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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에 대하여(김우창) 공부하는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을 저절로 몸에 익히게 됩니다. 지도학생들을 처음 만나면, “삼십 분 다방에서 잡담하고 지나면 오늘 내가 손해 봤다고 좀 느껴야 공부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삼십 분 낭비했다면, 공부하는 사람 자세로는 좀 틀린 거라고. 그에 대한 후회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지요. ―김우창 올해 열네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김우창, 문광훈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이다. 정신의 까마득한 높이를 갖춘 스승과 자기 세계를 이미 넉넉히 갖춘 제자가 나누는 질문과 대답이 아름답다. 8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마 벌써 두 번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은 지 며칠이 되었지만, 끝없이 여운이..
북 디자인에 대하여 우리는 장소를 설계하는 것처럼 페이지를 설계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일은 높은 책임감을 요구하는데, 페이지 위에 텍스트를 잘못 놓아두는 것은 곧 저자의 생각을 왜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학적 느낌을 생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종이에 어떤 요소들을 늘어놓고 인쇄할 때에는, 아무리 사소한 텍스트라 할지라도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 책 한 권을 설계하는 일은, 아니 심지어 한 페이지라도 설계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작업이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먼드 기드 이 구절은 오래전에 슈타이들 전시회에 갔을 때 벽에 적힌 것을 메모해 둔 것이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바깥 창문이 얼어붙었다. 이러한 장인성을 잃고 나면 출판이란, 책이란 도대체 무엇이..
고요에 대하여(이남호) 고요는 우리를 향기롭고 높은 세계로 데려간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고요를 바보로 만들지만, 고요는 바보가 아니다.―이남호 올해 열세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이남호의 『일요일의 마음』(생각의나무, 2007)이다. 단정하고 우아한 고독의 문장들로 가득 찬 에세이집이다. 제목 ‘일요일의 마음’은 미당 서정주의 시 「일요일이 오거던」에서 따왔다. “일요일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 찾다 찾다 놓아 둔/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들을 찾아가 볼까”로 끝나는 성찰의 시다. “찾다 찾다 놓아 둔” “마지막 골목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나 끝내 챙기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치들을 상징한다. 그건 일상의 부단한 번잡함 속에서는 도저히 찾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일요일”에만, 고요와 정숙..
책에 대하여(롤랑 바르트) 문득 바르트 책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쳐 읽다가 마주친 한 구절. 밑줄이 선명하다. 언제, 그어둔 것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욕망만은 선연하다. 나는 읽기를 통해 인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읽는 자로서의 인생. 그게 다였다. 정말 이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책은 의미를 창조하고, 의미는 인생을 창조한다.”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아래는 오래전 장석주 선생이 쓴 『일상의 인문학』(민음사, 2012)에서 밑줄 친 구절들인데, 모두 바르트의 것이다. 함께 여기에 옮겨 둔다. “그의 텍스트로부터 와서 우리 생 속에 들어가는 저자는 통일된 단위가 없다. 그는 간단히 복수적인 ‘매력들’이며, 몇몇 가냘픈 세부사항의 장소이고, 그럼에도 싱싱한 소설적 광휘의 근원이며, 다정함..
혁명에 대하여(조세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힘, 2000)을 다시 읽다. 거의 스물다섯 해 만에 이 책을 읽는 것 같다. 예전에 문학과지성사 판으로 읽었을 때에는 없던 서문이 붙어 있다. 지사(志士)로서의 결기가 아름다운 글이다. 단숨에 매혹되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어릴 적 읽지 못했던 소설의 세부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어쩌면 소설이란 청년의 예술이 아니라 중년의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선배 세대들의..
배움에 대하여(우치다 타츠루) 우치다 다츠루의 『하류지향』(김경옥 옮김, 민들레, 2013)은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이번에 핸드폰의 앨범을 정리하면서,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부분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 책은 교육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다츠루의 견해는 배움의 무교환성에 대한 통찰에 기대어 있다. 배움이란 처음부터 비동기적 교환, 대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교환에 기대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즉각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외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다. 우치다 다츠루는 배움의 인류학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
동의에 대하여 (브레히트) 무엇보다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은 동의,많은 사람들이 ‘예’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동의는 아니다.많은 사람들은 질문을 받지 않고,많은 사람들은 틀린 것에 동의한다. 그 때문에무엇보다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은 동의.― 브레히트, 「긍정자․부정자」에서 어제 풍월당 문학 강연을 마치고, 올해 열한 번째 책으로 이상면의 『브레히트와 동양 연극』(평민사, 2001)을 읽기 시작하다. 브레히트의 희곡 「긍정자․부정자」, 「두란도트 혹은 세탁부들의 회의」가 실린 책이다. 브레히트의 「중국 연극에 대하여」, 「중국 연극예술의 소외효과에 대해」도 있다. 번역은 너무 딱딱해 구두를 씹는 맛이 나서 습관적으로 빨간 펜을 들고픈 생각이 계속 들지만, 내용은 대가답게 정말 훌륭하다.
여행 블로그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지난 1월 14일 HK 여행작가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현실적인 충고를 해보려고 나름대로 애쓴 글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아래는 HK 여행작가아카데미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이다. 링크를 붙여 인용한다. 여행 블로그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1.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책을 내고 싶을 때에만 출판할 수 있다.자비출판을 할 게 아니라면 책은 필자가 내고 싶다고 해서 출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편집자의 눈에 들어야 출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려고 할 때, 편집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편집자 눈에 들기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가령, 편집자가 인천 여행을 여행자로서 가려고 할 때라면 블로그를 방문할 수 있겠지만, 편집자로서 인천 관련 여행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