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서평/소설과 희곡 읽기 (44)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느 미국인의 타이극기 축제 참여기 (성혜나, 「스무드」) 성해나의 「스무드」(현대문학 2024년 10월호)를 읽었다. 여러 면에서 독특한 소설이다.일단, 콜라주 기법. 여러 책에서 가져온 모티브 또는 세상 이해가 겹겹이 서사에 결합되어 있다.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에 나오는 아버지,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 나오는 제프 쿤스와 매끄러움 비판,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에 나오는 외로움 인식, 여러 코미디에서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행태를 풍자하는 데 흔히 등장하는 ‘두 유 노우’ 밈 등이 이 한국계 2세의 서울 오디세이아에 틈틈이 박혀서 서사적 건축물을 쌓아올린다. 게다가 한국 소설에선 흔하지 않은 성찰 깊은 블랙 코미디 기법도 흥미롭다. 화자는 듀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 용복은 한국과 일말의 연도 남기지 않으려.. 착한 소설 김유나, 『내일의 엔딩』(창비, 2024).착한 사람이 착한 내용을 착하게 쓴 소설이다. 평온하고 담담한 문장이 우선 눈에 띈다.요즘 소설에 넘실대는 인스타그램식 경구도 거의 없다. 그저 쓰러져 누워 버린 아버지를 6년간 간병하면서겪고 느끼고 생각 나는 것들을,특히 자기 삶의 궤적들을 천천한 속도로 회고하고 확인할 뿐이다.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영화엔 러닝타임이라는 게 있어. 네 속도만 고집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다른 시간도 좀 따라가 보고 그래라."자기의 속도로 세상을 질주하는 게 아니라, 러닝타임, 즉 유한성(현실)을 받아들이고,다른 시간, 다른 속도와 섞여서 살아가는 것,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성장이고 성숙일 테다. 단단한 디테일이 돋보였으나, 약간의 격정도 허용하지 않는 무난함으로.. 보르헤스와 탐정 소설 1. 보르헤스와 비오이 카사레스는 1930년대 초부터 반세기 넘게 우정을 쌓으며 작품 활동을 함께 한 생의 동료이자 문학적 동반자였다. 2. 두 사람은 남미 최초의 탐정 소설인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사건』(1942)을 공동으로 집필해서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Honorio Bustos Domecq)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은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제3의 인물을 창조했지요. 도메크는 비오이의 증조부의 성에서, 부스토스는 코르도바주에 살던 내 증조부의 성에서 따왔습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같은 필명으로, 『죽음의 모범』(1946), 『부스토스 도메크 연대기』(1967), 『부스토스 도메크의 새로운 단편들』(1977)을 출판했다. 이 외에도 두 사람은 .. 인간은 무엇으로 변화하는가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생활을 바꾸어 주겠다고 소리치는 목소리들이 기세등등하다. 주변에서도 온통 누가 더 잘 할까 이야기로 시끄럽다. 대선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 중 정말 인간이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생각해 본 사람은 드문 듯하다.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야심만만했다. 스물네 살 때 ‘가난한 사람들’로 데뷔해 ‘고골이 다시 태어났다’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자신감 넘쳤던 청년은 곧이어 유럽 전역에 몰아닥친 혁명의 물결에 뛰어들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 그룹에 참여해 차르 체제를 비판하고 농노 해방을 꿈꾸다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극적 효과를 노린 차르의 정치 쇼에 불과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처형장에 섰던 도스토옙스키는 닥쳐온 죽음의 공포 속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지.. 사랑의 고고학 ― 잃다, 파다, 스며들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사랑의 고고학’을 실천한다. 작가는 언어의 섬세한 솔질로 기억의 지층을 굴착해 사랑의 흔적을 발굴한다.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 어린 나이에 주로 첫사랑의 형태로 파묻힌 이 사랑은 퀴어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낯설고 두렵고 들끓고 뜨겁고 위험하고 조심스럽다. 이 책에 담긴 청소년 퀴어 서사를 꿰뚫는 동사는 세 가지, ‘잃다, 파다, 스며들다’이다.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상실 이후를 살아간다. 「우리들의 우리들」의 은푸른하늘은 아빠가 없고,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의 서해림은 엄마가 세상을 떴고,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강희는 친구를 영원히 잃었고, 「사랑을 말할 때」의 장한나는 언어를 빼앗겼다. 사랑과 상실의 결합은 에로스를 더 애타게 하지만, 투사할 대상을 잃은..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서른 해 전이다. 먼저 영화를 접했고, 다음에 소설을 읽었다. SF 소설을 읽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 나 같은 이들한테 흔한 경로다. 국내 개봉 영화 제목은 ‘핸드메이드’. 처음에는 handmade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handmaid였다. ‘시녀’라는 뜻이다. 지금은 영화를 보지 않지만, 당시엔 영화광이었다. 영화 의 폴커 슐렌도르프가 감독을, 노벨문학상을 나중에 수상한 해럴드 핀터가 각색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안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이건 습관이다. 영화를 보고 좋았는데, 원작이 있으면 거의 찾아 읽는다. (솔직히 반대 방향은 잘 안 그런다. 주로 실망하니까.) 작가 이름은 마거릿 애트우드. 흔.. “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메타포적 인생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에서 마을 청년 마리오 히메네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묻는다. 작품 배경은 1970년대 초 칠레의 이슬라네그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43년부터 정착해 살았고, 현재 그의 무덤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촌 마을이다. 마리오는 네루다한테 온 우편물만 배달하는 사람으로 특별 채용된다. 열일곱 살 마리오는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 시를 읽으면서, 또 네루다와 대화하면서 청년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독특함을 깨닫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사실대로’ 세계를 보는 것과 ‘제대로’ 세계를 보는 것은 다르다. 비의 물리적 실체는 하늘에서 떨어지.. 이전 1 2 3 4 ··· 6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