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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대학 공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전왕불망(前王不忘, 앞 임금을 잊지 못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함으로 여긴다. 백성들은 그 즐겁게 해 준 바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 이롭게 해 준 바를 이로움으로 여긴다. 이 덕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오늘 읽은 문장은 지난주에서 이어진 것입니다. 군주가 지극한 선함에 머무르면[止於至善] 그 덕이 당대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후세에까지 이어져 영향을 미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구절씩 읽겠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

『시경』 「주송(周頌)」 편에 나오는 「열문(烈文)」이라는 시에서 따온 구절입니다. ‘열문(烈文)’은 빛나고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이 노래는 본래 주나라 성왕(成王)이 제위에 올라서 조상의 묘에 제사하려 했을 때, 여러 제후가 와서 도운 것을 기념해 그들에게 내린 시라고 합니다. 시의 처음이 “빛나고 아름다운 제후들이여[烈文辟公]”로 시작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로 끝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함께 풀겠습니다.

‘오호(於戱)’는 감탄사입니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감탄사로 쓰일 때에는 於를 ‘오’라고 읽습니다. 戱 역시 보통은 ‘희’로 읽지만 감탄사로 쓰일 때에는 ‘호’로 읽습니다. 이 시가 성왕 때 지어졌다는 말을 믿는다면, ‘전왕(前王)’은 주나라가 상나라를 무찌르고 천하를 제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선대왕, 즉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구체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기에, 주희는 전왕의 범주를 확대해서 선대에 있던 훌륭한 왕을 가리킨다고 풀이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희를 따라 해석해 보았습니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함으로 여긴다. 백성들은 그 즐겁게 해 준 바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 이롭게 해 준 바를 이로움으로 여긴다. 이 덕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다.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문장입니다. 길기도 하지만, 기(其)가 가리키는 것이 선명하지 않아서입니다. 차분히 읽어 보겠습니다. 

먼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부터 살펴보죠. 군자는 본래 백성을 다스리는 지위가 있는 귀족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학문과 덕행을 고루 닦아야 하므로 나중엔 ‘학문과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 덧붙은 후 이 뜻이 고정되어 본래 뜻이 희미해졌습니다. 소인은 군자에게 다스려지는 사람들, 즉 아무 지위가 없는 평민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늘 군자와 대비되어 쓰이던 말이므로, 나중엔 품행이 천하고 식견이 좁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고정되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군자와 소인을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공영달의 좇아 군자와 소인을 일반 명사로 볼 수도 있고, 주희를 좇아 군자는 후대의 왕 또는 현자로, 소인은 후대의 백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따르느냐에 따라서 다음에 나오는 ‘기(其)’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달라집니다. 

공영달은 ‘현기현이친기친(賢其賢而親其親)의 ‘기’를 군자로, ‘낙기락이이기리(樂其樂而利其利)’의 ‘기’를 소인으로 풀었다. 공영달에 따르면, 이 문장은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다고 하고, 그 친함을 친하다고 한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자기 당대에 현자라고 불리는 사람을 현자로서 대접하고, 가까운 친족들과 두루 화목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뒤 문장은 “백성들은 그 즐거운 바를 즐겁다고 하고, 그 이로운 바를 이롭다고 여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군자가 잘 다스려서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면 즐거워하고, 이롭게 해 주면 그 이익을 누려 잘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주희를 좇으면 ‘기’는 ‘앞 임금’을 뜻하게 됩니다. 따라서 “후대의 임금은 앞 임금이 현명하게 여긴 바를 현명하게 생각하고 앞 임금이 친애했던 바를 친애하며, 후대의 소인은 앞 임금이 즐겁게 해 준 일을 즐거워하고 앞 임금이 이롭게 해 준 바를 이롭게 여긴다.”라고 이 문장을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는 문장 뒤 부분은 “백성들은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삼고, 임금의 이로움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 임금이 앞 임금(문왕과 무왕)의 훌륭한 정치가 이미 두텁게 쌓여 있으므로 후대의 왕은 그 덕을 사모하여 그들이 만든 각종 좋은 제도와 자손에게 베푼 사랑을 흠모하고, 후대의 백성들은 그들이 펼친 정치가 이룩한 안락함과 이익을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입니다.

풀이는 다르지만, 제 생각에, 어느 쪽이나 군주가 지극한 선함에 머무르면서 두루 정치를 잘하면 그 빛이 천하에 고루 미치고, 마침내 후대에까지 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의는 같습니다. 만약에 그런 정치를 한 지도자가 있다면,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의 사람들도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인다면, ‘몰세(沒世)’는 일반적으로 앞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라고 해석하지만, 정약용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終身]’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약용을 따르면, “이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역시 어느 경우든 앞 임금의 덕이 사무쳐서 잊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