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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와 에세이 읽기

조지에게(윤지양)

조지에게

                                           윤지양

 

나 사실 신을 사랑해
그가 만든 여자와 남자와 개와 눈물을 사랑해
아니더라도 사랑해
눈곱조차 사랑해
실핏줄을 사랑해 눈 없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너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다고 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일찍 깨닫지 못했어
너를 뺀 모든 걸 사랑한다는 걸 알아
절뚝거리며 가는 이도 사랑해
어느 날 손톱마냥 부러진 이도
오르는 계단도 높은 빌딩도
치솟다 무너질 문명도 증오하고 사랑해
거울에 얼핏 비친
빛나는 구석을 증오했어
커튼과 함께 말린 따듯함과
창문의 투명함이
식을 때까지 바라봤어
곧 아침이 올 거야
두드림 뒤에 따라올 가여운 존재를
실은 너무 사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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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에게」는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인『기대 없는 토요일』(민음사, 2024)에 실려 있다. 

이 시는 ‘사랑해’란 말이 슬픔을 표현하는 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슬픔을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이룩한 사람만이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랑과 슬픔 사이엔 쓰라림이 지독했을 어떤 상처가 있고, 절뚝거리며 가는 이와 손톱마냥 부러진 이”로 형상화한 증오가 있다.

화자는 ‘사랑’이란 말을 반복하면서, 사랑이 남긴 상처와 절망을 곱씹는다. 아침이 되어 그의 두드림과 함께 여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사랑의 속삭임을 반복하면서 증오와 절망을 조금씩 씻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윤지양, 『기대 없는 토요일』(민음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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