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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경기는 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가?

멋진 경기 장면은 뛰어난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선수들은 오직 승리에 몰두하지만, 지켜보는 마음에는 강렬한 미적 경험이 일어난다. 이보다 더 극적인 아름다움이 있을까.

미국의 철학자 한스 굼브레이트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매혹과 열광』(돌베개, 2008)에서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파고든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는 아레테(arete), 즉 탁월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다. 경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은 “현대의 가장 강력하고 대중적인 미적 체험”이다.

무엇보다 경기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만족”을 가져다준다. 승부가 벌어지는 순간에는 선수도, 관중도 모두 일상의 이해관계를 망각한 채 전적으로 경기 자체에 매혹된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미의 본질, 즉 무관심성 그 자체다.

이처럼 경기에는 아름다움과 관련된 매력 요소가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무질서의 혼돈을 뚫고 등장하는 선수들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신체다. 탁월함을 얻기 위해 극도로 단련된 신체는 그 자체로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패배 직전에 몰렸던 선수가 고통을 견디다 역전의 한 방을 날릴 때 우리는 전율한다. 죽음의 고난 속에서 끝내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은 미적 경험의 주요한 특질이다.

위기의 순간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선수들의 무의지적 움직임 역시 너무나 우아해서 우리 넋을 빼놓는다. 우아함이란 주어진 동작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도약 속에서 태어난다.

도구는 인간 한계를 확장한다. 가령, 양궁을 보자. 도구와 하나 된 인간이 신체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먼 과녁 한가운데에 화살을 맞히는 모습은 경이와 기쁨을 준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는 것도 아름답다. 약속된 플레이를 자로 잰 듯 정확히 해내는 축구 선수들은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경기 중 우리는 에피파니(epiphany), 즉 진리의 현현을 체험한다. 승부의 순간 우리에겐 신이 깃들었다 떠난 듯한 느낌이 찾아온다. 예기치 못한 동작이 어느새 위업을 성취한 후, “재빨리,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다. 이것이 “경기를 관전할 때 우리가 느끼는 환희의 원천”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 삶에는 여전히 괜찮은 무언가가 존재하며, 이 세상에 잠시 살다 가는 일이 회한만이 아니라 열정과 찬양으로 차 있다는 것”을. 이것이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매혹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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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세계일보> 칼럼입니다.

이 책은 국내에 보기 드문

스포츠 미학 책입니다.

스포츠는 아편이지만,

황홀하고 아름다운 도취제죠.

 

한스 굼브레이트, 『매혹과 열광』, 한창호 옮김(돌베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