 소나타는 갖가지 리듬이 대비되며 펼쳐지는 온갖 운명과 고된 세계를 헤치고 나아가, 2악장 주제가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경지를 벗어나 서 종국엔 피안 혹은 추상 세계라 할 만한 아득한 높이로 소멸되어 간다고 간주했다. 소나타를 직접 들어 보면 어떤 ..
인문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사상사에는 ‘고전(classic)’이라 불리는 일련의 텍스트들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부단히 읽히며, 줄곧 참조의 대상이 되어온 텍스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고전’이다.정치사상사란 ‘고전’을 끊임없이 읽어온 역사라 하겠다. 사상가들은 모두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고전’을 선택했고, 그것을 깊이 읽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사상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고전’을 읽고 거기에서 얻은 관점이나 사고법을 바탕으로 자기 눈앞에 있는 현실과 겨루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저작은 새로운 ‘고전’의 대열에 합류했다.‘인문주의(humanism)’란 본래 이처럼 ‘고전’을 독해하는 지적 영위의 전통을 가리키는데, ‘정치적 인문주의(civic h..
이합체에 대하여 2024년 현대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작은 양윤의의 「이합체(異合體)」(《현대문학》 2024년 5월호)이다. 이 작품은 현호정 단편소설 「청룡이 나르샤」(《문학동네》 2023년 겨울호)를 대상으로 삼아서 ‘이합체’라는 개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양윤의는 올해 초 발표한 「마녀, 광녀 그리고 병원체로서의 여성」(《한국문학이론과 비평》 102집)에서 같은 개념을 다룬 적이 있다. 이 글은 도나 해러웨이, 애나 칭,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실비아 페데리치 등의 논의를 빌려서 이서수의 「엉킨 소매」(『젊은 근희의 행진』, 은행나무, 2023), 안보윤의 「어떤 진심」(『밤은 내가 가질게』, 문학동네, 2023), 구병모의 「있을 법한 모든 것」(『있을 법한 모든 것』, 문학동네, 2023)에 나타난 가부장제 공동..
음악, 인간 감성의 아카이브 음악은 우리를 일상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합니다.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합니다. 음악은 다른 시대에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의 생각,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과 철학을 담은 예술입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작곡가와 연주자가 어떤 어려움, 어떤 고통, 어떤 슬픔을 이겨내려 했는지가 들려오고, 그런 인간 감성의 아카이브가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또한 음악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의 울림입니다. 또한 작곡가와 연주자의 울림과 우리의 울림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도 믿습니다. (중략)악보 자체만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백지에 먹으로 쓰인, 추상적인 기호들뿐이죠.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분석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습니다.저는 악보의 화성을 이해하고 나서 이 화성의 강약과 타이밍을 찾습니다. 음의 ..
자본주의와 인간 감각 『경제학・철학 수고』(1844)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 감각을 어떻게 퇴행시키는지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예술을 즐기는 감각을 기르려면, 누구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자든 가난하든 자기 감각을 단련할 틈을 내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서서히 감각 능력을 빼앗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거리의 악취, 떠들썩한 소음, 눈을 가리는 희뿌연 먼지 등에 오랫동안 노출되고, 오랜 시간 공장에 갇혀 비좁은 공간에서 기계에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낸다.  ‘문명의 오물’ 속에 처박혀 사는 그들은 끝없이 해로운 자극에만 노출될 뿐 양질의 감각적 즐거움을 접하지 못하면서 자기 감각을 온전히 누..
혼밥과 외로움 그동안 스스로 결정해서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현미밥을 씹듯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관계에서 추방되어 혼자 먹게 되었다고. 혼자 먹는 일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겠다는 선택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다. 혼자 먹는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데, 홀로 밥 먹는 게 간편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인간관계를 상실해서 고독하게 밥 먹고 있다고 자각하는 건 괴로우니까. 이러한 정당화를 간파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장에 종속된 채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때 자신의 고립을 자신이 선택한..
풍경과 인간 풍경은 인간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제 풍경은 종으로서의 자신의 미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풍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소멸을 기다리고 있다. _하이너 뮐러 ===== 이렇답니다.
와인 우리가 하는 식사에 와인을 곁들입니다. 와인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지요. 우선 향미가 있습니다. 요리를 보완해주는 풍성한 맛이 있습니다. 또 알코올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살아 있도록 해주는 알코올 말입니다. 와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식사 마지막에는 그라파(포도로 만드는 독한 술)를 마실 겁니다. 그런데 그라파는 한 가지뿐입니다. 알코올뿐이죠. 그라파는 와인을 증류한 것입니다. 인간성에는 많은 것이 포함됩니다. 열정, 호기심, 이성, 이타주의, 창의성, 이기심… 그러나 시장에는 단 하나, 이기심만 있습니다. 시장은 인간성을 증류한 것이지요. 여러분이 할 일은 그라파를 다시 와인으로 돌리는 것, 시장을 다시 인간성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건 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