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문득 편집 이야기 - 상금과 선인세 신인상(문학상)의 상금 및 선인세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단편소설 또는 시 당선 상금을 주고 나중에 소설집, 시집의 선인세로 공제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색하다. 처음부터 출판을 전제로 한장편소설 공모하고는 다르게 처리되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와 관련해서 문학상(신인상)을 공모할 때 상금 대신 고료(원고료, 선인세) 등으로 기입하게 된 연유가 처음에는 전적으로 작가를 위한 선의였다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문학상 당선 후 받는 돈을상금으로 표시하면 세법상 세금이 25%가량 되기 때문에작가가 가져가는 돈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이 사실을 안 편집자들이 고심 끝에이를 원고료(선인세) 등으로 표기한 것이다.그러면 3.3%만 공제하면 되니까. 세월이 흘러 편집자 세..
책을 떠나보내면서 매년 연말이 되면, 책을 정리해 동생이 일하는 시골 도서관으로 보낸다.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사고 얻고 받은 책이 수백 권. 침실을 작은 방으로 옮겨 안방을 서재로 쓰고 거실 한쪽 벽까지 모두 책장을 세웠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책을 겹쳐 꽂을 서가는 이미 없고, 바닥에 쌓고 늘어놓는 바람에 손발 둘 곳이 더 이상 없을 지경이다. 어쩔 수 없이 몇 해 전부터 연말에 한두 달 틈나는 대로 시간을 들여 책을 처분해 왔다. 세 해 이상 들추지 않은 책을 버리라고 하는 이도 있다. 동의하지 못한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서가의 책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을 읽는 경우가 더 많다. 요즈음 도서관에선 출간된 지 다섯 해 이상 지난 책은 기증 자체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
시와 지성 (보들레르) 오래전 나는 시인이 더할 바 없이 지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시인은 지성 그 자체이고, 상상력이 [정신의] 기능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한 적도 있다. 상상력만이 보편적 유추 또는 신비 종교에서 교감이라고 부르는 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보들레르 =====아무렴!!! 시적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형태라는 걸 모른다면, 시를 쓰는 건 고사하고 읽을 수조차 없다.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 - 마흔 권의 책으로 말하는 2010년대 책 의 결산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지난 10년 책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
최고의 노후 준비 고대 인도 사람들은 지혜를 베다(veda)로 보았다. 베다는 ‘보다, 알다’라는 뜻이다. 지혜의 기록인 『베다』는 신들이 보는 것을 기록한 책이다. 지혜는 ‘밝게 보는 힘’이다. 과거는 돌아보고 미래는 내다보며 현재는 들여다보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일이다. 수메르 사람들은 지혜를 엔키(enki)라고 했다. 엔키는 지혜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듣는 신’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 여신은 지혜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귀를 땅을 향해 열었다.” 지혜란 주의 깊게 듣는 귀, 즉 ‘경청하는 힘’이다. 높은 곳의 소리는 가려듣고, 낮은 곳의 소리는 귀 기울여 듣고, 내면의 소리에는 예민해지는 일이다. 『인생의 아홉 단계』(교양인)에서 에릭 에릭슨과 조앤 에릭슨 부부는, ‘잘 보고 잘 ..
민주적 불평등 세인트폴은 변두리의 작은 학교다. 전체 학생 수 500명. 미국 뉴햄프셔 주 외곽의 후미진 곳에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한 해 학비는 5000만원에 가깝다. 부모가 내야 하는 수억 원의 기부금은 별도다. 서민들은 입학을 상상조차 못할 이 학교 학생들은 상당수 아이비리그에 입학한다. 미국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셈이다.졸업생이었던 세이머스 라만 칸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 연구자’로서 세인트폴의 교사로 취업한 후, 달라진 학생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물려받은 특권을 과시하면서 별세계 삶을 살던 자기 때의 학생들 모습이 그사이 사라진 것이다.칸이 쓴 『특권』(후마니타스)에 따르면, 세인트폴 학생들은 ‘특정한 역사와 취향을 가진 계급’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인식하지 않는다.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을 공..
테니스의 미학이 탄생하다 스포츠가 예술의 일종임은 누구나 안다. 아름다우니까. 위대한 선수들은 모두 인체의 물리학을 위반한다. “인간 안에서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초월”을 실행한다. ‘아!’ 하는 외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동작의 기적적 응축. 언어의 길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순간적인 창조가 거기에 있다. 오랜 연습을 통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극한에 이를 때까지 단련한 후에도, 아주 잠깐 동안만 구현할 수 있는 힘의 엄청난 약동. 그런데 순간은 예술이 아니다. 찰나의 덧없음을 영원의 형태로 붙잡아 둘 수 있는 미학적 힘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된다. 위대한 선수들의 자서전은 흔히 자신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예술로 만드는 데 실패한다. 잘못은 없다. “한 번에 공 하나씩” 같은 언어적 클리셰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게임에서 이를 ..
겨울을 맞는 마음 며칠 전, 한밤중에 첫눈이 내렸다. 후배랑 김치전을 곁들여 한잔하는 중에,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송이가 뭉쳤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깥으로 슬쩍 나가서 손바닥을 공중으로 내밀자 피부에 닿은 눈이 스르르 방울졌다. 자연은 쉬지 않는다.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절기를 돌린다. 낳고 또 낳는 변화(易)야말로 세상의 이치다. 엊그제가 가을인 듯싶더니, 어느새 “이슬은 서리로,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겨울이 온 것이다. 때마침 어제(22일)가 소설(小雪)이었다. 눈 내릴 무렵에 적절히 눈이 온 셈이다. 위스춘의 『시간의 서』(강영희 옮김, 양철북, 2019)에 따르면, 소설과 더불어 “만물의 숨결은 흩어지고, 나고 자람은 거의 멎어 겨울이 온다.” 사나흘 전부터 과연 사람들 옷차림이 두꺼워지더니,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