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나, 『내일의 엔딩』(창비, 2024).
착한 사람이 착한 내용을 착하게 쓴 소설이다.
평온하고 담담한 문장이 우선 눈에 띈다.
요즘 소설에 넘실대는
인스타그램식 경구도 거의 없다.
그저 쓰러져 누워 버린
아버지를 6년간 간병하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 나는 것들을,
특히 자기 삶의 궤적들을
천천한 속도로 회고하고 확인할 뿐이다.
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영화엔 러닝타임이라는 게 있어. 네 속도만 고집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다른 시간도 좀 따라가 보고 그래라."
자기의 속도로 세상을 질주하는 게 아니라,
러닝타임, 즉 유한성(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시간, 다른 속도와 섞여서 살아가는 것,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성장이고 성숙일 테다.
단단한 디테일이 돋보였으나,
약간의 격정도 허용하지 않는 무난함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수 있다.
성찰과 회고 속에서
때때로 엿보이는 야수성,
더 삐딱한 마음이 깃들면 좋겠다.

반응형
'평론과 서평 > 소설과 희곡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미국인의 타이극기 축제 참여기 (성혜나, 「스무드」) (1) | 2025.03.04 |
---|---|
보르헤스와 탐정 소설 (0) | 2024.09.26 |
인간은 무엇으로 변화하는가 (0) | 2022.03.12 |
사랑의 고고학 ― 잃다, 파다, 스며들다 (0) | 2020.12.07 |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0) | 2020.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