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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페미사이드, 여자라서 살해되는 여자들

최근 스물다섯 살 황예진 씨가 남자친구의 폭력 행위로 사망했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법원은 가해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살인죄 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하려 했다. 이건 현대 국가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흔한 사법적 처리 방식의 하나다.

유족들은 현장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려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과 함께 ‘데이트 폭력 가중처벌법’ 제정을 호소 중이다.

그런데 황예진 씨는 예외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남편, 애인 등 친밀한 사이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97명, 간신히 살아남은 여성이 131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최소로 잡은 숫자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도 있을 테니, 한국에서 여성 살해 관련 사건은 거의 매일 일어나는 셈이다.

여성 살해 또는 폭행 이유로는 “왜 안 만나 줘”가 가장 많고, “홧김에, 싸우다 우발적으로” “남자관계가 의심되어” “나를 무시해서” 등이 뒤잇는다. 한마디로 “내 말을 안 들어서”다. 이 정도 이유로 여성을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이 나날이 벌어진다니, 참담할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페미사이드(Femicide)라고 한다. 여성을 뜻하는 female과 살인을 뜻하는 homicide의 합성어다.

다이애나 러셀과 질 래드포드가 엮은 『페미사이드』(전경훈 옮김, 책세상, 2018)에 따르면, 남성의 여성 살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페미사이드는 사랑에 눈먼 남자가 저지르는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폭력 현상으로, 가장 극단적 형태의 성차별 테러리즘이다.

페미사이드는 남성이 정의한 역할대로 살지 않으려는 여성을, 즉 남성 말을 듣지 않는 여성을 처벌하는 폭력적 수단이며, 가부장제는 이를 온갖 형태로 공공연히 조장해 왔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여성 영웅 잔 다르크는 결혼을 거부하고 전장에서 남성과 같은 복장을 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했다. 남성들은 그녀가 마녀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상에서 벗어났기에 그녀를 살해했다.

16~17세기 유럽이 마녀사냥의 광기에 빠졌을 때,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나이 든 독신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미혼 또는 과부로 남자 없이 혼자 살았기 때문에 수시로 희생당한 것이다.

남자가 곁에 있다고 안전하지도 않다. 오히려 반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해 위협을 가장 많이 겪는 여성은 남편이나 애인과 한 집에서 사는 이들이다.

남편의 배신은 여성이 이해할 만한 작은 일탈이지만, 아내의 배신은 살인의 정당한 동기이자 정상참작의 충분한 사유이며, 때때로 무죄 추정의 확실한 근거가 된다.

여성이 폭력적 남성의 곁을 떠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이혼하거나 이별한 여성을 쫓아가서 살해하는 사건은 전 세계에서 흔히 벌어진다.

혼자 살아도, 함께해도, 헤어져도 안 되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안전한 삶을 꾸릴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이 미워서 죽이고, 만만해 죽이고, 즐기려 죽이고, 소유를 확고히 하려고 죽인다.

그러나 황예진 씨 사건이 보여 주듯, 사법 기관들은 흔히 여성 살해를 때로는 우발적 사건으로, 때로는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겨 사소하게 만든다. 여성 살해를 관대히 여기는 가부장제 문화 탓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오늘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여성 한 사람은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끔찍한 일이다. 남성과 사랑해도 여성이 무섭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페미사이드 희생자가 된 황예진 씨를 애도한다.

 

다이애나 러셀, 질 래드포드 엮음, 『페미사이드』(전경훈 옮김, 책세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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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