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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대하여(시라카와 시즈카) ​​나 자신이 어떤 학문을 창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남의 학문을 수용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연구자가 되고 창조자가 되어, 새로운 학문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입장이 된 셈이지요. (중략) 학문이란 것은 시대와 더불어 움직이고 시대와 더불어 진보하는 것이어서, 일생 자기의 스승에 고개를 쳐들 수 없다고 한다면 학문은 퇴보할 뿐입니다. 퇴각할 뿐입니다. 제자들은 모름지기 선생의 머리를 밟고, 그 위를 넘어서 나가지 않으면 학문의 진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말이다. 새벽에 문득 선생이 쓴 [한자, 백 가지 이야기](심경호 옮김, 황소자리, 2005)를 꺼내 다시 또 읽다가 느낀 바 있어 옮겨 적는다. 시골 마..
신사동에 대하여(문화일보 기고) 《문화일보》에서 기획 연재 중인 「느낌이 있는 ‘신(新) 풍물기행’」에 기고한 글이다. 내 젊음을 보냈던 신사동 거리를 소회와 함께 소개했다. 여기에 옮겨 둔다. 사람에게 고향은 하나가 아니다. 대대로 이어 살아온 조상의 고향이 있고, 몸을 얻어 자란 육체의 고향이 있으며, 밥 한 술 먹다가도 천 겹 감정이 너울지는 영혼의 고향이 있다. 또한 평생 의지해 살아갈 세계관의 틀이 생겨난 정신의 고향이 있고, 밥벌이를 하면서 혼신을 다해서 어른으로 살아간 사회적 고향이 있다. 내 조상의 고향은 충남 홍성군이고, 내 육체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은 서울시 중구 약수동이며, 내 정신의 고향은 관악산 자락 아래 자하연 옆쪽이거나 녹두거리의 술집들이다. 내 사회적 고향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이다. 문학만 아는 철없이 ..
책과 사람을 연결하라 (한국일보 기고문) 신년 《한국일보》 출판면에 기고한 글이다. 요즈음 나의 관심사는 ‘연결성’의 확보를 통해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실천”이다. 다매체 경쟁 시대에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를 만들기 힘들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전 세계 출판계에서 일어난 일이 이를 증명한다. 출판이 앞으로도 생존해 번영하기 위해서는 책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출판 실천들을 통해 비독자를 꾸준히 독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출판계의 화두로 삼으려고 제안한 글이다. 책과 사람을 연결하라 “캄캄한 밤에도 노래는 있는가?” 어느 날,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의 귓가에 갑자기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시대는 절망이다. 파시스트들은 갈수록 세력을 넓혀가고, 사람들은 사적 대화조차 감시 당하고,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렸다가 사라진다..
[연암집을 읽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논하는 자들은 반드시 옛 글을 본받아야[法古]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 글을 베끼고 본뜨면서도 세상이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중략) 그렇다면 새롭게 창조해야[刱新] 옳은가. 그래서 괴이하고 거짓되며 현혹하고 편벽한 글이 있어도 세상이 이를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되었다. (중략)그러면 어찌 해야 옳은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아아, 옛 글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람은 자취에만 구애되는 것이 병이고,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것이 근심이다. 진실로 옛 글을 본받으면서도 [오늘에 맞추어] 변화할 줄 알고, 새롭게 창조하면서도 [옛 글처럼] 전아할 수 있다면, 요즈음 ..
출판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어제 한국출판연구소가 주최한 제69회 출판 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다. 발표 후 참석자 간 자유 토론이 있다고 해서 조금 긴장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토론은 없었다. 김종수 소장님의 반론 아닌 반론(!)이 있었을 뿐. 나의 관심사는 콘텐츠 비즈니스로서 출판이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를 징후적으로 읽어 보려는 것이었다. 현재 출판계에서 시도 중인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출판을 다시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물론 출판의 기초 콘텐츠 전략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저자를 발굴하고 책을 잘 만들어서 독자와 만나게 하는 것, 이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 기본 콘텐츠 전략을 바탕으로 최근 출판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실천들을 징후적으로 읽어 보려는 마음에서 쓴 것이다. 앞으로 출..
[연암집을 읽다] 열매와 꽃 무릇 군자는 화려한 꽃을 싫어하니 무슨 까닭인가.꽃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그 열매를 맺지는 않으니 모란과 작약이 그렇다.모과 꽃은 목련에 미치지 못하고, 연밥은 대추나 밤과 같지 않다.박에 꽃이 달리더라도, 보잘것없고 못생겨서 다른 꽃과 함께 봄을 아름답게 하지 못하지만 박 넝쿨은 멀고 또 길게 뻗어 나간다. 박 한 덩이는 크기가 여덟 식구를 먹이는 데 충분하고, 박씨 한 묶음은 밭 백 이랑을 덮기에 충분하다. 또한 박을 타서 그릇을 만들면 곡식 몇 말을 가득 채울 만하다. 그러므로 꽃과 열매를 똑같이 여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이자후(李子厚)의 아들을 위한 시축(詩軸, 시 적은 두루마리)의 서문」 夫君子之惡夫華, 何也. 華大者, 未必有其實, 牡丹芍藥是也. 木瓜之花. 不及木蓮. 菡萏之實..
책의 네 가지 등급(고병권) 책의 네 가지 등급 고병권 책을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등급을 매겨 보곤 한다. 내가 매기는 등급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마르크스 묘비에 새겨져 있는 그 유명한 문장(“철학자들은 그동안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에 따라, 세계를 변혁하는 책과 세계를 해석하는 책으로 나눈다. 정말로 위대한 책은 세계를 만들어 내는 책이다. 책 자체가 세계 속에서 작동하면 세계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위대한 책들이 역사상 드물게나마 존재했다. 그 묘비에 새긴 그대로 마르크스의 책이 그랬다. 무산자들이 그 책을 얼마나 이해했느냐에 관계없이 책은 그들에게 작동했다. 책은 동료들을 모았고, 책은 세계를 만들었다.그러나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도 사실은 좋은 책이다. ‘..
[연암집을 읽다] 덕에 대하여 무릇 덕에 흉하기로는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만 한 게 없다.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얻을 것도 없다. 그러므로 가을에 열매가 없는 것을 흉년이라고 한다. ―「이자후(李子厚)의 아들을 위한 시축(詩軸, 시 적은 두루마리)의 서문」夫德之凶. 莫如不誠. 不誠則無物. 故秋之不實曰凶. (李子厚賀子詩軸序) 매일 아침에 일어나 『연암집(燕巖集)』을 조금씩 읽고 있다. 여기에 읽으면서 초(抄)한 것을 모아 둔다. 연암은 대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읽으면서 배우는 바가 아주 많다. 예전 스무 살 무렵에 『열하일기』를 베끼면서 문장을 연습했는데,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연암집』을 베껴 쓰니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