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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경기, 인간 최고의 발명

경기를 고대 그리스어로 아곤(Agon)이라 한다.

인류학자 로제 카유와의 ‘놀이와 인간’(문예출판사)에 따르면 아곤은 속도, 힘, 기억력 등 인간 자질의 우월을 놓고 기량을 겨루는 경쟁 형태의 놀이다. 아곤의 승자는 그 자질에서 ‘최고의 인간’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현실 권력이 뒤집히는 쾌감을 준다는 데 아곤의 매력이 있다. 지위가 높거나 혈통이 좋거나 돈이 많아도 엄청난 노력 없이 아곤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아곤, 즉 경기의 첫 번째 매력이다.

경기는 현실의 위계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극도로 단련된 기량 없이 충족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 그 과정과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채 수행된다.

현실 권력이 개입하는 위반 행위는 경기 자체를 파괴한다. 그래서 모든 경기 단체는 승부 조작, 약물 복용 등 규칙 파괴자에게 출전 정지, 자격 박탈 같은 강도 높은 처벌을 가한다. 올림픽 종목은 더 엄격하다.

수영 종목에서 전신 수영복 착용 등 기술 도핑을 금지한 것은 놀라울 뿐이다. 자본과 기술의 격차가 경기에 영향을 못 미치게 하고 순수한 인간 자질만 겨루게 함으로써 이들이 아곤의 원리를 수호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낼 만하다.

경기의 기본 원칙이 공정히 지켜질 때 참여자들은 타고난 자질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더 멋있게, 더 정확하게, 더 끈질기게….

경기를 통해 선수는 자기 역량의 끝자리를 확인하는 기쁨을, 관중은 최선을 다하면 인간이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경기는 우리에게 자기 한계가 확장되는 듯한 숭고한 기쁨을 줌으로써 인간 존재를 찬양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걸작인가!” 이것이 경기의 두 번째 매력이다.

아곤에서 파생된 말인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고대 희랍의 올림픽에선 연극, 시가, 변론술 등도 겨루었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연극의 주역을 뜻한다. 프로토(proto, 맨 앞의)와 아곤을 합친 말에, 접미사 이스트(ist, 사람)가 붙어서 이루어졌다. 아곤의 주인공은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만이 아곤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인간 걸작, 즉 주인공은 저절로 될 수 없다. 경기에서 이길 만큼 자신을 단련하려면 극도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아곤의 파생어 중 하나가 아고니아(agonia), 즉 고통이다.

월계관의 주인공은 고통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월계관을 쓰려면 누구나 경쟁자를 모두 무찌를 만큼 단단해질 때까지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아곤에 나선 이들의 임무를 한 줄로 정리했다. “인간은 극복해야 할 무엇이다.”

아곤의 발명은 자연의 한계를 넘어 문명의 도약을 가져온 인류사적 사건이다. 희랍인들은 자기보존을 위한 강렬한 투쟁에 내재한 활력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즉 기량을 끝까지 발휘한 승자가 명예를 독차지하면서도, 경쟁에서 진 패자가 목숨을 잃거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경쟁 방식을 발명했다.(이것은 전쟁과는 반대다.)

경기는 인간을 끝없이 향상한다. 패자는 승자의 영예를 존중하며, 승자는 패자를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다.

그러나 패자는 오직 설욕을 위해서만 승자를 인정하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승자를 모방하면서 이를 뛰어넘는 자신을 창조하려 애쓴다.

승자 역시 패자의 추격을 알기에 날마다 자기를 이겨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인간은 강해지고 기록은 더 좋아진다.

경기 덕분에 인간은 패배가 두렵지 않은 자유 경쟁의 무한 회귀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자신을 극복해 갈 수 있었다.

경기는 인간 최고의 발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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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올림픽 경기를 보다가 쓴 칼럼.

패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도와서

다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문명의 한 특징이다.

안전망 없는 사회는 야만이다.

 

로제 카유와, 『놀이와 인간』, 이상률 옮김(문예출판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