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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 혹은 머릿속에, 그러니까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67쪽 오에 선생의 글은 살짝만 건드려도 소리를 ..
[2015년 나를 뒤흔든 책] 세상의 고통에 지지 않는 ‘마법의 주문’ _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중앙일보)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마법의 주문’을 하나씩 챙긴다. 세상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때마다, 인생의 축이 뒤틀릴 때마다, 몸이 고통으로 괴로워할 때마다, 앞날이 비애로 가득 찰 때마다 스르르 떠올라서 마음에 힘을 붙여주는 구절 하나.“틀림없이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에서 만난 ‘마법의 주문’이다. 마음에 칼이 선 상태로 사람은 무엇도 할 수 없다. 뾰족한 끝이 자신을 찌르고 벼린 날이 친구마저 베기 십상이다. 삶의 의미가 돈에 먹혀 버린 실망과 공허를 이기지 못하던 나날에, 방송국 소개로 이 책을 만났다. 역사적 붓다 고타마의 수행을 한 문장씩 따라가면서 눈의 비늘을 조금씩 떼어낼 수 있었다.고타마는 삶이란 기쁨보다 슬픔에, 즐거움보다 괴로움에 가깝다고 말한다. 모든 인생은 죽..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을? 나는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이라는 출판 인터뷰의 키치가 아주 불편하다. 사실, 이런 말은 출판 생태계에서 저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왜? 파는 것은 출판사와 서점이 책임질 터이고, 그러지도 못하면 출판될 수 없을 테니까. 자비로 40부를 인쇄해 단 7부가 팔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미래의 책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좋은 책을 내는 것은 출판사의 당연한 의무이며, 출판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아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출판사는 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팔리는 책만 출판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출판의 타락일 터이다. 출판의 임무는 따로 있다.저자가 공들여 쓰고 편집자가 정성껏 만든 좋은 책을 독자가 발..
최근 출판의 4가지 베스트셀러 전략(대산문화) 베스트셀러는 늘 사후적 탐구의 대상이다. 책이 언제, 어떻게, 왜 팔리는지 미리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쩌다 살짝 감이 있다. 내용을 읽고 콘셉트를 뽑고 배열을 고민하고 디자인을 구상하면서 독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순간, 이 책은 다들 좋아해 주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아주 흔한 일은 아니다.베스트셀러는 통로이고 상징이다. 그 책을 읽는 독자를 보여 주고, 그 책이 있는 사회를 드러낸다. 모두 같이 꾸는 꿈 같다. 꿈꾸고 난 다음엔 누구나 한마디 말을 보탤 지도가 되지만, 아무도 일부러 그 지도를 그릴 수는 없다. 책은 ‘소수 미디어’에 속한다. 수천 명 정도, 잘해야 수만 명 정도, 내용에 대한 깊은 관심과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주로 읽는다. 베스트셀러는 비정상, 즉 제 영역을 넘어서 증..
[강좌] 출판 2.0 시대의 출판전략 입문 출판 1.0 시대가 저물었다. 출판사, 서점, 인쇄소, 언론사, 도서관 등이 나란히 성장하던 출판 산업의 가치사슬은 와해되었다. 책의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과정을 이루는 출판의 현재와 같은 관행들은 서서히 약해질 것이다. 출판의 임무를 혁신하면서 새로운 가치사슬을 이루려는 시도는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출판 환경의 변화가 삼중당과 정음사를 집어삼키고 고려원을 무너뜨렸듯, 오늘날 출판을 이끄는 거인들도 진화를 거부하면 한순간 난쟁이로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잭의 콩나무처럼 자라는 출판도 가능할 것이다. 출판 2.0은 출판의 중심을 개발에서 전략으로, 제품에서 독자로 이동시킨다. 출판 1.0 시대는 시장 내부에서 경쟁하는 법을 주로 다루었다. 출판기획은 주로 책을 둘러싼 환경을 통찰한 후, 시장을 ..
편집의 귀환 _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생각하다 (한국일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갔다 온 후 한국일보에 발표했던 칼럼입니다. 여기에 옮겨 둡니다. 아무도 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판의 미래는 누구나 고민한다. 올해 프랑크푸르트도서전 분위기를 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민은 열정을 낳고, 열정은 모험을 낳는다. 그 모험을 자극하고 현실화하려고 조직위는 작년부터 비즈니스클럽을 열었다. 전 세계 출판인을 불러 모아 최신 출판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소개하며, 서로 깊게 교류하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출판의 주요 이슈는 디지털 충격을 중심으로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첫째,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 출판이 출판의 전 지형을 바꾸고 있다. 둘째, 자가 출판이 활성화되면서 저자의 독립성이 높아진다. 셋째, 온라인 또는 모바일 판매가..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④] 7080 세대, 더 늦기 전에 죽음을 준비하라! _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지금 읽어야 할 책 장은수 : 이 책이 현재까지 약 2만5000부 정도 팔렸다고 합니다. 올해 인문학, 자연과학 분야 신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입니다. 아마 7월, 8월 신간을 다 합쳐도 이만큼 성과를 낼 가능성 있는 책이 없을 겁니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펴냄) 정도가 있겠네요. 우선 책을 읽은 소감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이홍 : 삶과 죽음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신이 되지 않는 한, 결코 함부로 답할 수 없는 질문과 과제를 담고 있습니다.우리가 이 책을 선정하면서 책의 분류에 대해 출판사와 질문을 주고받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인문학으로 분류했는데, 장은수 ..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_ 네 가지 새로운 출판 모델에 주목하면서 * 이 글은 얼마 전 출판콘텐츠마케팅연구회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옮겨둡니다.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출판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출판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항상 현재형으로 쓰였다. 책은 소수 미디어에 속하기에 항상 잘 팔리지 않았다. 그 내재적 가치에 비해 만족할 만큼 팔린 적은 드물다. 때때로 밀러언셀러가 나오고 출판이 활황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로 외부 요인에 따르는 우연의 결과였을 뿐이다. 출판은 항상 배가 고팠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이는 책의 가치와 판매 사이의 긴장이 출판의 영원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다시 강조해 두자. 출판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 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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