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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 1초는 세슘 원자의 진동수(초당 91억 9263만 1770회)에 따라 결정된다. 하루는 지구 자전 운동이 아니라 이 진동수의 규칙적 쌓임으로 정해진다. - 지구 자전 운동은 아주 미세하게 느려진다. 이에 따라 원자초를 세계시의 기준으로 삼은 후 하루가 점점 길어지는 문제가 생겨났다. 그래서 2년마다 1초씩 더하는 윤초가 만들어졌다. -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정해서 유포하는 인공 시간이다. - 전 세계 세슘 시계는 약 320개이다. 이 시계들은 나노초 단위에서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국제 표준시는 그중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마스터시계 50개의 차이를 조정해서 생산한다. 이를 협정 세계시라고 한다. - 정확한 시간은 없다. 평균 시간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국제..
완독가 끝까지 읽는 사람. 무조건 샅샅이 읽는 사람. 완독가는 글자를 읽는다. 단어나 문장이 아닌 글자를. 마침표와 쉼표를 포함해 종이에 배열된 기호를 빠짐없이 읽는다. 모든 기호에 한 번 이상 시선이 닿게 하는 것. 그것이 완독가의 목표다. 완독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다.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재미라든가 쓸모 같은 것은 완독가의 시야에 없다. 완독가는 완독이라는 행위를 위해 책을 손에 든다. (중략) 완독가는 등반가와 다르다. 차라리 보도블록의 금을 모조리 밟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책에 꽂힌 사람. 완독이 끝나도 성취감이나 희열은 따라오지 않는다. 책을 덮으면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 _ 신해욱, 『창밖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21)..
고전이란 무엇인가 나는 고전을 “인간과 삶, 그리고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대가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전은 텍스트로서의 답을 가르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읽어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그게 진짜 공부이고, 교육이다. 삶의 강을 건너는 데에 크고 멋진 배가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다들 그런 배만 선망한다. 힘들고 매운 삶과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나만의 배를 건조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은 삶의 강을 건너는 나만의 배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_ 김경집, 『고전, 어떻게 읽을까?』(학교도서관저널, 2016) 중에서
층간소음, 누가 진짜 가해자인가 몇 해 전, 위층에 아이 있는 집이 이사했다. 이사 온 날, 좋은 과자를 사 들고 인사 왔다. 아이들이 소란해도 이해해 달라는 뜻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도 아이들 어지간히 뛰는 소리 정도는 배경음 삼을 정도로 무감한 편이라서 찾아온 성의가 고마웠다. 얼마 후, 아이들이 저녁에 너무 열심히 운동했다. 집에 있는 그림책 몇 권을 골라서 올라갔다. 말없이 선물을 내미니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이후로도 일은 있었다. 그러나 불편하진 않았다. 선물을 몇 차례 주고받았을 뿐이다. 요즘 층간소음 문제가 갈수록 심각하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관련 상담 건수는 2017년 2만2849건, 2019년 2만6257건으로 늘더니 2020년에는 4만2250건으로 폭증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이 늘어난 탓이다..
독서, 고독한 싸움 우리가 그 책에 다가가는 도중에 아무리 꼬불꼬불 구부러지고 빈둥빈둥하고 우물쭈물하고 어슬렁어슬렁하더라도 최후에는 고독한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_버지니아 울프
[후한서 이야기] 조조의 도굴 《동아일보》에 강인욱 선생의 연재 기고 「도굴 당한 ‘도굴 왕’ 조조의 무덤… 헛된 욕망의 쳇바퀴」에 조조의 도굴 이야기가 실렸다. 유명한 일화다. 도굴이 기승을 부리게 된 시점은 국가가 등장하고 왕이나 귀족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무덤에 수많은 보물을 넣어 저세상에서도 영화를 이어가고자 하면서부터다. 보물을 묻은 화려한 무덤이 많아지면서 무덤 속 보물을 탐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삼국지의 간웅(奸雄) 조조는 중국 역사의 대표적인 도굴의 왕으로 꼽힌다. 중국 사서 ‘후한서’에 따르면 원소와 조조가 전쟁할 때 조조가 무덤을 파헤치는 부대인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과 보물을 긁어모으는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부대를 만들었다. 이들이 기원전 2세기 살았던 한나라 왕족인 양효왕(梁孝王)을 비롯해 여러 무덤을 도굴해..
페미사이드, 여자라서 살해되는 여자들 최근 스물다섯 살 황예진 씨가 남자친구의 폭력 행위로 사망했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법원은 가해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살인죄 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하려 했다. 이건 현대 국가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흔한 사법적 처리 방식의 하나다. 유족들은 현장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려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과 함께 ‘데이트 폭력 가중처벌법’ 제정을 호소 중이다. 그런데 황예진 씨는 예외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남편, 애인 등 친밀한 사이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97명, 간신히 살아남은 여성이 131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최소로 잡은 숫자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도 있을 테니, 한국에서 여성 살해 관련 사건은 거..
너희가 1980년대를 아느냐고? ‘네가 1980년대를 아냐’고 꾸짖었던 교수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1980년대 초반엔 존재하지 않았고, 중후반에도 그저 생존하는 생물일 뿐이었으나, 그러므로 나는 1980년대를 몸으로 겪어내지 않았으나 그 시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싸우고 있다고. 내 일생의 쟁투는 전부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았던 일들에 닿아 있고, 그것에 부끄러움도 부채 의식도 느끼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당신이 살았고 감각했던 1980년대는 당신에게는 지나가 버린 한 시절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탐구해야 할 대상이므로. 지금 탐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당시의 당신에게보다 더 많은 자료가 주어져 있고, 조사와 검수를 통해 숨겨진 사실들이 밝혀진 바 있으며, 그러므로 나의 산문과 역사적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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