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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어촌의 저녁노을[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 이몽양(李夢陽) 석양은 동정호에 지고,그물은 맑은 못을 끌어당기네.황금 비늘이 한 길이라도,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구나. 漁村夕照 西陽下洞庭,網集淸潭上.一丈黃金鱗, 可見不可網. 지난주에 이어서 명나라 이몽양의 시를 읽겠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석조(夕照)’는 저녁노을을 가리킵니다. 이 시 역시 격조가 높습니다. 풀이해 놓으니 덧붙일 말이 더 없을 만큼 깔끔합니다. 어느 저녁, 시인이 맞이한 한 호숫가 마을의 풍경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첫 구절의 ‘서양(西陽)’은 ‘서쪽으로 지는 해’라는 뜻으로 석양을 가리킵니다. 동정(洞庭)은 동정호(洞庭湖)를 말합니다. 동정호는 장강(長江) 상류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과거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였으나 지금은 조금 면적이 줄어들어서 두..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성의(誠意, 뜻을 정성스럽게 하다)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말은 자기를 속이지 않음이니, 고약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를 일컬어 스스로 편안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법이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전(傳) 5장은 건너뛰고 곧바로 6장으로 넘어갑니다. 주희는 5장에 “차위지본(此爲知本), 차위지지지야(此爲知之至也).”라는 문장만 있음을 기이하게 생각했습니다. 8조목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해설하는 부분이 세월이 지나면서 누락되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에 ‘보망장(補亡章)’이라고 해서 본인이 직접 그 내용을 상상해서 보충해 넣었습니다. 일단 이 부분은 건너뜁니다. 후대의 창작..
[논어의 명문장] 오소야천(吾少也賤, 나는 어렸을 때 천했기에) 태재(大宰)가 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성인(聖人)이신가? 어찌 그렇게 능한 일이 많으신가?”자공이 말했다. “진실로 하늘이 그분을 성인이 되게 하시고, 또 능한 일이 많도록 하셨습니다.”선생님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나는 어렸을 때 천했던 탓에 비천한 일들에 능한 것이 많았다. 군자가 능한 일이 많으냐? 많지 않느니라.”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聞之, 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재주와 능력은 많을수록 좋다고 흔히 생각한다.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성인은 많은 일에 능한 것과 관련 없다고 믿었고, 군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공자..
[논어의 명문장]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부터 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고,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하게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이 구절은 「술이(述而)」 편에 나오는데, ‘앎’과 관련해서 공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려준다. 리링은 「계씨(季氏)」 편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라는 구절을 근거로 공자는 자신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즉 성인(聖人)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틈만 나면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려 했지만, 공자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단호히 부정했다. 이는 단지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배워서 아는 사..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新莊漫興)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 이몽양(李夢陽, 1475~1529) 지난번 왔을 때에는 살구꽃이 붉었는데,이번에 오니 멀구슬꽃이 빨가네.꽃이 피고 또 꽃이 피나니,고요히 앉아 세월 가는 것을 보누나. 新莊漫興 昨來杏花紅,今來楝花赤.一花復一花,坐見歲年易. 이몽양은 명나라 때의 시인으로 호를 공동자(空同子)라고 했습니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얻었으나, 절개를 앞세운 과격한 행동 탓에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르는 등 불우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문학에서는 전칠자(前七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다른 이들과 함께 “한나라 이후에는 문장이 없고, 당나라 이후에는 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복고적 문학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각 시대에는 그 시절에 맞는 정서가 있고 언어가 있는 법인데, 지금..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지본(知本, 근본을 안다) 공자가 말했다. “송사를 듣고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할 것이다.” 진실하지 못한 자가 그 하소연을 끝내 다할 수 없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했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컬어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오늘은 전(傳)의 네 번째 장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장은 물유본말(物有本末,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다)의 뜻을 주석하고 있습니다. 고본에는 ‘지어신(止於信, 믿음에 머물다)’ 다음에 이 구절이 있었는데, 주자가 새로 편집하면서 이 자리에 가져다두었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이러한 편집 행위를 두고 후대의 왕양명(王陽明)은 크게 반발하면서 본래 고본을 놓고 『..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정섭(鄭燮)의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峭壁蘭)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 정섭(鄭燮) 가파른 절벽은 높이가 일천 척인데,난초꽃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네.절벽 아래 캐려는 나무꾼이 있어서손을 뻗었으나 꺾을 수는 없었네. 峭壁蘭峭壁一千尺, 蘭花在空碧.下有采樵人,伸手折不得.정섭(鄭燮, 1693~1766)은 청나라 강희제 때의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양주팔괴(楊州八怪)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벼슬을 떠나 글과 그림을 벗해서 자유롭게 살고자 후원자를 찾아 양주에 정착했습니다. 화훼 그림에 뛰어났으며,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한 폭에 같이 넣어서 조화를 추구하려 했습니다. 특히 난초 그림과 대나무 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난주에는 같이 석류꽃을 공부했는데, 여름 꽃이라면 역시 난초꽃이기에 골라 보았습니다. 제목 초벽란(峭壁蘭)에서 ‘초(峭)’는 가파..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전왕불망(前王不忘, 앞 임금을 잊지 못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함으로 여긴다. 백성들은 그 즐겁게 해 준 바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 이롭게 해 준 바를 이로움으로 여긴다. 이 덕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오늘 읽은 문장은 지난주에서 이어진 것입니다. 군주가 지극한 선함에 머무르면[止於至善] 그 덕이 당대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후세에까지 이어져 영향을 미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구절씩 읽겠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시경』 「주송(周頌)」 편에 나오는 「열문(烈文)」이라는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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