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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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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말에 검정색, 빨강색, 하양색, 노랑색, 파랑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색을 빼고 검정, 빨강, 하양, 노랑, 파랑으로 써야 옳다. 아니면 검은색, 빨간색,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적거나 검은빛, 빨간빛, 하얀빛, 노란빛, 파란빛으로 적어야 한다. 이를 구별하는 건 편집자 입사할 때 맞춤법 시험 있으면, 자주 나오는 문제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 모르면, 전문가라고 하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요즘 책에서 자꾸 나와서 눈에 거슬린다. 혹시 그사이 맞춤법이 바뀌었나 해서 새벽에 찾아보기까지 했다. (물론 입말에선 검정색 같은 말도 쓸 수 있긴 하다.) 사실, 이런 건 인공지능이 잘 잡아낸다. 한컴 2024 같은 데서 문서를 열고, 맞춤법 기능 켜 놓은 후, 빨간 줄 그어져 있을 때마다, 한번씩 사전 찾아..
편집자 놀이 편집자들은 말놀이를 좋아한다.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 꽂히면, 그걸 이리저리 불리면서 다양한 사례나 문장을 만들어 본다. 문장의 가능성을 따져보고, 언어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다. 어느 웹소설을 읽다가,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했다.너 나 그 돈 안 준 지 몇 주 된 거 왜 말 안 해. 띄어쓰기 놀이 중 좀 흥미로운 사례였다. 단음절로 얼마나 긴 문장이 가능할까.한참 비슷한 문장들을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한동안 빠져서 했던 긴 어절 만들기 놀이가 있다. 나처럼조차라고까지밖에는같이 조사를 이용해서 뜻이 통하는 최대한 긴 어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단음절 긴 문장 만들기도 편집자 놀이로 괜찮아 보인다. 오늘 외부 면접자로 가서 편집 지원자에게 물어 본 질문! 글 쓰고 한컴2024나 ms워드 맞춤법 검사..
서양 중세사 학술용어 표기안(서양사학회 자료) 서양 중세사를 연구하거나 책을 편집해 본 사람들, 또는 관련 도서를 자주 읽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서양 중세사는 라틴어 표기를 비롯해서 각국어 표기, 현지 발음, 현재 해당 국가의 인명/지명 표기 등이 한 책에도 혼재해 있는 데다, 책마다/연구자마다 표기가 달라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러한 혼란 상태를 줄이기 위해서 서양사학회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학술단체협의회의 학술용어표준화사업의 일환으로 17년에 걸친 긴 시간을 들여서 학술 용어들을 정리하고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아래에 옮겨 적은 자료는 2023년 10월 서양중세사학회에서 발표한 서양중세사 학술용어표기안이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나,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여 아래..
OSMU, 문고본, 팸플릿 출판계에서 이중 시장 또는 다중 시장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흔히 이를 OSMU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OSMU는 당연한 전략으로 생각하고, 이중 시장에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같은 말이다. OSMU를 옆 동네에 가서 영화 만들고 드라마 만들고 다큐 찍는 것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OSMU는 어차피 소수만 가능하다. 아울러 출판 내에서 이중 시장을 말하면, 사람들은 설마 모든 책이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건 논의가 너무 '현재 내 책' 중심인 듯하다. 한국어 시장은 좁고, 내가 내는 책은 대개 이중 시장에 부적합하므로, 문고본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현재 출판 시장이 정체되어 있고, 앞날이 어두우니까 이를 타개해서 이리저리 머리 굴려 보는 일, 사..
헌책방, 중고 도서, 출판 시장 출판계 사람들은 흔히 중고 도서 시장이 책 판매를 저해하고 출판 경영을 악화시키만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기업형 온라인 중고 서점의 싼 가격과 편리성은 신간 판매를 위축시킬 수 있다.그런데 책의 역사를 보면, 그와 반대 현상도 나타난다. 15세기 이래, 유럽에서는 중고 도서 시장이 장서 구축의 주요 동력이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중고 도서 경매 시 카탈로그 제작을 의무화하는 등 중고 시장 활성화 정책을 펴기도 했다.처음엔 서점들 반발이 컸다. 그러나 중고 도서 경매로 얼마나 많은 기회를 얻는지 깨닫고 난 후에야 이들은 중고 도서 경매를 환영했다. 중고 경매는 개인 장서가가 더 빨리, 더 크게 서재를 구축하는 걸 자극했다. (원래 서점 입장에선 대개 신간보다 구간이 더 많이 남는다. 많은..
출판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또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 출판 관련 예산 삭감과 정책 변경, 도서관 검열, 출판 관련 기관 통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의 배치에서 드러나는 것은 출판 산업의 취약성이다. 오늘날 지원체제의 핵심인 정부의 출판지원사업이 사실상 검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 출판 통제는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는 압수수색, 폭행, 구속과 같은 물리적 검열이나 출판사 등록 취소나 판매금지 조치와 같은 제도적 검열이 아닌 예산 변경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의 언어도 ‘표현의 자유’나 ‘민주주의’, 혹은 ‘헌법’이 아닌 “출판권자의 권리 보장”과 “출판산업의 발전”으로 바뀌어 왔다.출판인들이 출판을 곧 문화의 뿌리이자 문명의 본질로 명명함으로써 국가가 마땅히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대상으로 구성할 때, 문화는 국가에 의해 지탱되..
학술 출판에 대하여 2 - 학술서란 무엇인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이룬 학문적 성과를 책으로 펴내는 방법에 대해선 아직 정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저 막연히 학술서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학술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주체의 자격을 기준으로 따져봐야, 교수나 학위 달고 엉터리 책을 써내는 사람도 많으니, 그게 학술서라고 할 수 없다. 동료 검토를 받는 학술지 등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서 평판을 얻은 사람이 쓰면 학술서일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들뢰즈/가타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걸 하지 않고, 학문적으로 대단한 책을 냈다. 니체는 대학을 떠나고 난 후 불후의 저작을 남겼다. 독자를 중심으로 정의하려 해도, 교수, 강사, 학생 등을 누구를 대상 삼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과 체제는 천차만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올라 있지 않고, 우리..
학술 출판에 대하여 1 “저희 편집부 직원들은 필자 관리와 책 제작에만 관여합니다. 책 교정은 특정 학문을 전공한 비상근 아르바이트에게 철저하게 책임을 맡겨서 상근자의 인건비를 아끼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필자의 책임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전공자의 꼼꼼한 검토를 받아 더 확실하게 출판할 수 있지요.”일본 호세대학 출판국 기획부장의 말이다. 2002년 황해문화에 실린 김응교 선생님의 「일본 대학 학술서적의 인프라」에 나와 있다. 오래전 글이지만 깊이 음미할 만한 데가 있다.알다시피 호세대 출판부는 일본을 대표하는 학술 출판사로 우니베르시타트 총서로 유명하다. 해외 사상에 관심 있고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 중 이 총서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2010년까지는 한 해 70권 정도 책을 11명의 편집자가 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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