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60)
근대 사회와 감각의 대전환 눈은 오래전부터 지적 능력과 결부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계몽시대 여명기에 문해력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의 지배적 감각이 되었다. 직업적 전문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보기’가 ‘하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전문가 밑에서 몇 년씩 수습생으로 생활하면서 육체적 직관을 훈련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신 명망 있는 배움의 터전에서 책 읽고 시험 쳐서 졸업장을 받았다. 이런 경향이 유난히 눈에 띈 분야가 의학이다. 중세 때까지 의사는 험한 날씨를 무릅쓰고 일일이 환자를 찾아서 왕진을 가거나, 촉진이나 맥진처럼 손을 사용하는 기술로 환자를 진단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러한 기술들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다. 아울러 환자에 대한 친밀한 태도를 발전시킨 전통 치료사와 조산사는 공인 지식을 지닌 전..
스킨십 문화의 차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피터 앤더슨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 성적 표현 같은 스킨십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요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첫 번째 요인은 기온이다. 아랍,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지중에, 남유럽, 동유럽 등에서 온 사람들은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추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일수록 신체 접촉을 자제했다.춥고 척박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했으므로, 추운 지방 사람들은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추운 기후 덕분에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움직였으나, 전반적으로 냉정한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반면에 따뜻한 지역에선 느긋하고 개방적인 문화가 발달했다. 항상 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으므로, 스킨십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웠다. 두 번째 ..
악수의 역사 악수(握手, handshake)는 두 사람이 상대방 손 중 하나를 맞잡는 인사법이다. 흔히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짧게 흔드는 동작을 포함한다. 문화권마다 그 빈도는 다르지만, 악수를 통한 인사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만남, 이별, 축하, 합의 등을 표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악수는 흔히 선한 의도를 드러내는 데 쓰인다.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려고 선사 시대 때 이미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그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빈 손을 뻗어 내밀면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보일 수 있기에, 즉 상대를 해칠 마음이 없음을 보여줄 수 있기에 이러한 설명이 그럴듯하게 여겨졌을 테다. 또 마주 잡은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드는 행위 역시 소매에 감추어졌을 수 있는 칼 등을 제거..
자본주의와 인간 감각 『경제학・철학 수고』(1844)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 감각을 어떻게 퇴행시키는지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예술을 즐기는 감각을 기르려면, 누구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자든 가난하든 자기 감각을 단련할 틈을 내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서서히 감각 능력을 빼앗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거리의 악취, 떠들썩한 소음, 눈을 가리는 희뿌연 먼지 등에 오랫동안 노출되고, 오랜 시간 공장에 갇혀 비좁은 공간에서 기계에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낸다.  ‘문명의 오물’ 속에 처박혀 사는 그들은 끝없이 해로운 자극에만 노출될 뿐 양질의 감각적 즐거움을 접하지 못하면서 자기 감각을 온전히 누..
금수저 연예인이 늘어나는 이유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계급의 종말을 선언했다. 부모의 재산, 지위, 학력 등이 아이들 성공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직 아이들이 갖춘 능력만이 신분 이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실제론 “부모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혐오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 갈수록 현실이 되었다. 특히, 선망하는 직업, 좋은 직장에 대한 사회적 봉쇄가 심각해졌다. 『계급 천장』(사계절 펴냄)에서 샘 프리드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미국 스워스모어대 교수는 타고난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성공 가능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선연히 보여준다. 수많은 조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개인 노력과 재능만으로 좋은 직업을 얻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
읽는 문화에 대한 단상 1 읽기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은 인간을 지나치게 읽기만 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자체가 거의 텍스트 덩어리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 2 읽기는 늘어났지만, 독서는 줄어들었다. 출판은 더 이상 읽을거리의 최상위 공급자가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책, 신문, 잡지 등 출판산업이 공급하는 상품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여가 중 독서 시간, 도서관 이용률 및 대출률, 서점 방문 비율 등도 마찬가지다. 그 하락 추세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현저하다.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킬 방법은 솔직히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잘해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엔 아마 꾸준히 하락하다가 성인 독서율 30~35%에서 정체 상태에 접어들 것 같다. 한 사회의 3분의 1 정도는 책을 통한 자기 수양이 중..
출생률 저하와 한국 출판 선진국에서 출생률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독립성이 중요해질수록 출생률은 떨어진다. 교육받고 똑똑한 여성이 취업을 통해 경제적 독립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아이의 출산과 양육보다 자기실현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출생률 저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의 공통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회 발전 속도로 인해 이에 미처 적응할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가 기록적 저출산(2023년 0.68명 예상)이다. ​출생률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선진국은 세 나라밖에 없다. 스웨덴(제도적으로 양성평등 강제), 프랑스(정상 가족 해체), 미국(이민)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같은 보수 정당들은 대개 미국식 해결책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선별 이민이다. 고학력 ..
최초의 이주 동물 21세기가 시작할 무렵 캐나다 킹스턴 시 부근의 폐광을 탐사하던 고생물학자들은 바위에서 알 수 없는 무늬 혹은 자국을 발견했다. 더 조사해보니 그 무늬들은 그때까지 발견된 발자국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화석이 오래전에 멸종한 가재와 지네의 잡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길이는 약 45센티미터로, 발자국이 너무 많아 정확한 다리 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 16~22개 사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화석 무늬로 보아 이 동물이 꼬리를 끌면서 모래사장을 황급히 기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모든 동물들이 바다에 살고 있을 때 이 동물은 막 대양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온 것이었다. 이 가재 지네(lobsterpede)는 약 5억 3000만 년 전에 완전히 다른 두 서식처 사이를 이동했으니 상징적으로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