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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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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의 섬뜩한 경고다. 심층 탐사 보도를 통해 필리핀 두테르테 독재 체제의 무법과 탈법을 폭로해 왔던 레사는 페이스북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오히려 페이스북은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조작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몰두하는 등 편향성을 띤다는 것이다.프랜시스 하우건 전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역시 미국 의회 증언에서 “(페이스북은) 아이들에게 직접 해를 끼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플랫폼”이라고 폭로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애초부터 정보의 편향성이나 왜곡된 사실을 가리지 않고 개인 성향에 맞춤한 정보만 반복해서 보여주고, 자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모아 줌으로써 특정 신념과 편견을..
사랑, 답답한 세상에 돌파구를 열다 며칠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 가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연주를 들었다. 지휘는 얍 판 츠베덴,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곡이었다. 음반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게 더 익숙한 시절이지만, 100여 명의 연주자와 합창단이 힘을 합쳐서 선율을 타는 현장의 위엄과 역동을 따라잡지 못한다. 교향곡은 떨어져 홀로 감상할 때보다 연주자와 함께 그 안에 뛰어들어 헤엄치면서 몰입할 때 비로소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연주였다.말러의 교향곡 ‘부활’은 죽음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말러는 꿈속에서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잠들듯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체험이 1악장 장례 행진의 모티브를 이룬다.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서 무(無..
도덕적 진보의 깃발을 들 때 슬프게도, 뻔뻔함의 시대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정치의 원리가 됐다. 두꺼운 얼굴로 되려 ‘어쩌라고’라고 외치고, 시커먼 마음으로 ‘그래서 뭐?’라고 소리친다. 후안무치에 인면수심이 횡행한다.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했던 자가 가벼운 경고행위라고 우긴다. 이에 동조해 나라를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는 데 끼어들려 했던 자가 고개를 뻣뻣이 들자고 선동한다. 아이들 눈을 가리고 귀를 씻어주고 싶다. 이런 때에 어른으로 산다는 게 창피할 뿐이다. 잘못은 더러운 자들이 저질렀는데, 부끄러움은 착한 사람들 몫이 됐다. 2025년 첫 책으로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열린책들)를 꺼내 읽었다. 저자인 마르쿠스 가브리엘 독일 본 대학 교수는 우리 시대가 심각한 가치 위기에 시달..
한 역사학자의 죽음 서양사학자 이영석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대중한테 이름 높은 ‘미디어 인문학자’도, 연구는 뒷전이고 이른바 ‘활동’에 전념하는 참여파도 아니었다. 전공은 영국 사회 경제사. 평생 남의 나라 역사 한 부분을 좁고 깊게 팠다. 관련 학자들 말고 이름이 알려질 까닭은 별로 없었다. 주변 소셜 미디어 쪽 반응은 달랐다. 다른 분야의 많은 지식인들도 크고 작은 인연을 고백하고, 학문적 일생에 존경을 표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은 읽지 않지만, 페이스북에 실린 글은 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면서, 대학을 정년퇴직한 후 페이스북에서 역사 관련 지식과 통찰을 공유한 까닭도 있을 테다. 자기 공부를 정리한 『삶으로서의 역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을 성찰한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등은 그 결과였다. 목소리는..
약자의 호소와 권력의 몰락 살려고 일하러 간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다. 광주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외벽 붕괴, 양주 삼표산업 골재 채취장 토사 붕괴, 여수 여천NCC 폭발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안전의식 타령은 그만하자. 위험 감수를 압박하는 현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말단 노동자의 작업 거부는 어렵다. 아무도 직접 책임지지 않는 현장에 파견된 노동자라면 하소연 자체가 사치다. 그 처지를 모른 체하면 위선자, 못 느끼면 사이코패스다. 그런데도 법은 현장 앞에서 자꾸 멈추고, 정의는 법정에서 자주 반려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죽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 씨 관련 며칠 전 판결도 역시나였다. 원청 대표는 위험을 몰랐다면서 무죄였고, 관련 임직원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억울한 죽음에 유가족 한은 쌓여간다. 하소연..
연마와 공부 저는 곡에 대한 공부를 좋아합니다. 모던타임스 레퍼토리를 짤 때는 독일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탐독했어요. 덕분에 연주 작품의 배경이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죠. 곡을 공부한다, 피아노를 공부한다는 말이 어색한가요? 피아노는 기술 연마와는 또 다른, 공부라는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칭을 하는 건 연마죠. 저는 밥 먹을 때도 젓가락을 두들겨 가며 리듬감을, 화장품을 바르고 두드릴 때도 리듬감을 생각해요. 이것도 연마에요. 곡을 연습할 때 작곡가의 생애를 찾아보는 건 공부죠. 그 곡을 지금까지 연주한 사람들의 디스코그라피(discography·레코드목록)를 조사하는 것도요. 평소 헤겔, 릴케의 저서와 시를 읽어요. 역사책도 탐독하고요. 클래식 연주란 죽어 있는 텍스트를 되살리는 작..
재난의 사고법 ― 『2021 한국의 논점』(북바이북, 2020) 서문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처음 30년 동안은 혁명과 반동의 시대였다.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김대중・김영삼의 선거 돌풍과 유신 반동, 서울의 봄과 신군부의 쿠테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여기에 있다. 이 사악한 되먹임 고리를 끊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10년의 민주화 운동 기간을 거치고, 1989년 소비에트 붕괴 이후,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정상’ 국가로 진입한 듯했다. 그다음 30년은 ‘재난과 복구의 시대’였다. 1997년에는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고, 2008년에는 금융 위기가 있었다. 소수의 부유층과 권력층에게는 샴페인을..
대학 가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이상하게도 중대한 문제일수록 잘 해결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오랫동안 특정한 정책을 정해진 틀 안에서만 다룬 습벽이 장벽이 돼 혁신적 해결책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입시 공정성의 해결 방법으로 정시 비중을 높이겠다는 최근 정부 방안은 아무래도 미봉책일 뿐 좋은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 모임에서 교사들을 만났는데, 정시 비중이 높아질수록 학교수업 전체가 문제풀이 학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수능 시험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관련이 적으므로 미래 가치가 낮은 데다 현행 학교 교육 과정이 감당하기 어려워 사교육을 부채질할 게 빤하다. 따라서 아무리 따져도 정시 강화는 게으르고 정형화된 사고의 결과일 뿐이다. 2019년 노벨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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