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읽는 문화에 대한 단상

1

읽기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은 인간을 지나치게 읽기만 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자체가 거의 텍스트 덩어리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2

읽기는 늘어났지만, 독서는 줄어들었다. 출판은 더 이상 읽을거리의 최상위 공급자가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책, 신문, 잡지 등 출판산업이 공급하는 상품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여가 중 독서 시간, 도서관 이용률 및 대출률, 서점 방문 비율 등도 마찬가지다. 그 하락 추세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현저하다.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킬 방법은 솔직히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잘해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엔 아마 꾸준히 하락하다가 성인 독서율 30~35%에서 정체 상태에 접어들 것 같다. 한 사회의 3분의 1 정도는 책을 통한 자기 수양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실천할 듯하다.) 특히, 한국은 비독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해당한다.

3

음반이 안 팔린다고 음악 사업이 망한 게 아니듯, 독서율이 떨어진다고 출판 사업이 망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도서 매출이 줄진 않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일단 책을 사고, 일부만 읽어왔기 때문이다. 위에 말한 3분의 1이 더 많은 책을 쟁여 놓을 수 있도록 하기만 하면, 이 상태로 출판은 서서히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그냥저냥 굴러갈 테다.

4

만약 성장이 필요하다면, 변화한 상황에 맞추어 출판업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요즘은 다들 IP 비즈니스에 꽂혀 있는 듯한데, 그것도 좋은 재정의 중 하나다.

5

더 근원적인 문제는 긴 글 읽기로만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사유 형식, 어떤 정보 형식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읽기가 어휘력을 증진시키고, 생각의 폭과 깊이를 만들어 내며, 이해력과 분석 능력, 집중력과 정신력을 끌어올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높여 준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미래에 있을 어떤 문제를 미리 체험해 대비할 수 있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어 건강을 좋게 해주고, 수명을 늘려준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이게 긴 글 읽기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 생각엔 긴 글로만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사고방식이 있고, 이게 우리를 문화적으로 성숙시키는 듯하다. 무엇보다, 소설 읽기 말고 우리의 감성 능력을 극도로 세련되게 개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 것 같다.

현재 유행하는 짧은 글 읽기, 동영상 시청하기, 소셜미디어 대화 등 다른 접근으로 이러한 능력이 개발 불가능한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안 될 것 같긴 하다.) 확실한 건 화면에서 짧은 글을 반복해 읽는 것은 주의력 결핍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읽기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6

내 생각에, 긴 글로 이루어진 책은 숙고 미디어인 것 같다. 칼럼이나 기사 등에 숙고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칼럼이나 기사는 결과만 전한다. 한마디로, 단정적이다. 그러나 충분한 길이를 전제로 하는 책 미디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전한다. 문제가 탄생하고, 여러 가지 가설을 짚어가면서 증명과 반박을 거쳐서 어떤 결론에 이르는 개연성을 전달한다. 과정의 미디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다시 한번 따져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솔로몬은 말했다. "저희의 날들을 세게 하소서." 고통을 겪으면서 어떤 통찰을 얻는 과정을 다시 체험하고 헤아릴 때 지혜는 탄생한다. 현재 인류가 가진 미디어 중 이런 건 아마도 책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 듯싶다. (논문 정도 길이로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논문으로 담을 수 있는 것과 책으로 담을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는 충분히 연구된 적이 없다.)

어쨌든, 6000년 전에 인류는 문자를 발명해 기억을 외부화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을 얻었고, 1000년 전에 인쇄를 발명해 기억을 사회적으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이제 탄생한 지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대중화된 건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미디어와 읽기 사이의 관계는 앞으로 집요하게 더 들여다봐야 할 과제이다.

 

에두아르 뭉크, 책 읽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