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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언어로 말하기 수십 년 동안 사이비 정치가 사람들의 감수성을 고취함으로써 그들을 오히려 어린애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해 ‘성인언어’는 어린애처럼 좋은 생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여, 다른 사람이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성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고려하는 언어의 성숙이다. _ 로베르트 팔러, , 이은지 옮김(도서출판 b, 2021) ===== 이렇답니다. 언제부터인지 출판에도 '나'를 주어로 한 책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나'의 고통을 전시하고, '나'의 불편함을 표시하고, '나'의 능력을 몰라 준다는 칭얼대는 어린이 같은 호소들...이 대량으로 복제되고 있다. '나'에서 '우리'로 크게 비약하지 못한 문집의 언어들이 여기저기 범람한다. 자기 언어를 타자의 언어로 만들지 못하..
언론, 윤리, 권력 저널리스트가 규범으로 삼고 따르는 것은 공동체의 도덕이나 국익이 아니라 더욱 큰 ‘윤리’이며 자기 내면의 ‘정의’입니다.(이는 ‘사회 정의’와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공공성’이라 부릅니다. (중략) 서로의 가치관이 대립하는 권력과 미디어의 관계야말로 공동체에는 건전한 형태이며, 개인에게도 자기 자신과 그가 속한 사회를 늘 상대화해서 생각하는 시선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저널리스트는 권력자와 거리를 둬야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이지수 옮김(바다출판사, 2021) 중에서 ===== 이렇답니다.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짤막한 글들과 대담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영화를 통해 억압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 주려고 늘 애썼던 고레에다 감독..
협력의 인류사 7만 년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지리 기술 제도』(이종인 옮김, 21세기북스, 2021)에서 7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사 전체를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자연 지리, 인간 기술, 문화 제도의 상호작용이 인류 역사의 핵심 동력이고, 그 방향은 인간 사이의 연결을 증진하는 쪽이었다. 코로나19가 보여 주듯 연결의 부작용이 적지 않았으나, 더 넓은 지역에 사는 이들이 더 많이 협력할수록 빈곤, 질병 등을 해결해 더 큰 번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7만 년 전, 기후 변화를 이기지 못한 몇몇 호모사피엔스 무리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아랍 지역에 진출한 순간부터 세계화는 시작되었다. 낯선 포식자, 병원균, 경쟁자와 마주치면서 인류는 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문화의 힘으로 협력을 창..
경기는 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가? 멋진 경기 장면은 뛰어난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선수들은 오직 승리에 몰두하지만, 지켜보는 마음에는 강렬한 미적 경험이 일어난다. 이보다 더 극적인 아름다움이 있을까. 미국의 철학자 한스 굼브레이트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매혹과 열광』(돌베개, 2008)에서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파고든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는 아레테(arete), 즉 탁월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다. 경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은 “현대의 가장 강력하고 대중적인 미적 체험”이다. 무엇보다 경기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만족”을 가져다준다. 승부가 벌어지는 순간에는 선수도, 관중도 모두 일상의 이해관계를 망각한 채 전적으로 경기 자체에 매혹된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미의 본질, 즉 무관심성 그 자체다. 이처..
20대의 독서 - 예스24에서 발표한 올 상반기 도서 판매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도서 구매 비중은 전년 대비 0.4%p 정도 감소. 전년에 비해 50대∼60대의 구매 비중이 증가한 반면, 이를 제외한 10대∼40대 모두 전년에 비하여 도서 구매 비중이 감소 - 관심 있는 이슈가 있다면 20대 독자들은 기꺼이 책을 구매하고 있음. (예) 2016년 페미니즘 이슈, 2020년 비대면 대학 교재(?) 등... -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20대들이 많이 산 책 200위를 살펴보니 수험서/자격증 45종, 고등참고서 35종, 외국어 분야 33종, IT 모바일 15종으로, 절반이 넘는 128종이 모두 교재성 도서.... ㅜㅜ - 예스24는 지난해 12월 조사기관 오픈서베이에 20세∼39세 집단 소비자 인식 조사를 의뢰..
경기, 인간 최고의 발명 경기를 고대 그리스어로 아곤(Agon)이라 한다. 인류학자 로제 카유와의 ‘놀이와 인간’(문예출판사)에 따르면 아곤은 속도, 힘, 기억력 등 인간 자질의 우월을 놓고 기량을 겨루는 경쟁 형태의 놀이다. 아곤의 승자는 그 자질에서 ‘최고의 인간’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현실 권력이 뒤집히는 쾌감을 준다는 데 아곤의 매력이 있다. 지위가 높거나 혈통이 좋거나 돈이 많아도 엄청난 노력 없이 아곤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아곤, 즉 경기의 첫 번째 매력이다. 경기는 현실의 위계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극도로 단련된 기량 없이 충족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 그 과정과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채 수행된다. 현실 권력이 개입하는 위반 행위는 경기 자체를 파괴한다. 그래서 모든 경기 단체는 승부 조..
고통에 대하여 고통 그 자체뿐만 아니라, 고통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것, 괴로움 자체보다도 내가 괴롭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 고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_ 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강유나 옮김(홍성사, 2019) 중에서 ==== 고통은 단지 신경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은 심신이 함께 작용하는 인지 문제에 해당한다. 가령, 신체적 고통은 (돈이 없어서) 마음껏 치료받을 수 없다는 정신적 절망 때문에 몇 배로 증폭된다. 대다수 고통에는 진통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을 생각하지 않도록, 마음에 평화를 불어넣는 환경 변화가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이 온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을 포함한 세계 선진국 경제에서 잊힌 말이 있다. 인플레이션이다. 물가는 오르고 돈값은 떨어져 삶의 질이 나날이 나빠지는 상황은 청년 세대의 기억엔 없다. 두 해 전 전세금 1억원이 올해 2억원이 되거나, 어제 달걀 한 판이 오늘 스무 개가 되는 세상에서 평온한 일상은 손쉽게 붕괴한다. 1970년대 말에 한 해 물가가 20~30% 상승하는 세상에서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 조짐이 이상하다. 농산물 가격, 국제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해 9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상승폭이 2%를 넘겼다. 한국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4월 말 물가상승률도 3.3%에 이르러 12년 만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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