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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의 질문들 색이 예뻐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지만,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온 (2024) 표지다.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기에 오히려 현란한 표지들 틈에서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동안 안규철의 단상집을 여러 권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미술하는 사람답게 안규철의 글은 산문으로 되지 않고 단상일 때가, 시간의 서사 없이 순간에 붙잡혀 있을 때가 더 나은 것 같다.  “익숙하고 친밀한 모든 것은 실은 지극히 낯설고, 저마다 제 갈 길을 가는, 나 같은 존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다른 세계의 것들이다. 우리 모두가 다른 기억과 다른 욕망에 이끌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이방인의 눈으로, 외계인의 눈으로 보는 것, 타자의 삶과 세계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첫 에세이집을 왜 이렇게 늦게 냈을까 오늘 풍월당에 갔다가 짧게 인터뷰를 했는데, 질문 중 왜 이렇게 늦게 첫 에세이를 냈느냐는 말을 들었다.생각지 못한 질문이라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답을 했는데 오다가 지하철에서 곰곰 생각해 보니 미루면서 천천히 하는 게 천성이라 그런 것 같다.닥친 일은 어떻게든 해치우는데, 정말 하고픈 일은 내 안에서 확실한 이유가 일어설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틴다. 답이 생기는 건 대개 우발적이고, 언제 그 답이 생길지 모른다.일단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순식간에 한다. 어차피 엉덩이 붙이고 자료 모아 한 줄씩 쌓는 학적인 작업은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나는 그저 읽는 사람이니까, 읽고 떠오르는 영감이나 생각을 거의 자동으로 일단 쓰고 기록한다. 그다음은 잠깐(?) 묵혀 두었다가 불현듯 다시 꺼내 읽고 떠오르는 대로 만지..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이다. 필름 카메라로 느리게 기록한 두 아이의 한 해가 시처럼 흘러간다. 강원도에 있는 작은 지역 출판사 핑거에서 기획해서 출판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 깊다. 이미 입소문이 나고 있지만 더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풍월당 최성은 실장님의 편집후기 & 격려사 아래는 풍월당 최성은 실장님께서 내 책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에 대해 페이스북에 써주신 감동의 편집후기 & 격려사이다. 읽고, 밤새 뭉클대는 마음을 달랬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또 때때로 써 보겠습니다. ======장은수 선생님께,선생님의 첫 책을 풍월당에서 펴내게 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오랫동안 존경해 온 분의 깊고 단단한 사유가 한 권의 책으로 묶이고, 그 책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저희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마치 오래 기다려온 문학적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생님의 문장이 쌓아온 시간의 두께가 전해지고, 이제 그 시간이 많은 독자들에게로 흐를 거라 생각하니 감격스럽습니다. 문학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되어, 그저 ..
액화 노동(melting labour)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는 현상1970년대부터 시작된 서비스산업의 성장과 1980년대에 시작된 ‘2차 경영혁명’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 역사적 배경을 이룸  → 외주 기업 노동자들은 피라미드 구조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노동 강도 증가 등의 현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음액화노동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의 방식, 작업장 범위, 정해진 노동시간, 고용주와 노동자의 명확한 관계에서 벗어난 비표준적이고 비정형적인 노동 형태를 포괄하며, 비정규직, 하청노동, 프리랜서, 긱노동, SNS 크리에이터, 크라우드노동, 플랫폼노동 등이 여기에 해당함 액화노동은 겉으로는 대등한 존재의 독립적 계약 관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속성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
어느 미국인의 타이극기 축제 참여기 (성혜나, 「스무드」) 성해나의 「스무드」(현대문학 2024년 10월호)를 읽었다. 여러 면에서 독특한 소설이다.일단, 콜라주 기법. 여러 책에서 가져온 모티브 또는 세상 이해가 겹겹이 서사에 결합되어 있다.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에 나오는 아버지,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 나오는 제프 쿤스와 매끄러움 비판,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에 나오는 외로움 인식, 여러 코미디에서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행태를 풍자하는 데 흔히 등장하는 ‘두 유 노우’ 밈 등이 이 한국계 2세의 서울 오디세이아에 틈틈이 박혀서 서사적 건축물을 쌓아올린다. 게다가 한국 소설에선 흔하지 않은 성찰 깊은 블랙 코미디 기법도 흥미롭다. 화자는 듀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 용복은 한국과 일말의 연도 남기지 않으려..
취약성은 내 가장 강력한 무기 어쩌면 내가 우울해지는 가장 주된 이유일 수 있는 내 감수성은 내가 작업물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투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 취약성은 사실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내 경계에는 구멍이 많다. 내 피부는 벽이 아니다. 외부에 있는 것은 쉽게 흘러 들어올 수 있고, 내부에 있는 것은 항상 나갈 길을 찾는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와 자신 사이의 이런 끊임없는 교류가 필요하다. _ 에바 메이어르(Eva Meijer), 『부서진 우울의 말들 : 그리고 기록들』, 김정은 옮김(까치, 2022).====에바 메이어르(Eva Meijer)는 네덜란드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이고 화가이자 가수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국내에는 개인 경험과 철학적 사유를 가로지르면서 우울증에 ..
우리나라에서 서평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이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서평이란 대량으로 책이 출판되어 보급되고, 이에 따라 동시에 함께 책을 읽는 독자들이 없으면,  하나의 문화로 존재하기 힘들다. 아울러 서평을 관심 있는 독자들이 거의 동시에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가 있어야 문화적 의미를 얻는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서평을 이야기할 때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는 1883년 10월 1일 《한성순보》가 발행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신문에는 서평이나 신간 안내가 실리지 않은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이런저런 검색어를 넣어가면서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성신문》 1884년 6월 13일자에 중국에서 발행된 서양 선교사들 회보인 《중서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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