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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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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산층과 운동하는 딸들 1. 한국 중산층은 6.25 전쟁으로 모든 물질적 기반이 파괴된 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빠르게 진행된 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한다.2. 경제적 부가 품위로 전환되기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부르주아라 해도 상류층다운 아비투스를 갖추지 못한 졸부가 대부분이었다.3. 중산층이라는 표지는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주도의 희망의 전시 공간이었고, 이에 대중이 호응하면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이 퍼져 나갔다.4. 독특한 것은 한국 충산층 환상은 여성적 이미지, 즉 스위트홈이라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여성적 공간-사적 영역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다.5. 이에 따라 아내, 어머니, 안주인을 중심으로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가 구성되었고, 공적 영역을 온전히 지원하는..
양서란 무엇인가 양서를 사서 읽도록 해라. 최고의 책은 가장 흔한 책이고, 편집자가 바보만 아니라면 최신판이 최고다. 그들이 이전 판의 부족한 점을 최신판에서 보완할 것이기 때문이다. 판본 종류와 속표지 정보를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진정한 가르침보다 현학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 체스터필드====이렇답니다. 체스터필드와 마찬가지로, 나는 초판본보다 최신본을 더 좋아한다. 책을 읽기물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소장 욕심은 많아도 재산 가치 같은 건 별로 따지지 않는다. 재쇄본하고 초판본이 같이 있으면, 초판본은 버린다. 당연히 오자 잡고 오류 잡은 책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읽기 중독자일 순 있어도, 장서가 또는 애호가는 아니다.
식자(識者), 공부하는 인간의 탄생 (1) 유럽에서 12세기 르네상스 이후에 조금씩 등장, 중세 후기인 14~15세기에 그 실체를 드러낸 계층.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후 지적,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 서구 문명 발전의 유효한 행위자가 됨.(2) 두 가지 기본 속성 : 1) 일정한 유형의 앎에 일정한 수준으로 숙달, 2) 선취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특정한 실천적 능력(직분)을 갖추었다고 간주됨. 학위 취득자가 많으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고, 홀로 공부한 수많은 개인도 포함.(3) 초기 중세의 식자는 문사(vir literatus), 즉 그럭저럭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으로 대부분 성직자, 수도승 계층에 속했으나, 12세기 르네상스 이후 문해력을 갖춘 속인들이 증가하면서 엘리트 계층 전반으로 퍼져나감 → 엘리트 계층..
무해함에 대하여 ‘무해함’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말이다. 본래 사물에 주로 쓰인 말인데, 7~8년 전부터 갑자기 괜찮은 사람 또는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2018년에 나온 최은영의 소설집 제목 ‘내게 무해한 사람’이 사회적 확산의 계기가 된 것처럼 보인다. 마음 놓을 사이, 다정한 사람에 대한 갈망은 표독하고 인정머리 없고 잔혹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의 심리적 메아리이다.『여자 주인공들』(생각의힘, 2024)에서 오자은 덕성여대 교수는 무해함을 “나에게 도움은 못 되어도, 적어도 해는 안 끼치는, 상처는 안 주는, 관계의 최저선”이라고 말한다. 이 말엔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범죄 속에서 자기보존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현대 한국 여성들의 기대가 감추어져 있다.이 책..
홀대받던 MIT 女교수들, ‘데이터’로 성차별 증명하다 1999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여성 과학 교수진에 대한 오랜 차별을 인정했다. 오직 객관성과 합리성만 작동할 듯한 이 유명 대학이 조직적으로 성차별을 일삼았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차별은 법으로 금지돼 있었고, 여성 우대정책도 시행 중이었다. 그러나 여성 과학자는 (특히 고위직에서) 눈표범처럼 드물었다. 속설대로, 여성이 과학이나 수학에 부적합한 존재인 까닭일까?『숨겨진 여성들』(북스힐, 2025)의 저자인 미국 저널리스트 케이트 제르니케는 당시 ‘보스턴 글로브’ 기자로, MIT대 총장의 성차별 인정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기사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대학, 정부 기관 등은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학계 전반의 분위기를 바꾼 대사건이었다.차별이..
공부에 대하여 공부는 중요하다. 어떤 정보를 꾸준히 머릿속에 집어넣느냐에 따라 인간은 변화한다. “새로운 지식에 노출되는 경우, 우리의 두뇌가 깨달음에 도달하면서 동기를 부여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페이 베게티, 『스마트폰 끄기의 기술』(부키, 2024), 19쪽) 학습에서 각성으로, 각성에서 동기로, 동기에서 행위로 이어지는 이 연쇄 작용은 ‘자기실현적 예언’의 중요 루트이다.
국가 지도자의 ‘전략적 멍청함’… 어떻게 나라를 망쳤나 문화는 한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관, 태도와 관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인간 행동을 규정하는 가장 밑바탕에 놓인 힘으로, 개인의 습관이나 행동 양식, 공동체의 도덕과 거래 양태, 집단의 협력과 투쟁 등 온갖 움직임을 결정한다. 나쁜 문화에 사로잡히면 전쟁과 같은 결정적 행위를 수행할 때도 자칫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전쟁의 문화』(아르테, 2025)에서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비교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전략적 멍청함’에 사로잡혀서 국가 위기와 파국적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다룬다. 저자는 일본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깃든 인종적 편견을 비판하고, 미국 중심 세계관을 ..
참된 행복은 무위(無爲) 속에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어느새’란 말이 선뜻 피부에 느껴진다. 마치 초겨울 바람 같다. 아리고 쓰라리다. 물론 하루하루 바삐 보내지 않은 적도 없고, 열심히 살지 않은 날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면 시간이 쌓이지 못한 채 스르르 흩어져 남김없이 사라진 기분이다. 인생 한 해를 빼앗긴 듯 그저 허망할 뿐이다. 열렬히, 정신없이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괜찮다고 할 수 없다. 뿌듯한 보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삶, 단단한 기억을 남기지 못하는 삶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못한 채 단순 생존으로, 벌거벗은 동물적 삶으로 쪼그라든다.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나, 거기에만 집념할 때 삶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맹목으로, 공허로, 무로 전락한다. ‘관조하는 삶’(김영사)에서 철학자 한병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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