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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은 인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참아라, 내 마음이여! 전에는 더 개 같은 일도 참아냈지, 힘을 억제 못 하는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 치우던 그날에도. 너는 굳세게 견뎌냈지, 동굴에서 몰살될 거라 믿었으나 계략으로 끌어낼 때까지 참고 견디지 않았던가!”주말마다 강남의 한 도서관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함께 읽고 있다.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그려낸다. 고난과 위험으로 얼룩진 그 귀향길은 우리 인생 여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우리 역시 날마다 세상에 나가면서 위기를 이기고 죽음을 피해서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지 않던가.모험을 통해 오디세우스는 인생에서 행복과 평화를 손에 쥐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려준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자질은 ‘트로이의 목마’로 상징되는 기지..
조선 종소리서 일제 사이렌으로, 시간은 어떻게 강제되었나 『시간의 연대기』(테오리아, 2025)에서 이창익 고려대 연구교수는 시간을 셋으로 나눈다. 내면의 시간, 즉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되는 인간적 시간, 천체 운동에 따라서 측정되는 천문학적 시간, 인위적으로 제작돼 시계를 통해 유포되는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시간이다. 현재 우리 삶은 세 번째 시간에 거의 결박돼 있다. 특히 스마트폰 도입 이후, 그 압박이 더 심해졌다. 손에 든 화면엔 모두 같은 시간이 표시되고, 우리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강박적으로 거기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은 인간적 시간을 따라오기에, 억지로 시계에 맞춘 삶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50년 동안 한국에서 세 번째 시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고 타락했는지를 추적한다. ..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야말로, 동생아, 바로 이 벌레란다, 이건 특별히 나를 두고서 나온 말이야. 그리고 우리 카라마조프는 전부 이런 놈들이지, 천사인 너의 안에도 이 벌레가 살고 있어서 너의 핏속에서 폭풍우를 낳는 거야. 이건 폭풍우야, 정욕은 폭풍우거든, 아니, 폭풍우 이상이지! 아름다움이란 말이다, 섬뜩하고도 끔찍한 것이야! 섬뜩하다 함은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고, 뭐라고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다 함은 하느님이 오로지 수수께끼만을 내놨기 때문이지. 여기서 양극단들이 서로 만나고, 여기서 모든 모순들이 함께 살고 있는 거야. 나는, 동생아, 교양이라곤 통 없는 놈이지만, 이 점은 많이 생각했어. 비밀이 정말 너무도 많아. 너무도 많은 수수께끼들이 지상의 사람을 짓누르고 있어. 네 깜냥대로 수수께끼를 풀어 보라..
미(美)에 대하여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美)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골의 소박한 승려였던 아버지는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만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_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허호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17), 34쪽
조선 사람들도 사인을 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뒤 낙관을 찍곤 했다. 도장을 써서 자기 행위를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관문서나 토지 및 노비 매매 문서 등 일상생활에서는 사인을 사용했다. 사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 수결(手決)이다. 양반 신분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명으로, ‘일심(一心)’ 두 글자를 자기식대로 쓴 것이다. 즉 ‘→’을 길게 긋고 그 아래위에 점이나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자기 수결로 정하는 방식이다. 수결은 곧 사안(事案) 결재에서 ‘오직 한마음으로 하늘에 맹세하고 조금의 사심도 갖지 아니하는 공심(公心)에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결재를 일심결(一心決)이라고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방식의 결재가 없고 서압(署押; 자기..
서양 중세사 학술용어 표기안(서양사학회 자료) 서양 중세사를 연구하거나 책을 편집해 본 사람들, 또는 관련 도서를 자주 읽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서양 중세사는 라틴어 표기를 비롯해서 각국어 표기, 현지 발음, 현재 해당 국가의 인명/지명 표기 등이 한 책에도 혼재해 있는 데다, 책마다/연구자마다 표기가 달라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러한 혼란 상태를 줄이기 위해서 서양사학회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학술단체협의회의 학술용어표준화사업의 일환으로 17년에 걸친 긴 시간을 들여서 학술 용어들을 정리하고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아래에 옮겨 적은 자료는 2023년 10월 서양중세사학회에서 발표한 서양중세사 학술용어표기안이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나,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여 아래..
책 띠지에 대하여 1 띠지는 한국-일본-중국에서 주로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하드커버에는 대개 덧싸개(jacket)이 있어서 따로 띠지가 필요 없고, 페이퍼백은 저가 보급판이어서 띠지를 붙일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띠지는 반양장이라는 특수한 환경, 매대 경쟁이 치열한 서점 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선 띠지를 부르는 공식 명칭도 불분명한데, 영어로 belly band, book belt, Supplementary bands 또는 일본어 그대로 obi라고 부르는 듯하다. 2서양 북 디자인에선 덧싸개와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 한 형식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띠지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먼저 덧싸개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다.31820년대 이전의 책은 대부분 미제본 상태로 출판되거나,..
작가 강연료에 대하여(천쉐) 지금 학교나 기관에서 섭외를 담당하는 분들께 사례금 부분을 잘 생각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다.어떤 일을 의뢰할 때는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며 작가님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작가님의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전문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좋겠다.어떤 일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사례금의 세부 사항까지 함께 알려주어,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가 입에서 먼저 돈 얘기가 나오는 어색한 상황은 피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정말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미뤄놓고 강연하고 심사를 하는 것이다. 돈 때문만이 아니라 문학을 향한 사랑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작가를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서 이 일이 작가에게 아름다운 협업 경험으로 남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작가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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