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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부터 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고,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하게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이 구절은 「술이(述而)」 편에 나오는데, ‘앎’과 관련해서 공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려준다. 리링은 「계씨(季氏)」 편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라는 구절을 근거로 공자는 자신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즉 성인(聖人)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틈만 나면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려 했지만, 공자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단호히 부정했다. 이는 단지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배워서 아는 사람”이나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후대에 공자가 이미 성인으로 추앙된 후엔 대개 공자가 자신을 겸손하게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공자를 본받아서 누구나 배움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말로 읽혔다. 그렇다면 공자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자 했을까?

이어진 구절에 나오듯이 그가 배우려 한 것은 ‘고(古)’, 즉 옛것이었다. 그는 성인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질서를 탐구하고, 즉 그 아래에 담긴 깊은 뜻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다. ‘호고(好古)’의 고(古)는 같은 「술이」 편에 나오는 “진술할 뿐 만들지 않았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했을 뿐[述而不作, 信而好古]”과 같이 읽으면 뜻이 분명해진다. ‘작(作)’은 단지 덕이나 앎이 지극해진다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악을 정비하고 전장(典章)을 바로잡는 것은 그에 걸맞은 지위가 있어야 한다. 공자는 요임금이나 순임금과는 달리, 또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주공(周公)과 달리 뜻에 마땅한 지위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옛 제도를 탐구하고 앎을 쌓아서 남에게 진술할 수 있을 뿐 그 뜻에 맞추어 제도를 일으켜 어지러운 세상을 혁명할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옛 성인이 다스리던 시대에 실현된 정치의 올바른 도리를 믿고 좋아했으며, 그 실상을 탐구해 명확히 하고 그 당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것뿐이다. 춘추(春秋)의 혼란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던 시대에 공자가 살았음을 감안하면, ‘복고(復古)’는 다만 옛 질서의 복원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적 신념의 무기로 충분히 쓰일 수 있었다. 『논어』를 읽을 때 이 점을 상기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로부터 ‘호고민구(好古敏求)’, 즉 “옛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찾아 배운다.”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옛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성인이라 할지라도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정약용은 이 말이 ‘앎’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함’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따로 예법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행함이 법도에 맞음을 가리킨다고 했다. 『사서집주(四書集註)』에서 윤씨(尹氏)도 비슷하게 풀이했다. 성인이라 할지라도 지식은 배우지 않을 수 없으나, 의리는 타고난 밝음대로 어두워지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으니, 그래서 아마 성인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이야 그저 성인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배우고 몸을 닦아서 큰 도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부단히 애쓰는 게 아마도 최선일 것이다.


我非生而知之者 : ‘아(我)’는 일인칭 주어로 ‘나’를 가리킨다. ‘비(非)’는 나머지 문장 전체를 받아서 부정문을 이룬다. ‘이(而)’는 두 가지 동작이나 사건이 순서대로 일어났음을 드러내는 접속사다. 지(之)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도련은 풀어서 ‘도(道)’로 옮겼다. 인간이 알아야 할 도리라는 뜻이리라. ‘생이지지(生而知之)’는 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깨달아 안다는 뜻으로, 타고난 슬기로 세상 이치를 꿰뚫어봄으로써 배우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아는 성인의 경지를 말한다.

好古 : ‘고(古)’는 ‘옛것’이라고 흔히 옮긴다. 정약용은 ‘옛사람들이 남긴 책[典籍]’으로 풀이했다. 신창호는 ‘옛 전통’으로, 심경호는 ‘옛 성인의 가르침에 담겨 있는 올바른 도리’로, 김기평은 “옛사람들의 말과 행실”로 새겼다. 리쩌허우는 “역사적 경험을 쌓고 배우는 것”을 뜻한다고 보았다.

敏以求之者也 : ‘민이(敏以)’는 본래 ‘이민(以敏)’이지만 ‘민첩함’의 뜻을 강조하려고 도치된 것이다. ‘민첩함으로써’ ‘민첩하게’로 옮기면 좋다. 주희는 ‘서둘러’로, 정약용은 ‘부지런히’로 새겼다. 김도련은 「양화(良貨)」 편에 나오는 “민첩하게 하면 공적이 있다.[敏則有功]”를 참조해서 ‘민첩하게 힘쓰다’로 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求)’는 ‘구하다’ ‘탐구하다’ ‘추구하다’ 등으로 해석한다. ‘지(之)’는 앞에 나오는 ‘옛것[古]’을 받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청나라 때 최술(崔述)이 쓴 『논어여설』은 상당한 시사점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성인이 어째서 이렇게 배움을 중시했을까? 천하의 이치는 모두 일[事] 안에 들어 있고, ‘일’이란 듣고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니,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이 이른바 ‘배움’이란 것이다.”(박준원 옮김, 지만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