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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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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를 몰아내는 방법 (1) 규제로 몰아내기 쉽지 않다. 잘못된 정보와의 싸움은 정책 입안자들이 아닌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과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2) 라벨 붙이기를 제대로 하면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억제할 수 있다. 믿을 수 없는 정보에 라벨을 붙이고 정확도를 생각해 보게 하면 가짜 뉴스는 줄어든다. (3) 허위 정보의 제작 및 확산하는 미디어에 광고를 제한하는 등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을 중단한다. 유튜브는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모든 동영상에 광고 게재를 제한하고 계정에 노란딱지를 붙여 광고로 수익을 내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4) 미디어 리터러시는 사람들에게 편견과 가짜 뉴스에 맞서는 힘을 기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5) 머신 러닝 알고리즘들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온라인에서 잘못된 정..
호텔의 역사 여행객에게 접대를 제공하는 시설은 문명의 최초 기능 중 하나였다. 기원전 9세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손님맞이 장면에서 호텔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제우스 등 올림포스 신들은 언제나 여행자나 이방인으로 변장한 채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기에 고대인들은 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을 신에 대한 의무처럼 생각했다. 성서에도 관련한 관습이 나온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했다.” 고대 페르시아에도 회복과 휴식을 위한 병원이 스파에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도로를 닦고,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인 20마일마다 하나씩 먹고 잘 수 있는 공간..
청소와 정리, 나를 돌보는 실천 봄날 햇볕이 따스하다. ​ 창문을 활짝 열고, 하루 종일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선다. 미세먼지 없는 날을 골라 겨우내 묵은 먼지를 내보내고, 신선한 바람이 집 안을 휘젓게 하고 싶다. ​ 청소기를 돌리고 총채를 들어 구석구석 켜켜로 쌓인 먼지를 쓸고 떤 후, 깨끗한 손걸레에 물을 묻혀서 책꽂이, 소파, 의자, 책상, 장식장 위아래를 말끔히 닦아내고 싶다. ​ 무엇보다 마법이라도 부려서 곳곳에 쌓아둔 책과 음반, 바닥으로 넘쳐흐르는 옷가지, 여기저기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한순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고 싶다. ​ 청소는 소(掃, 비를 들고 사당을 정화하는 일)를 행해서 더러움을 씻어내 깨끗하게 만드는 신성한 일이고, 정리는 정(整, 튀어나온 가지를 쳐내는 일)을 행해 우리 삶에 생겨난 어지러움을 청산..
인간의 품격 요즘 들어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사전 읽는 취미를 붙였다. 단어 하나를 찾아 뜻을 새기고, 이어지는 단어를 찾아 떠돌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상용자해』(박영철 옮김, 도서출판 길, 2022)가 여행의 길잡이다. ​ 시라카와에 따르면, 언어는 그 근본에서 모두 주술적 성격을 띤다. 말[言]은 그릇[口]에 형벌 도구인 여(余, 바늘)를 꽂아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이다. 이때 口는 ‘입’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축문을 담은 그릇’이다. 갑골이나 청동기에는 ‘ㅂ’ 닮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 모든 말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발화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신의 벌이 내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신은 언어에 깃든 뜻을 살펴서 되새길 줄 아는 사람에..
인간은 누구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갓생(God生). ​ 신(God)처럼 완벽해 모범이 되는 삶을 말한다. 갓생을 사는 이들은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늘 부지런히 생산적으로 삶을 꾸려 간다. 그 결과는 사회적 성공, 특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돈이다. ​ 임태우 감독의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에서 처음 이 말을 접했다. ​ ‘항상 최선을 다하는’ 갓생의 열정적 삶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은’ 드라마 주인공 남금필의 비루한 삶과 대비돼 역설적 긴장을 일으킨다. ​ 40대 중반의 남금필은 진정한 자신을 찾겠다면서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다. 억대 연봉을 버는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 갓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아무런 재능도 없고 꾸준한 노력조차 안 하는 그가 과연 두 번째 인생에서는 ..
은유 은유(metaphore)는 우리의 앎을 너머(meta-)로 옮기는(perein) 언어다. ​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면, 그 바깥에는 언제나 은유가 있다. 앎이 쌓여서 새로운 앎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은유가 일으키는 신비, 은유를 통해 언표된 앎, 은유에 이끌리는 호기심이 우리의 인식을 이끈다. 인식은 은유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시가 있는 한 현실은 혁명 된다.
근대 과학 - 틀리는 게 정상 우리는 지식을 주장할 수 있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포퍼에 따르면, 근대 과학의 혁명은 증명이 아니라 반증을 핵심 무기로 삼은 데에서 왔다. 개별자들은 자기 가설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과학 자체는 잠정적으로 입증된 모든 가설의 비판을 기초로 작동한다. 실험, 논리, 시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과학자들은 선배들의 언어를 시체로 만들어 무덤 속으로 보낸 후 기념비를 세운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진짜 위대한 점은 반증 자체가 아니다. 틀려도 살해당하거나 매장당하지 않는 지적 경쟁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포퍼는 말한다. "우리의 가설을 우리 대신 죽게 한다." 조선시대 당쟁사에서 가설의 패배는 실각, 유배, 사약이었다. 틀림은 곧 죽음이었다. 아직도 우리 ..
비트겐슈타인의 오두막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은 19세기에 양모 교역과 철강 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성에는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등이 드나들면서 연주하고, 구스타프 클림트가 누나 마르가레테의 결혼 기념 초상화를 그릴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른바 ‘엄친아’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버트런드 러셀에게 철학을 배웠다. 머리가 좋았다. 스승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스물아홉 살에 철학사상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이 책은 철학 탐구의 대상을 인간과 세계의 문제에서 언어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를 올바로 보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