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는 현상
1970년대부터 시작된 서비스산업의 성장과 1980년대에 시작된 ‘2차 경영혁명’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 역사적 배경을 이룸 → 외주 기업 노동자들은 피라미드 구조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노동 강도 증가 등의 현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음
액화노동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의 방식, 작업장 범위, 정해진 노동시간, 고용주와 노동자의 명확한 관계에서 벗어난 비표준적이고 비정형적인 노동 형태를 포괄하며, 비정규직, 하청노동, 프리랜서, 긱노동, SNS 크리에이터, 크라우드노동, 플랫폼노동 등이 여기에 해당함
액화노동은 겉으로는 대등한 존재의 독립적 계약 관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속성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 → 종속성에 따른 불안정성을 경험하나 법 제도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보장 제도로부터도 배제되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임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인력을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대체하려 직원 관리 비용, 해고 비용, 직업 훈련과 교육 비용, 사회보험 비용 등을 절감하나, 노동자들에겐 불안정성의 증가를 의미할 뿐 → 고정 근무 시간의 붕괴, 노동과 여가의 경계 희석, 기업 내 새로운 관리 및 통제 방식 도입, 업무 과정 재구성,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종속적 자영업) 등이 이어져 결국 노동시장에서 발생할 수 잇는 위험을 개인이 직접 떠안아야 하는 상황 초래
2018년 국제노동기구의 국제 종사상 지위 분류(ICSE)에선 기종늬 ‘임금노동자-자영업자’ 구분을 ‘종속취업자-독립취업자’로 바꿈 → 노동 형태 구분에 단순히 고용주에게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지 아닌지의 유무보다 ‘종속’ 여부가 더 중요함 (예) 특수 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 2020년 한국의 종속적 자영업자 비율은 5.0% 수준이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4.1%를 더하면 액화노동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약 9.1% 수준임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들이 일시적인 프로젝트나 단기 작업을 수행하고, 그 노무를 시장에 팔고 거래하는 것으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노동환경을 조성 →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된 환경은 액화 노동을 심화함 → 다수 평가자에 의한 별점과 알고리즘에 의한 정교한 통제를 통해 고용관계의 모호성 극대화(배달 플랫폼은 자영업자의 노동자화를 가져오는 게 아닐까?) → 일감이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여 다수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원자화 현상에 따라, 노동 대가는 낮아지고, 따라서 노동자는 더 많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플랫폼에 상시 접속해야 함
“웹툰 작가는 작품 내용, 연재 일정, 분량 등을 플랫폼의 요구에 따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플랫폼은 인기 순위나 노출 빈도를 조절하여 작가들의 수입과 인지도를 직접적으로 좌우할 수 있으며, 계약 조건도 플랫폼 측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으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실상 플랫폼의 정책과 알고리즘에 종속되어 있다.”(226쪽)
액화노동에서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감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자들은 협상력이 약화하고, 소득 불안정성은 심화 → 현재 노동 관련 법은 모두 일자리, 즉 임노동 계약 관계에 있는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이들은 법의 보호에서 제외되고, 사회보장 제도에서도 배제됨
액화 노동 현상은 노동의 상품화 현상을 가속함으로써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 훼손 → 사회보장제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동자가 인간적 존엄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시장과 시장 소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 노동의 탈상품화 현상 유도 → 액화노동자들은 탈상품화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되어 오히려 시장 종속성이 강화되고 있음
“모든 일하는 사람과 노동자가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보다 더 진화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분배제도의 마련,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 강화, 그리고 기술 발전에 따라 확대되는 비대칭적 정보 독점 해소 등이 필요하다.”(235쪽)
_ 이승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문학동네, 20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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