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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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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 컬처와 매직 서드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미국 하버드대 여자 럭비팀 존재 이유를 ‘모노 컬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노 컬처란, 농업에서 온 말로 본래 ‘농사에서 동시에 하나의 작물만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정 문화 하나가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아 공동체 전체를 틀어쥐는 것을 말한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운동부는 하버드대가 집단 비율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백인 상류층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려고 하버드대는 체육특기자 전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버드대 재학생 인종 비율은 백인 과반을 유지한다. 2006~2014년 기준 유색인종 비중은 아프리카계, 히스패닉, 아시아계 모두 10%대를 유지했다. 성적 기준 외 체육 특기자, 동문 자녀, 총장 추천 학생(부유층 자녀), 교직..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입장에 따라서 사람들 의견이 갈리고 생각이 달라지는 걸 자주 본다. 이럴 때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어느 쪽이 거짓을 퍼뜨리는지 판단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인생 앞날은 선택에 달렸고, 선택은 사고 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쪽이 진실에 더 가깝고 다른 쪽은 단순히 틀렸을 땐 더욱 그렇다.《스켑틱 코리아》(바다출판사 펴냄)가 어느덧 10주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이 잡지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유사 과학, 사이비 과학, 음모론, 거짓 진실 등에 맞서 비판적 사유를 촉진하고, 과학적 사고법을 널리 알리려고 애써 왔다. 10주년 기념 기고에서 미국 과학자 마이클 셔머는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13가지 사고 도구’를 소개했다. 이 글은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에서 진실 쪽에 서..
미쳐 버리고 싶은 세상에서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나한테 토로하지 말라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당신이 직접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시인의 「강」의 전문이다.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 2003)에 실려 있다.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은데, 도무지 미쳐지지 않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 꺼내어 거듭해 읽고 싶은 시다. 시의 한복판에 있는 저 역동하는 감정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이인성 장편소설 제목에..
좋은 삶은 인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참아라, 내 마음이여! 전에는 더 개 같은 일도 참아냈지, 힘을 억제 못 하는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 치우던 그날에도. 너는 굳세게 견뎌냈지, 동굴에서 몰살될 거라 믿었으나 계략으로 끌어낼 때까지 참고 견디지 않았던가!”주말마다 강남의 한 도서관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함께 읽고 있다.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그려낸다. 고난과 위험으로 얼룩진 그 귀향길은 우리 인생 여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우리 역시 날마다 세상에 나가면서 위기를 이기고 죽음을 피해서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지 않던가.모험을 통해 오디세우스는 인생에서 행복과 평화를 손에 쥐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려준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자질은 ‘트로이의 목마’로 상징되는 기지..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집안일로 조만간 이사할 일이 생겼다. 열일곱 해 동안 살던 정든 집을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산란하다. 입지, 교통, 전망, 자금 같은 현실적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집은 단지 편의나 투자의 대상만은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고, 가족이 함께 삶을 이룩하는 공간이며, 인간 존재가 뿌리내리는 장소다. 무엇이 좋은 집인지, 어디에 살아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굿라이프』(이유출판, 2024)에서 이냐키 아발로스 스페인 마드리드대 교수는 일곱 군데 집을 통해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를 이야기한다. 20세기에 나타난 이 집들은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가스통 바슐라르,  오귀스트 콩트, 질 들뢰즈, 윌리엄 제임스 등 현대 철학의 정수를 건축적으로 구현한 곳들..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의 섬뜩한 경고다. 심층 탐사 보도를 통해 필리핀 두테르테 독재 체제의 무법과 탈법을 폭로해 왔던 레사는 페이스북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오히려 페이스북은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조작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몰두하는 등 편향성을 띤다는 것이다.프랜시스 하우건 전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역시 미국 의회 증언에서 “(페이스북은) 아이들에게 직접 해를 끼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플랫폼”이라고 폭로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애초부터 정보의 편향성이나 왜곡된 사실을 가리지 않고 개인 성향에 맞춤한 정보만 반복해서 보여주고, 자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모아 줌으로써 특정 신념과 편견을..
경주 삼릉숲 초심자는 자신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원하는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움이 쌓이면 형태란 생명의 예측할 수 없는 만남에서 생기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_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나무의 노래』, 노승영 옮김(에이도스, 2018) 중에서 ====연초에 온 가족이 함께 경주 삼릉숲에 갔다 왔다. 배병우는 이 숲에서 고요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을, 정적 속에서 울려퍼지는 자연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실제 가보니 한국의 미가 과연 거기에 있었다. 흉내 내서 한 컷.
사랑, 답답한 세상에 돌파구를 열다 며칠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 가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연주를 들었다. 지휘는 얍 판 츠베덴,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곡이었다. 음반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게 더 익숙한 시절이지만, 100여 명의 연주자와 합창단이 힘을 합쳐서 선율을 타는 현장의 위엄과 역동을 따라잡지 못한다. 교향곡은 떨어져 홀로 감상할 때보다 연주자와 함께 그 안에 뛰어들어 헤엄치면서 몰입할 때 비로소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연주였다.말러의 교향곡 ‘부활’은 죽음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말러는 꿈속에서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잠들듯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체험이 1악장 장례 행진의 모티브를 이룬다.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서 무(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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