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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을 읽다] 덕에 대하여 무릇 덕에 흉하기로는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만 한 게 없다.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얻을 것도 없다. 그러므로 가을에 열매가 없는 것을 흉년이라고 한다. ―「이자후(李子厚)의 아들을 위한 시축(詩軸, 시 적은 두루마리)의 서문」夫德之凶. 莫如不誠. 不誠則無物. 故秋之不實曰凶. (李子厚賀子詩軸序) 매일 아침에 일어나 『연암집(燕巖集)』을 조금씩 읽고 있다. 여기에 읽으면서 초(抄)한 것을 모아 둔다. 연암은 대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읽으면서 배우는 바가 아주 많다. 예전 스무 살 무렵에 『열하일기』를 베끼면서 문장을 연습했는데,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연암집』을 베껴 쓰니 감회가 새롭다.
[마을에서 읽는 한시 1]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獨坐敬亭山李白衆鳥高飛盡孤雲獨去閑相看兩不厭只有敬亭山 홀로 경정산(敬亭山)에 앉아서이백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 가네.서로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건오직 경정산이 있을 뿐이지. 일주일에 세 번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아침에 한시를 읽고 있다. 당시(唐詩)를 기본으로 해서 우리나라 한시들을 주로 읽으려 하지만, 가끔 마을 주변에서 만나는 시들도 구해서 함께 우리말로 옮기면서 읽기도 한다. 여기에 차례대로 짤막한 감상을 붙여서 옮겨 둔다.이 시는 예전에 이미 읽은 적이 있지만, 김연수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애송한다고 밝힌 후에 새삼 눈에 들어와서 찬찬히 살펴 읽게 되었다. 김연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
창문에 새기다(窓銘) /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창문에 새기다 임성주 네 얼굴을 깨끗이 하고, 네 어깨를 가지런히 하라. 기력이 다했다고 말하지 말고, 생각을 어질게 하며 의로움을 돈독히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서 한 숨결조차도 게으르지 말라. 窓銘整爾顔, 竦爾肩. 莫曰旅力之愆, 仁思敦義思神, 靡懈一息之存. 사람이 거주하는 방은 사적인 공간이다. 바깥에서 남의 눈을 의식할 때는 곧잘 예의와 염치를 차리는 이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홀로 있을 때에는 마음이 무너지고 자세가 흐트러져 제멋대로 되기 쉽다. 거대한 방죽도 개미구멍으로부터 붕괴하는 법이니, 구멍이 났을 때 작다고 해서 즉시 메우지 않고 버려두면 결국에는 감당 못 할 큰일로 번지고 만다.그래서 옛 사람은 홀로 있을 때조차 몸가짐을 조심하는 ‘신독(愼獨)’을 자기 수양의 첫걸음이자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주세붕(周世鵬)의 종이창에 새기다(紙窓銘) 종이창에 새기다 주세붕 종이창은 능히 밝은 빛을 받아들이나니, 그것을 더럽히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종이창은 능히 바람을 막아 주나니, 그것을 찢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방에 살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닦으려는 사람은 사악한 생각이 깃들지 않도록 힘쓰라. 紙窓銘紙窓能納明, 汚之者自欺. 紙窓能御風, 破之者自危. 居是房而欲正心修身者, 庶幾無邪思. 이 글은 주세붕(周世鵬)의 문집인 『무릉잡고(武陵雜稿)』에 실려 있는 글이다. 주세붕은 이 글에서 종이창을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종이창이 빛을 투과하고 바람을 막는 것처럼, 마음 역시 끝없이 정갈함을 유지해 밝은 빛으로 채우고 구멍 나지 않게 챙겨서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유지해야 함을 경계한다. 요즈음은 우리의 건축..
[銘] 창문에 부쳐[窓銘]_주희 창문에 부쳐[窓銘] 주희 말할 때에는 먼저 삼갈 것을 생각하고,움직일 때에는 먼저 넘어질 것을 생각하고,허물이 있을 때에는 없애버릴 것을 생각하라.네 몸을 단정히 하고,네 용모를 바르게 하고,네 마음을 전일하게 하라. 窓銘言思毖. 動思躓. 過思棄. 端爾躬. 正爾容. 一爾衷.
[뉴스 속 후한서] [삶의 향기] 내 얼굴의 반쪽을 그린 초상(중앙일보) 어제 《중앙일보》 삶의 향기에 미술 평론가인 손철주 선생의 칼럼 「내 얼굴의 반쪽을 그린 초상」이 실렸다. 선생이 쓴 책과 글에 오래전부터 감탄해 오던 터라서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다. 친한 화가가 그려 준 얼굴 반쪽의 초상을 걸어 두고, 스스로 부족함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으리라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느껴 왔듯이 선생의 글에는 격조가 있는데, 특히 이번 칼럼은 조선의 선비가 쓴 족자를 걸어 두고 쓴 명(銘)을 읽는 기분이어서 더욱 깊은 맛이 들었다. 칼럼 중간에 『후한서』를 인용한 부분이 있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전형으로 칭송받는 후한의 재상 유관(劉寬)의 이야기였다. 내 평생의 병통을 요약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질언거색(疾言遽色)’이다. 질언거색은 ‘나오는 말이 급하고, 낯빛이 금방 바뀐다’..
[뉴스 속 후한서]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상경여빈(相敬如賓) 며칠 전 《세계일보》 황종택 칼럼에 부부애를 이야기하면서 『후한서』 속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상경여빈(相敬如賓), 즉 [부부가] 손님처럼 서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3000여년 전 주나라 건국의 설계자 태공망은 “아내의 예절은 반드시 그 말이 고와야 한다(婦人之禮 語必細)”고 강조했다. 결국 부부 서로 위해줘야만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파경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상경여빈(相敬如賓)’, 부부라도 손님 모시듯 서로 공경하라고 ‘후한서’는 가르치고 있잖은가. 태공망의 훈계는 계속된다. “어리석은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아내는 지아비를 공경한다(癡人畏婦 賢女敬夫).” 이 말은 『후한서』 권83 「일민 열전(逸民列傳)」 중 방공전(龐公..
[북카페] 후한서 본기 외(조선일보) 이번에 『후한서』를 출판하고 나서 주요 일간지 여기저기에 기사가 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이 블로그에 옮겨서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후한서 본기|범엽 지음|장은수 옮김|새물결|3만5000원 조선 선비들이 필독 역사서로 읽어온 후한서(後漢書) 본기(本紀)가 처음 완역됐다. 역동적이었던 후한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