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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열정/감각 공부

근대 사회와 감각의 대전환

눈은 오래전부터 지적 능력과 결부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계몽시대 여명기에 문해력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의 지배적 감각이 되었다. 직업적 전문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보기’가 ‘하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전문가 밑에서 몇 년씩 수습생으로 생활하면서 육체적 직관을 훈련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신 명망 있는 배움의 터전에서 책 읽고 시험 쳐서 졸업장을 받았다.

이런 경향이 유난히 눈에 띈 분야가 의학이다. 중세 때까지 의사는 험한 날씨를 무릅쓰고 일일이 환자를 찾아서 왕진을 가거나, 촉진이나 맥진처럼 손을 사용하는 기술로 환자를 진단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러한 기술들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다. 아울러 환자에 대한 친밀한 태도를 발전시킨 전통 치료사와 조산사는 공인 지식을 지닌 전문가가 선호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근대 교육을 받은 이들이 사회적 유대가 약한 도시로 진출하면서 대인관계에서 건전한 사적 공간을 유지하는 예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규칙에 따라 사람들은 불필요한 불편을 피하고자 상대가 보이지 않는 거품에 둘러싸인 것처럼 상상해야 했다. 거리를 두고 하는 인사는 상대방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암묵적 신호였다. 식사할 때도 각자 자기 식기로 독립된 의자에 앉아 공용 그릇에서 각자 음식을 덜어 먹었다. 도시 거주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먼저 받아들였다. 이는 지방 사람들과 명확한 문화적 차이를 형성하면서 사회적 계급의 기표가 되었다.

도시 엘리트 사이에선 심지어 가족 간 스킨십도 흔치 않아졌다. 프랑스에선 평소에 억눌렀던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아들에게 편지 쓰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문학 장르가 생길 정도였다. 일부러 연습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어떻게 애정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 된 것이다.

사회적 접촉이 일절 차단되면서 다른 이의 살갗이 살짝 스치는 정도에도 지나치게 큰 의미가 부여되었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귀족 출신 주인공들은 유난히 예민해 작은 몸짓과 손놀림이 바이올린 현 위의 활처럼 그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종교의식도 더욱 손과 멀어졌다. 중세인들은 성인의 손에 마법이 깃들었다고 믿었다. 교회가 세례, 견진성사, 치유 예배, 축복 예식에서 손을 얹는 동작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성인의 유골은 오래도록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녔고, 사람들은 거기에 손을 대거나 때로는 입에 넣기까지 하면서 충족감을 느꼈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야 육체 감각에 대한 경계가 생겨났다. 교회 지도자들은 인간 영혼이 감각을 통해 육신으로 들어오는 악의 공격에 시달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체 접촉을 포함한 감각적 쾌락을 억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신을 생각할 때 더 차원 높은 영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근대 이후,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었다. 신도들은 유물에 절을 하거나 만지는 대신 신의 이미지 앞에서 개인적으로 묵상했다. 지옥의 개념조차 달라졌다. 과거의 지옥은 화염과 쇠스랑이 상징하는 고통스러운 장소였으나, 어느새 죄인들이 이승의 삶에서 겪었던 실패의 순간을 영원히 곱씹는 정신적인 고통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박물관은 관람객이 예술작품에 손대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숭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고상함이란 만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훈령은 멀리 떨어져서 감탄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품위 있게 감상하는 방식이라는 믿음을 낳았다. 이윽고 도예나 직조처럼 손으로 하는 예술은 한낱 공예로 폄하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역직기와 증기기관 같은 기계가 발명되면서 사람이 손으로 제작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육체노동의 가치가 한 번 더 강등되었다. 능숙한 손재주에 자부심을 느꼈던 이들이 공장의 조립공정에 배치되어 익명의 톱니바퀴가 되었다. 이들의 몸은 단순 동작을 반복하며 기계처럼 작동하도록 요구받았다. 반면 상류층의 일은 정신적 측면이 더욱 강해졌다.

수시마 수브라마니안,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조은영 옮김(동아시아, 2022), 42~46쪽 (부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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