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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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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냄새에 대하여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내용이나 표지보다 먼저 책 냄새가 우리를 맞는다. 새 책은 새 책대로, 오래된 책은 오래된 책대로 각각 다른 냄새가 난다.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에이도스, 2024)에서 미국 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책에서 풍기는 냄새를 몇 가지로 나눈다.흔히, 낡은 책들이 가득 쌓인 곳에 들어서면 ‘퀴퀴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데, 이는 사람들 눈살을 저절로 찌푸리게 한다. 푹 삭은 책들에서 풍기는 이 냄새는 사실 책 냄새가 아니다. 그건 썩어가는 책을 점령한 곰팡이들, 즉 균류의 냄새이다. ‘코팅지로 만든 매끈매끈한 교과서’에선 정유 공장 냄새와 표백제 냄새가 섞인, 어딘가 유독할 듯한 기묘한 냄새가 풍겨온다. 그건 책장을 반짝이게 하는 광택제(폴리에틸렌 혼합물)와 책장..
행위로서의 도서관 오늘날 출판이나 도서관 연구는 대상에 고착되어 있다. 도서관을 공공 건물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출판을 물리적 책(종이책)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사 재료나 구현 공간보다 중요한 게 있다. 행위이다. 기억하고 쓰고 고정하고 장식하고 유통하고 팔고 사고 읽고 보관하고 배치하고 자랑하고 빌려주고 훔치는 것.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체로 나타나는 이런 욕망 행위 속에서 출판과 도서관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재보다 더 출판과 도서관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령, 도서관은 건물 자체와 큰 상관이 없다. 미국 이주 초기 마을 도서관은 책 상자 하나로 운영됐다. 책 모으기와 자랑하기가 도서관의 그 핵심 정체성이다. 10권이든 1000권이든 1000만 권이든 책을 모아서 스스로 뿌듯해하거나 남한테 보..
소설과 도서관 1870년에서 1920년 사이 소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선봉에는 국가의 녹을 먹는 공공도서관 전문 사서들이 포진했다. 영국 도서관협회, 미국 도서관협회, 프랑스 도서관협회 사서들이 그 공격을 주도했다.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 동안, 사서들은 검열에 저항하기보다 검열의 일부로 행동했다.)원칙적으로 공공도서관은 역사, 지리, 그리고 상당히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책을 선호했다. 그러나 18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공도서관 대출도서 중 65~90퍼센트가 소설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큰 변화였기에 사서들은 할 수 없이 회원들이 바람직한 소설을 읽도록 이끄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들은 (억지로 눈감아 줄 수 있는) 경박한 것과 (유럽과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독자들 혼을 빼놓는 값싸고..
퍼블리싱 마케팅 트렌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신간 『퍼블리싱 마케팅 트렌드』(북바이북, 2024)에 여는 글을 썼다.이 책은 《기획회의》 600호 마케팅 특집에 나왔던 여러 마케팅 사례를 묶고, 몇몇 글을 보태서 펴낸 책이다. 일인 출판사부터 대형 출판사까지, 홍보나 마케팅 대행사까지 출판사 규모와 역할은 다르지만,팬데믹 이후 한국 출판계에서 시도되었던 다양한 마케팅 사례가 실려 있다.이러한 시도들을 개괄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는 글을 부탁받아 짧게 써서 덧붙였다.아래는 그 글 중 일부를 재편집한 것이다.  “갈수록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뭐를 해도 안 팔린다.” 출판 현장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출판 마케팅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자잘한 팁(Tip)에 집중한다. 모 출판사가 카드뉴스로, 유튜브 광고로, 온라..
세책, 도서 대여, 기간제 구독, 도서관 1흔히 세책(도서 대여)과 기간제 구독과 도서관을 구분해서 생각하나, 독자 입장에서 보면 셋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을 빌려서 읽는 일, 즉 ‘세책 독서’를 촉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셋 모두 “책을 한곳에 모아놓고 일정 기간 사용료를 낸 이들이 마음껏 빌려 읽도록 한 유통 시스템”에 속한다. 공공도서관은 그 사용료가 무료일 뿐이다. 2내가 번역에 참여한 『도서관의 역사』가 올해 안에 나올 텐데, 이 책에선 도서관과 서재, 공공과 사설, 무료와 유료를 구분하지 않는다. 『18세기의 세책사』(문학동네, 2024)에서도 세책점(도서대여점)을 유료 대출 도서관으로 본다. 세책점이 일반적으로 권당 대여 가격을 책정하는 반면, 밀리의서재나 네이버프리미엄 같은 기간제 구독 서비스는 기간에 따라 대여 가..
출판사의 첫 책 『출판사의 첫 책』(출판사 핌, 2024)은 작가 송현정이 만난 열 군데 출판사 이야기를 다룬다. 대부분 일인 출판에 가까운 출판사이지만, 이야기장수처럼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인 곳도 있고, 골든래빗처럼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를 갖춘 곳도 있다. 창업 후 꾸준히 성장을 이룩한 곳도 있고, 좋아하는 책을 내는 데 만족하는 곳도 있다. 출판 창업 관련 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 이승훈의 『내 작은 출판사 시작하기』(북스페이스, 2017)나 신동익의 『독립출판 제작자를 위한 대형서점 유통 가이드』(프랭크유통연구소, 2019) 같은 창업 실무 안내서. 둘째, 이현화의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유유, 2020)이나 박지혜의 『날마다, 출판』(싱긋, 2021) 같은 일인 출판사 대표가 쓴 체험적 창..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 아직도 출판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신사적 분위기, 책 가득한 사무실, 고루함과 느긋함, 전통과 예술성 선호 등”은 출판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불멸의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고뇌하는 작가들, 매력적 작품을 발굴하려 분투하는 편집자들, 아름다운 책을 만들려 노력하는 디자이너, 고상하고 우아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독자에게 책을 권하는 사서나 서점 직원 등은 출판의 인간적, 문화적 가치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좋은 책이라고 믿으면 경제적인 손해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마음, 먼 훗날을 생각해 미지의 신인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마음, “사상과 문화의 미개척 지대에서 일하는 흥분감, 꾸준히 세상 변화에 일조하는 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출판의 자부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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