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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현명한 사람이 돼 생명을 구하라

최영화의 ‘감염된 독서’(글항아리, 2018)최영화의 ‘감염된 독서’(글항아리, 2018)

질병이 인간 삶의 진실 환기

“문학은 인간 곤경의 기록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오싱 젠의 말이다. 붓다에 따르면, 인간이 겪는 근본 고통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뿐이다. 이들은 신의 완전성(불멸)에 대비해 인간의 근원적 유한성(필멸)을 뼈아프게 환기한다.

질병은 인간의 몸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감염병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기간에 쏟아진 대량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흔히 이성을 상실한 채 패닉에 빠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윤리적 아노미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이 야만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문학이 인류의 정신을 수호한다. 『데카메론』과 『페스트』에서 보듯, 큰 병이 때때로 큰 문학을 낳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영화의 『감염된 독서』(글항아리, 2018)는 ‘감염병과 문학의 관계’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안나 카레니나』와 결핵, 『캉디드』와 매독, 『개인적인 체험』과 뇌수막염, 『작은 아씨들』과 성홍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발진티푸스, 『푸른 알약』과 에이즈, 『이것이 인간인가』와 디프테리아, 『인생의 베일』과 콜레라, 『성채』와 장티푸스, 『낙타 샹즈』와 임질 등 감염병이 낳은 문학 이야기를 하나로 모았다. 이 책에 따르면, 질병의 문학은 삶의 진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한테 끝없이 환기시킨다. 

“‘프로스치’(용서해줘)라고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프로푸스치’(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중략)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중략)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톨스토이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죽음』의 한 장면이다. 죽음의 육체적 진실은 인간을 무로 되돌리는 것이지만, 죽음의 정신적 진실은 인간적 삶의 실체가 용서를 둘러싼 환대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참된 안식을 가져온다. 죽음을 앞두기 훨씬 전에 이 일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인생은 좀 더 행복을 향해 부풀어오를 것이다.


코로나 시대, 문학이 전하는 ‘지상 명령’

커트 보니것의 『나라 없는 사람』에 나오는 제멜바이스의 일화도 인상 깊다. 제멜바이스는 산모의 건강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영웅이다. ‘수술 전 꼼꼼히 손을 씻을 것.’ 환자를 만지기 전에 의사의 손이 먼저 소독되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정착시킨 사람이다. 쉬운 일이었을까. 아니다. ‘전문가의 무지’를 무찌르는 데 목숨을 바쳐야 했다.

제멜바이스는 시체를 해부한 후 손도 씻지 않고 아기를 받는 의사들이 산모들을 감염시켜 죽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배 의사들한테 손을 씻으라고 권하자 선배들은 그를 경멸하면서 오히려 오스트리아 빈 의료계에서 추방한다. 고향 헝가리의 시골 병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그는 시체 절개 도중 메스로 자기 손가락을 찔렀다. 얼마 후, 그는 감염 탓에 패혈증으로 죽었다. 화자는 말한다.

“권력자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라.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당신의 생명을 구하라.”

억측가들한테 속지 말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 생명을 구하라. 이것이 코로나 시대, 문학이 전하는 지상명령이다.


#readingbook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