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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학도서관 사서 나카지마 다케시의 『일본의 내일』(박제이 옮김, 생각의힘, 2020)에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여기에 소개한다.저자는 도쿄공업대학 소속의 소장 정치학자이다. 학교 이름에서 보듯, 도서관에 인문사회과학 책들이나 시사 관련 잡지들을 제대로 구비했을 가망성은 낮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쓰면서 염려했던 것 같다.“도쿄공업대학에 부임했을 때에는 도서관에 문과 분야의 도서 및 잡지가 빈약해서, 이걸 가지고 연구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다.”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가자, 대학 도서관 사서들이 도움을 주어서 관련 문헌을 수집해 주었다. 저자가 아사히신문사의 웹사이트에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연재했던 만큼, 문헌 수집의 속도가 중요했을 터인데, 사서들은 저자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전국의..
‘아빠 찬스’가 취업을 지배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출신 배경보다 근면 성실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 로런 리베라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쓴 『그들만의 채용 리그』(지식의날개)의 첫머리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시민들의 이 건강한 믿음을 배반한다. 이 책의 원제는 혈통(pedigree). 고학력 엘리트 학생들이 고임금 엘리트 직장을 독점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충격적인 책이다. 비결은 ‘아빠 찬스’다.부유한 고학력 부모는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재화와 문화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의 우월적 신분을 재생산한다. 자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고소득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의 일생을 처음부터 설계한다. 이 탓에 ‘대대로 엘리트’와 ‘우연한 엘리트’는 같은 대학을 나와도 들어가는 직장이 다르다.리베라 교수에 따르면, 첫 직장은 경제적 계층화가 발생하..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생태 비평지 《녹색평론》 창간사의 첫머리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생태운동가이자 문명의 철학자 김종철 선생의 글이다. 《녹색평론》은 1991년 11월에 첫 선을 보였다. 올해가 선생이 말했던 30년 후다. 다들 이 세상을 과연 어떻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날의 삶을 축복으로 느끼는가, 하루치 저주를 오늘도 힘겹게 견디는 중인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세상이 왔으면 하는가.물질적으로 풍요한 세상에서 어른들은 볼이 부풀도록 먹고 배를 두드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루하루 앞날이 불안한 세상을 사는 중이다. “당신들은 헛된 말로 저..
[사라마구의 말 001] 많은 손은 삶의 명령에 의해 [주제 사라마구의 말 001] 멀리 나아가면 땅은 평평해지다가 손바닥처럼 부드러워진다. 물론 많은 손은, 삶의 명령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서 호미, 작은 낫, 큰 낫의 손잡이 둘레에 좁게 오그라드는 경향이 있지만. _주제 사라마구, 『바닥에서 일어서서』, 정영목 옮김(해냄, 2019) ==== 읽기 시작. 언어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다.비유란 얼마나 조심스러운가.삶은 얼마나 육체를 쉽게 변형시키는가.작품을 읽다가 말고내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이 손은 어느 도구 둘레에 오그라들어 있을까.아마도 빨간 펜이겠지. 『바닥에서 일어서서』는사라마구 문학의 초기 걸작인데,한국어판으로는 가장 늦게 나왔다. 한 가족이 작은 수레에 짐을 싣고고향을 떠나서 이사를 하는 중이다.첫 부분에 나오는,광활한 들판에 가혹하게 쏟..
아동 학대에 대한 뒤늦은 기록을 읽다 지난 주말, 류이근 등이 쓴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창, 2016)을 꺼내 다시 읽었다. 올해 서울도서관에서 같이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으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비통하고 참담하고 쓰라리고 미안한 글이다. ‘뒤늦은’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엔 학대당했던 아이들의 생생한 실상이 담겨 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욕설과 협박에 시달리고,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방임되고, 피부와 내장이 닿을 정도로 굶주리다 아이들은 죽는다. 책에 따르면, 2008~2014년까지 어른의 학대에 목숨 잃은 아이들은 모두 263명이다. 한두 주에 한 번꼴로, 매년 평균 37명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생명의 숨결을 놓는다. 64.7%는 신체 학대, 31.4%는 방임이다.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점에서 ‘뒤..
루이스 세풀베다, 지구를 사랑한 소설가 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평생 독재와 맞서 싸운 자유의 수호자였고,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에 맞선 생태주의자였다. 또 “나의 조국은 스페인어”라면서 오로지 문학의 시민이기만을 원한 코스모폴리탄이기도 했다. 한 작가의 죽음에 대한 최고의 애도는 책장에 꽂아둔 책들을 꺼내서 먼지를 털어낸 후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이다. 인물과 배경을 상상하고, 대화와 묘사를 음미한다. 단어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구절에는 밑줄을 긋는다. 있는 책은 새로 읽어 메모를 더하고, 없는 책은 마련해 마저 읽어 생각의 재료로 삼는다. 한 차례 작품을 모두 읽어 기억의 주름을 깊게 파고 나면, 홀로 천도제라도 지낸 느낌이 든다. 비..
‘깜깜이 유통’이 부른 위험한 선택 최근 ‘교보문고 도매 진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좌담회가 열렸다. ‘출판사ㆍ도매상ㆍ지역서점’을 축으로 하는 출판 유통질서 전체를 흔들 만한 사안이라 출판인들의 관심이 무척 컸다. 교보문고의 2019년 매출액은 약 6100억원, 시장점유율 1위다. 온라인서점 1위 예스24의 매출액은 5330억원, 대형체인서점 2위 영풍문고는 1449억원, 도매업체 1위 웅진북센은 1490억원이다. 다른 업체들과 상당한 차이다. 우려부터 정리하자. 교보문고의 도매 진출은 단기적으로 웅진북센 같은 도매업체의 약화를, 장기적으로 시장 독과점 업체의 출현을 가져올 것이다. 이는 출판사엔 서적 공급률 인하 압력으로, 서점엔 도매상 몰락 이후의 경영 압박으로, 독자에겐 책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교보문고의 도매 진출이 ..
뒤로 걷는 사람들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뒤로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자들의 독특한 애도 방식이다. 뒤로 걷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며 등으로 밀고 나가는 걸음이다. ―강의모 ===== 아침에 일어나 SBS ‘책하고 놀자’ 강의모 작가의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입니다』(목수책방, 2019)를 읽었다. 목수책방의 새로운 기획 ‘읽는 사람’의 첫 책이다. 읽는 삶을 둘러싼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이 먼저 나온다. 생각하는 일상을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책과 함께하는 삶을 다룬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생생하다.이어서 나오는 코너는 ‘읽으며― 읽어 갑니다’라는 덧말 꾸러미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구절 놀이 할 때 흔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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