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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과 희곡 읽기

보르헤스와 탐정 소설

1.

보르헤스와 비오이 카사레스는 1930년대 초부터 반세기 넘게 우정을 쌓으며 작품 활동을 함께 한 생의 동료이자 문학적 동반자였다.

2.

두 사람은 남미 최초의 탐정 소설인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사건』(1942)을 공동으로 집필해서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Honorio Bustos Domecq)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은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제3의 인물을 창조했지요. 도메크는 비오이의 증조부의 성에서, 부스토스는 코르도바주에 살던 내 증조부의 성에서 따왔습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같은 필명으로, 『죽음의 모범』(1946), 『부스토스 도메크 연대기』(1967), 『부스토스 도메크의 새로운 단편들』(1977)을 출판했다. 이 외에도 두 사람은 공동으로 이외에도 『최고의 단편 탐정소설 선집』(1943), 『두 가지 놀라운 환상』(1946), 『변두리 사람들』(1955), 『믿는 자들의 낙원』(1955)을 비롯해 다수 작품을 완성했다. 두 작가의 공동 집필 작품은 대부분 탐정소설로 분류되거나 탐정소설 기법을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3.

보르헤스는 추리소설의 패러디를 통해 무질서와 비이성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고전적 탐정소설 기법을 빌려서 소설의 허구성을 극대화한 변형적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

철학적 사유와 신비주의적・추리적 요소를 결합한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을 필두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1941)과 『픽션들』에 포함된 다수 작품이 탐정소설에 대한 패러디적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4.

보르헤스는 포, 체스터턴, 디킨스, 스티븐슨 등이 쓴 영미 범죄 문학과 탐정소설에 큰 관심이 있었다. 체스터턴을 언급하면서 보르헤스는 말했다.

“탐정소설이 소멸한다고 해도 이 장르는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브라운 신부가 발견하는 이성의 핵심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우리가 두려워했던 초자연적이고 괴기적인 것 때문이다.”

이는 고전 탐정소설의 외연을 확장한 체스터턴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동시에 추리적 성격과 형이상학적 담론을 결합한 자기 작품의 독창성을 밝혔다.


5.

보르헤스는 자신과 밀접한 다섯 가지 문학적 주제 중 하나로 “에드거 앨런 포가 남긴 정확하고 엄격한 장난감, 즉 탐정소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보르헤스 탐정소설의 핵심 작법은 패러디와 풍자다.
_ 이경민,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사건』, 문학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패러디」, 이베로아메리카연구(2020), 31권 3호 중에서
 

보르헤스 초상(출처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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