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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협력의 인류사 7만 년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지리 기술 제도』(이종인 옮김, 21세기북스, 2021)에서 7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사 전체를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자연 지리, 인간 기술, 문화 제도의 상호작용이 인류 역사의 핵심 동력이고, 그 방향은 인간 사이의 연결을 증진하는 쪽이었다. 코로나19가 보여 주듯 연결의 부작용이 적지 않았으나, 더 넓은 지역에 사는 이들이 더 많이 협력할수록 빈곤, 질병 등을 해결해 더 큰 번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7만 년 전, 기후 변화를 이기지 못한 몇몇 호모사피엔스 무리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아랍 지역에 진출한 순간부터 세계화는 시작되었다. 낯선 포식자, 병원균, 경쟁자와 마주치면서 인류는 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문화의 힘으로 협력을 창출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화는 일곱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졌다.

첫째 단계는 구석기시대다. 7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인류는 지구 전역에 자리 잡았다. 인류의 대분산을 가능하게 한 힘은 협동이었다. 이주의 난관을 이기려고 인류는 언어를 발명해 소통 능력을 고도화하고, 예술・종교 등 문화를 만들어 집단 협력을 촉진하고,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높여 경쟁 집단을 무찔렀다.

협력의 단점도 있었다. 외부 집단에 대해 배타적・적대적이며, 대형 동물을 멸종시키는 등 생태 파괴를 저질렀다. 구석기시대에 나타난 세계화의 혜택과 폐해는 인류 역사 내내 반복된다.

둘째 단계는 신석기시대다. 1만 년 전부터 5000년 전에 걸친 이 시기에 ‘농업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정착 생활이 보편화됐다. 농사짓기 좋은 기후 조건을 갖춘,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축, 이른바 ‘행운의 위도’를 따라 문명이 일어서고 인구 밀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농업의 저주’도 함께 시작됐다. 도시에 살면서 인류는 자유와 평등을 잃었고, 영양 상태가 나빠지고 전염병의 습격을 받았으며, 경작지 확대를 위해 수렵민 등과 폭력적 쟁투를 벌였다.

셋째 단계는 기마 시대다. 이 시기는 5500년 전 말을 길들이면서 시작돼 3000년 전에 끝난다. 말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장거리 수송 수단을 제공하며, 침략과 약탈 등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유용했다.

기마술을 이용해 넓은 지역을 신속히 통치할 수 있게 되자, 광대한 지역을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정치 조직인 기마 제국이 최초로 출현했다. 야금술 발달로 나타난 청동 무기와 비대면 소통 수단인 문자가 말을 보조했다.

넷째 단계는 고전 시대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후 1500년까지 ‘정치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로마, 페르시아, 한나라 등 광대한 영토를 소유한 제국들은 종족과 신앙이 다른 이들을 함께 다스리는 데 성공했다.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관념을 불어넣는 종교와 사상이 도왔고, 이를 위해 교육이 생겨나고 행정 제도가 마련됐다. 인구 집적 효과에 따라 기술 발전과 사회 혁신이 눈부셨고, 실크로드 등 제국 간 교역로도 만들어졌다.

다섯째 단계는 해양 시대로, 1500년에서 1800년까지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대서양 항로 및 희망봉을 도는 유라시아 항로의 개척 이후, 유럽 국가들은 집중적 투자로 확보한 강력한 해군력을 이용해서 바다 건너 먼 지역을 약탈했다. 국가의 허락을 얻은 탐욕적 장사꾼들이 무력으로 땅을 정복하고, 수백만 명을 노예로 부리면서 무자비한 착취를 일삼았다.

여섯째 단계는 산업 시대다. 1800년부터 2000년까지, 이 시대의 특징은 기술과 전쟁의 세계화다. 증기 기관과 석탄 산업을 결합해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이 이를 주도했고, 미국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자연력 중심의 유기 경제가 몰락하고, 생산성 높은 화석 연료 경제가 우위에 서면서 유럽이 아시아를 처음 앞질렀다.

산업화에 성공한 북대서양 연안 국가들이 글로벌 패권을 추구하면서 다른 지역을 수탈했고, 끝내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파멸 위기에 몰아넣었다.

어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세계화로 인해 엄청난 번영을 이룩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눈부신 혁신을 자극했고, 지식과 기술의 전파 속도도 빨라지면서 전반적 생산성이 높아져 생활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고, 질병의 위험을 제거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곱째 단계는 디지털 시대로, 2000년 이후 현재까지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엄청난 속도로 혁신을 주고받으며 세계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오히려 짙어졌다. 여섯째 단계부터 쌓여 온 문제가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는 중이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하고, 생태 파괴와 기후 재앙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며, 패권의 다극화 과정에서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전쟁 위험이 커졌다.

인류의 힘은 이제 너무나 커져서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자신을 파멸에 몰아넣은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맞서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다극화에 맞는 국제 규범을 마련하며, 글로벌 평화를 위한 새로운 보편 가치를 개발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코로나19는 세계화의 어둠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국가 장벽을 높이고 민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제국주의의 망령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커지는 중이다.

구석기시대 이래 인류는 세계화에 따른 폭력과 긴장과 갈등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인류는 동시에 상호 연결의 혜택을 누리는 쪽으로, 즉 폐쇄보다 개방을, 단절보다 교류를 언제나 문제의 해결책으로 택해 왔다. 저자가 오늘날 인류의 위기에 맞서 국제기구를 개혁함으로써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협력을 창출하는 데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사실, 현대인은 구석기인들이 이룩한 협력 문화, 즉 구석기적 현대성을 인간 조건으로 물려받아 살아가는 ‘현대적 구석기인’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 잘 돕거나 화합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1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형성된 추론과 협력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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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문화일보 서평입니다.
내용을 조금 보충했습니다.

원제는 The Age of Globalization이다.
한국어판 제목은 부제에서 나왔다.
세계화라는 말이 진부해 보여서 그런 듯하다.

어쨌든 이 책은
대분산과 대수렴이라는
최근 역사학계의 큰 흐름을
무지무지 잘 정리해 보여 준다.

자연 지리, 기술, 문화 제도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보여 주는 책으로
웬만한 세계사 책보다 훨씬 훌륭하다.
제목 좀 마사지해서....^^
청소년들한테 읽히면 좋을 것 같다. 

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이종인 옮김(21세기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