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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세계 책의 명소를 여행하다 정제해서 말하면, 이 책은 북디자이너가 7개국 13개 도시 20곳의 책 있는 곳(서점, 도서관, 축제 등)을 찾아간 여행 에세이다. 암스테르담의 중고 서점 거리, 베를린 국립도서관, 뮌헨과 함부르크의 고서점,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 도쿄 북 페스티벌 등을 오가며, 책의 장소들과 거기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그러나 그런 건 이 책에 대해 말해 주는 게 별로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신나는 기분이다. 설렘과 경이, 지극히 사적인 장소 체험이 두드러진다. 갈피마다 넘치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그 증거다. 저자는 익히 알려진 정보를 반복하지 않고, 풍부한 사진과 함께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지극히 가벼운 언어로 읽는 눈들 앞에 펼치려 애쓴다. 아이가 첫 번째로 도서관 문..
저작권, 출판 계약을 둘러싼 이슈 이번 635호 특집은 '출판, 계약, 분쟁'이다. 출판 계약과 관련한 여러 문제를 살피고 있다. 1SNS 환경에서 책이 IP(Intellectual Property)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커짐 → 낭만적, 주먹구구식 출판 계약은 분쟁을 초래할 우려가 있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꼼꼼하게 진행되어야 함 2 일반적 불공정 사례 (전현수) 1)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한 저작권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 이른바 매절 계약은 불공정 → 특히, 출판사는 활용할 계획이 없는 권리까지 과도하게 양도받지 않도록 해야 함 2) 저작물의 2차적 사용에 관한 처리를 전부 위임하도록 하는 조항은 불공정 → 분리 계약이 가능함을 통보해야 하고, 저작권자 앙해 아래 계약이 진행되어야 함 3) 저..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옛날에 '꼬꼬영'이라는 책이 있었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다. 읽는 맛이 넘치는 단어 학습서여서 큰 인기를 끌어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꼬꼬한'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어' 이야기다. 우리말 어원 이야기를 종류별 또는 용례별로 한 무더기씩 묶어서 맛깔 나게 풀어 낸다. 배추는 백채(白菜)에서 온 말이라는 설명은 상추, 시금치, 가지, 겨자로, 또 오이, 참외, 호박, 호밀, 후추로, 다시 고추, 옥수수, 강낭콩으로 옮겨간다. 이 모든 내용이 네 쪽에 압축된 채 술술 서술된다. 책은 이런 작은 글들이 60편 넘게 실어 있다. 작은 국어 사전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말들의 유래를 알아가는 재미도 달콤하고, 모자란 어휘를 채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_장인용,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그래도봄,..
'굿즈 도서전'이 아니다 '굿즈 도서전' '여성 도서전'.도서전 결산 기사를 보니, 이런 기사가 많았다. '굿즈 도서전'이라는 말은 언뜻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잘 포착한 듯하다. 아울러 굿즈 없이 책만 들고 도서전에 나간 출판사들의 당혹감을 다소 위안한다. 그러나 솔직히 애써 시간 내고 입장권까지 사서 도서전에 간 독자들을 모욕하는 표현에 가깝다. 출판 관계자가 이런 거친 표현에 말 보태면서 부화뇌동하는 건 상당히 곤란하다. 이런 험악한 표현은 도서전을 찾은 약 15만의 독자들이 책은 거의 안 읽는데, 굿즈나 탐하고 이벤트나 즐기는 '된장녀'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굿즈보다 책이나 작가가 더 부각되는 게 옳다. 또 대형 출판사 쪽으로 쏠림 현상이 있었을지는 모른다. 그런데 이게 어느 도서전이나, 또 해마다 항상 있는 거라 ..
도서전과 독서율? 기사를 읽다 보니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도서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렸는데, 왜 독서율은 갈수록 낮아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도서전하고 독서율은 별 관련 없다. 도서전 같은 이벤트는 이미 책을 읽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해야 이런 행사가 있으니, 역시 책 읽는 건 재밌어, 이러면서 계속 책을 읽기로 다짐하는 효과가 있을 정도다.한마디로, 있는 독자를 붙들어 매는 효과는 있어도 없는 독자를 만드는 효과는 없다.(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엄빠 손 잡고 온 아이들, 작가 보겠다고 찾아온 청소년들이다.) 이제 이런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쫌 옛날 감각인 듯하다. 아울러 교보 매대에 책 깔아 놨다고 저절로 책 팔리는 것..
공부는 우리를 삶의 주인으로 만든다 어릴 땐 모두 공부가 즐겁다. 그저 새로운 걸 아는 게 좋고, 다른 사람들 마음을 엿보는 게 기쁘고, 생각에 날개를 달아 너른 세상을 여행하는 게 신났다. 그러다 공부가 수험이 되고 돈이나 지위를 사는 일로 바뀌면, 배움은 시들해진다. 새로운 걸 알면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지는 듯한 그 눈부심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성적과 입시, 취업과 승진을 위한 수단일 때, 배움은 빛을 잃는다.'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트르, 2025)에 나오는 미국 철학자 제나 히츠도 뒤늦게 그걸 알았다. 그는 곳곳에 책이 널린 집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탐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어린 날을 보냈다. 공부가 좋았던 그는 고전학을 전공해 30대에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교수의 삶은 히츠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자유롭게 사유하..
모진(毛晉), 8만 4000책을 모으다 1 모진(毛晉, 1599~1659)은 원래 이름은 봉포(鳳苞), 자는 자구(子久) 또는 자진(子晉)이다. 호는 잠재(潛在), 별호는 급고주인(汲古主人)이다. 강소성(江蘇省) 상숙현(常熟縣) 출신으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동림당(東林黨, 개혁파)의 핵심 인물로 동향의 대학자인 전겸익(錢謙益)을 스승으로 모셨다. 박학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나, 과거 공부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여러 차례 낙방한 후 부잣집 아들답게 시험공부 대신 취미 생활에 탐닉했는데, ‘책 모으기’였다. 2 송나라와 원나라 때 간행된 선본(善本, 보존 상태가 좋고 판본이 희귀한 책)을 아버지 돈을 쏟아부어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급고각(汲古閣)과 녹군정(綠君亭)이라는 도서관을 지어 이를 분류해 보관했다. “장서에 뜻을 두고,..
풍몽룡(馮夢龍) - 명나라 최후의 명편집자 11574년 중국 소주(蘇州)에서 태어나서 명나라 말기 강남 출판계에서 활약한 인기 작가 겸 편집자이다. 삼언(三言), 즉 『유세명언(喻世明言)』, 『경세통언(警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을 비롯해 숱한 베스트셀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2 풍몽룡은 10대 때부터 과거에 응시했으나 수없이 낙방한 끝에 57세에 이르러서야 비상한(?) 수법으로 관직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수험 공부엔 재주가 모자랐으나, 편집자로서 재능은 눈부셨다. 신참 편집자 시절에 그는 생계를 위해 가정교사 일을 겸했다. 이때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려 편집해 간행한 과거 수험서가 『인경지월(麟經指月)』이다. 자신은 과거에 수십 차례 낙방했지만, 이 책은 수험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강남 출판계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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