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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소리 없는 살인자 폭염은 하루 중 낮 최고 기온이 33℃ 이상일 때를 말한다. 폭염은 모든 기상 재해 중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다. 행정안전부의 ‘2019 재해연보’에 따르면 2018~2019년 자연재해 사망자는 폭염 78명, 태풍 21명, 호우 2명이었다. 1994년엔 폭염으로 3384명이 사망해 지난 100년간 단일 기상 재해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폭염을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폭염은 태풍이나 호우와 달리 피해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고, 피해자 대부분이 노인, 1인 가구, 빈곤층이어서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우리나라 폭염 관련 사망자 중 65%는 60세 이상 고령자이고, 나쁜 주거 환경, 낮은 소득 등 취약층 사망 위험도가 다른 계층보다 19.4%포인트 높다. 이는 『폭염 사회』에서 클라..
치아 격차 : 왜 가난한 사람들의 치아는 왜 더 심하게 썩는가 1980년대부터 대다수 치과의사는 질환 치료보다 미용 시술을 주로 하는 서비스 사업자로 변신했다. 수돗물 불소화, 항생제 등 기술 발달로 치과 환자가 줄면서 치과의사들이 새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1987년 미국 대법원의 의료 광고 허용에 이어서 1990년대 초 의료 신용카드가 발급되자 성형 구매가 폭발했다. 미백, 교정, 보철, 잇몸 성형 등 미용 시술은 이제 치과 진료의 80% 이상에 달하며, 사람들은 예쁘게 웃으려고 빚을 지고 대출금에 허덕이고 신용 불량자가 됐다. 1980년대 이후, 치과 병원이 성형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가 만나는 곳이 되면서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늘어났다.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치과 의료보험 혜택이 없다. 보험이 있어도 소용없다. 치과의사 절반은 공공 의료보..
저물녘 산속에서 갑자기 감회가 일어(日夕山中忽然有懷) 저물녘 산속에서 갑자기 감회가 일어(日夕山中忽然有懷) 이백 달은 누각 사이 봉우리를 머금고(月銜樓間峰), 샘물은 섬돌 아래 돌을 씻어 내리네(泉潄階下石). 깨끗한 마음 이로부터 얻으니(素心自此得), 참된 즐거움은 바깥에서 얻는 게 아니라네(眞趣非外借). ==== 산속 개울에서 달 보면서 발 담그고 싶은 밤이네요.
르네상스와 도서관 르네상스(renaissance)는 프랑스어로 '부활' '재생'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1492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들어왔다. 『서구 예술에서 르네상스와 르네상시스』에서 파노프스키는 리나시타(rinascita)와 리나시멘토(rinascimento)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이탈리아에서 대두된 이 개념은 마니에라 앙카(la maniera antica, 고대 양식)나 테데스카(tedesca, 독일 양식, 고딕적 양식)에 대립되는 부오나 마니에라 모데르나(la buona maniera moderna, 현대 양식)이었다. 네상스(naissance)는 '이 세상에 등장하는', '태어나는'이라는 뜻이다. 접두사 르(re-)는 '반복'의 뜻이다. 따라서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나다' '재생하다'라는 뜻이다. 당시 학자들, ..
춤추는 눈물 서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끝없는 그리움에 하늘로 한껏 솟아오르지만 유한한 행위는 때가 되면 바르르 몸을 떨며 머리를 숙이는 힘 없는 분수와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가 몰랐을 것들, 우리의 즐거운 힘들이 이 춤추는 눈물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 이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형상시집』(김재혁 옮김, 책세상, 2000)에 실려 있다. 인간의 삶이란 분수와 같다. 무한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려 하나, 유한성 앞에서 힘없이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높이 뛰지 않는 자는, 춤추면서 울지 않는 자는 우리 안에 즐거운 힘들이 있음을 절대 알지 못한다. 울면서 치솟는 것, 인생의 비의는 거기에 있다.
인생이란 비오는 한밤중에 다리를 건너는 것 건너는 사람 여태천 정말로 뭔가를 보지 못할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일 뿐 사람들은 어서 여기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칠흑의 이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누군가 또 다리를 건너나 보다. 이런 밤이면 인기척도 무섭다.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인지 재난방송이 간격을 두고 울린다. 선한 의도가 때론 누군가의 목줄을 죄고 지금의 기쁨이 십 년 뒤의 후회가 될 수도 있는 법. 떠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흙탕물은 단비가 되어 어딘가에 내리기도 하겠지만 이번 삶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텅 비어 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는다. 다리를 건너는 저 사람도 필경 우산이 없을 것이다. 젖을 대로 젖어서 건너는..
고독에 대하여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오른다. 고독은 아득한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어 주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다 비로소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동틀녘에 고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모든 골목이 아침을 향할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몸뚱어리들이 실망과 슬픔에 서로를 놓아줄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할 때, 고독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 이 시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에 실려 있다. 고독은 초기부터 릴케 시의 핵심 개념이었다. 1902년 스물일곱 살의 릴케는 낯선 도시 파리에서 이 시를 썼다. 릴케에게 파리는 눈부시게 황홀한 예술의 낮과 소외감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고독의 밤이 ..
오디오 SNS, 독자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출판의 일은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고, 쓰기와 읽기를 이어 주며, 책과 인간의 만남을 창출하는 게 전부다. 문제는 둘을 잇는 기술과 방법이 늘 변한다는 데 있다. 독자는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소통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양한 미디어가 넘쳐나는 요즘엔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고 책을 잘 만드는 일은 기본이고 텍스트·이미지·동영상 등 서브 콘텐츠를 이용해 독자와 대화할 줄 아는 출판사가 생존에 유리하다. 지난 20년 동안 출판은 확연히 달라졌다. 출판사마다 온라인 블로그를 열고 카페를 구축해 회원을 모으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독자와의 직접 소통에 나섰다. 덕분에 인스타그램은 ‘북스타그램’이 됐고, 유튜브는 ‘북튜브’로 변했고, 독자 모임은 ‘북클럽’과 ‘아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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