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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철학, 개발과 착취에서 경이와 생명으로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바다 앞에서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독일의 철학자 군터 슐츠가 『바다의 철학』(김희상 옮김, 이유출판, 2020)에서 묻는다. 바다는 인간을 때로는 매혹하고, 때로는 위협한다. 모험가의 가슴에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무한한 상상을 부풀리고, 항해자의 눈앞에 운명의 단두대를 세워 잔혹한 좌절을 불러온다. 다리 달린 육상 동물인 인간은 바다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동시에, 몸을 단련해 헤엄치고 배를 만들어 항해함으로써 자유를 이룩한다. 헤겔을 빌려 말하자면, 주어진 자연을 넘어서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것은 인류의 역사이고 정신의 운동이다. 바다를 생각하는 것은 곧 인간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바다가 일으킨 생각의 역사, 즉 ‘바다의 철학’을 들여..
테드 창, 과학의 문으로 들어가 철학의 출구로 나오다 모든 SF는 잠정적으로 반체제 소설이다 테드 창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00년대 초 《Happy SF》의 작가 특집을 통해서다. 이 작가는 중단편 8편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함께 받았다. SF를 즐기지는 않지만,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이른바 ‘더블 크라운’ 작품이 훌륭하다는 건 안다. 『듄』,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뉴로맨서』, 『엔더의 게임』, 『신들의 전쟁』 등이 이 목록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자유의 양식이다. 특정 내용, 문장 스타일, 쓰는 방법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시학은 기성의 규칙이나 굳어진 관습 같은 것을 좀처럼 따르지 않고, 작가가 작품 내부에 이룩된 질서만을 존중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고, 어떤 스타일도 거부하지 않는다..
24시간 시대, 신자유주의적 시간 정치의 기원 1980년대 정치·사회·문화 ‘생활 시간’ 변화 관점서 탐색 경쟁 이기려 밤낮없이 일하고 박카스·우루사 먹으며 버텨 정부 ‘3S’ 앞세워 시민 통제 TV에 의해 진짜 휴식 빼앗겨 1980년대는 군사 반란과 내란으로 시작되었다. 시민들에게 ‘파쇼 타도’가 당연한 정치적 과제로 주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 경제적으로는 ‘개방’이라는 형태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고, 사회적으로는 패스트푸드가 일상화되고 외국 상표 의상이 일상화되는 소비문화가 발흥했으며, 문화적으로는 ‘3s(섹스・스크린・스포츠) 정책’으로 압축되는 대중문화가 꽃피기 시작한다.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창비, 2020)에 따르면, 1980년대에 ‘지금 여기’를 둘러싸고 두 가지 정치가 충돌했다. 신군부 정권은 박정희 시대의 ‘적폐 청산’과 ..
격정의 언어로 쓴 대한민국 철학사 유대칠의 『대한민국철학사』(이상북스, 2020)는 뜨거운 글이다. 일종의 격문 형태로 쓰여진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승려의 철학인 고려의 철학, 양반의 철학이었던 조선의 철학에 이어서 대한민국의 철학을 정립하려는 뜻을 품는다.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의 명령에 답하는 현재의 주체는 민중이다. 동학농민혁명과 3.1혁명의 주체로 “고난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민중이다. 스스로를 철학 노동자로 칭하는 저자는 이 책으로써 민중들에게 먹일 ‘뜻’ 있는 철학을 생산하려 한다. 유대칠에 따르면, 한국 철학은 ‘나’를 ‘희망의 시작’으로 놓는 철학이다. “민중의 철학은 ‘나’로부터 시작해 스스로 ‘나’로 돌아오는” 주체의 철학이면서 이 “‘나’가 ‘홀로 있음’의 ‘나’가 아니라 ‘더불어 있음’의 ..
‘병자 클럽’의 독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기 위해 읽는다.”‘우리’는 외롭고 고립된 경험을 나누면서 조금 덜 아파지고, 질병이라는 보편의 우연성(‘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은 조금 덜 잔인해진다. 내 문제와 비슷한 동시에 각자 고유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하루를 더 이어갈 힘을 얻는다. (중략) 아픈 사람의 질병 경험 쓰기가 자기 치유와 구제 노력이듯, 아픈 사람의 질병이야기 읽기도 자기 치유와 구제의 노력일 것이다.(중략) 이미 세상을 떠난 먼 나라의 작가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던 내 머릿속의 병자 클럽 안으로 지금 이곳의 아픈 사람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저 경전들을, 병자 클럽의 권장 도서 또는 인기 도서를 책장에 채우고 복용한다. _메이, 「‘병자 클럽’의 독서」 중에서 ====이 글은 생애문화연구소 ..
현명한 사람이 돼 생명을 구하라 질병이 인간 삶의 진실 환기 “문학은 인간 곤경의 기록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오싱 젠의 말이다. 붓다에 따르면, 인간이 겪는 근본 고통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뿐이다. 이들은 신의 완전성(불멸)에 대비해 인간의 근원적 유한성(필멸)을 뼈아프게 환기한다. 질병은 인간의 몸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감염병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기간에 쏟아진 대량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흔히 이성을 상실한 채 패닉에 빠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윤리적 아노미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이 야만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문학이 인류의 정신을 수호한다. 『데카메론』과 『페스트』에서 보듯, 큰 병이 때때로 큰 문학을 낳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영화의 『감염된 독서』(글..
‘23년 만의 반등’ 일본 출판에서 무엇을 배울까 최근 일본 출판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해마다 일본 출판 관련 통계를 조사해 발표하는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일본 출판산업 매출액이 전자책과 종이책을 합쳐서 1조 5432억 엔(추정)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0.2% 증가한 것이다. 숫자만 보면 제자리걸음을 한 듯하지만, 지금 일본 출판계는 “바닥을 찍었다”면서 흥분에 싸여 있다. 일본 출판은 1996년 2조 6564억 엔을 기록해 매출 정점에 이른 이래 2018년 1조 5400억 엔에 이르기까지 무려 22년 동안 연속해서 후퇴와 축소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세부를 살펴보면, 종이책 및 잡지의 매출은 여전히 줄어들었다. 전년 대비 종이책 매출은 4.3% 감소한 6723억 엔, 잡지 매출도 4.9% 감소한 5637억 엔이다. 독자들 호응을..
문득문득 편집 이야기 - 상금과 선인세 신인상(문학상)의 상금 및 선인세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단편소설 또는 시 당선 상금을 주고 나중에 소설집, 시집의 선인세로 공제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색하다. 처음부터 출판을 전제로 한장편소설 공모하고는 다르게 처리되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와 관련해서 문학상(신인상)을 공모할 때 상금 대신 고료(원고료, 선인세) 등으로 기입하게 된 연유가 처음에는 전적으로 작가를 위한 선의였다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문학상 당선 후 받는 돈을상금으로 표시하면 세법상 세금이 25%가량 되기 때문에작가가 가져가는 돈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이 사실을 안 편집자들이 고심 끝에이를 원고료(선인세) 등으로 표기한 것이다.그러면 3.3%만 공제하면 되니까. 세월이 흘러 편집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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