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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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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본질 글쓰기의 본질은 선형적 시간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여기 있을 수 있음을 사랑하는 것이다. _제프리 루이스
날개 돋친 말 모든 시인이 새가 되기를 열망하지만, 시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새는 없다.  미국의 시인 메리 루플의 산문집 『가장 별난 것』(민승남 옮김, 카라칼, 2024)에 나오는 문장이다. 시인의 탐조 일지 속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런 문장은 오랫동안 날고 싶었던 사람, 그러나 날지 못해서 절망한 사람이 아니면 쓰지 못한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날개 돋친 말”이라는 수사를 썼다. 본디 뜻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와서 거침없이 상대에게 향하는 말이란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시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일상의 언어에 날개를 달아 시로 변화시킨다. 같은 말이 다른 뜻을 머금을 수 있도록, 언어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도록 언어의 신비를 풀어헤친다. 천사처럼 날개를 단 말, 우리 마음속 ..
뻔뻔함의 시대 수치의 시대다. 부정과 불의를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 정치적 ‘좋아요’를 받고, 무례와 혐오를 부추기는 파렴치가 사회적 ‘하트’를 얻는데,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면서 차분하고 신중히 행동하는 태도는 오히려 조롱당하고 조리돌림의 대상이 된다. 타인의 눈을 의식해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를 절제하는 지혜가 드물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당황해서 스스로 묻곤 한다. ‘수치는 혹여 나만의 감정인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참 힘든 시절이다.『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책세상, 2024)에서 프레데리크 그로 파리12대학 교수는 “수치심이 우리 시대의 주된 정서”가 되었다고 말한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비하적 수치심에 내몰리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수치는 본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짓..
조선 종소리서 일제 사이렌으로, 시간은 어떻게 강제되었나 『시간의 연대기』(테오리아, 2025)에서 이창익 고려대 연구교수는 시간을 셋으로 나눈다. 내면의 시간, 즉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되는 인간적 시간, 천체 운동에 따라서 측정되는 천문학적 시간, 인위적으로 제작돼 시계를 통해 유포되는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시간이다. 현재 우리 삶은 세 번째 시간에 거의 결박돼 있다. 특히 스마트폰 도입 이후, 그 압박이 더 심해졌다. 손에 든 화면엔 모두 같은 시간이 표시되고, 우리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강박적으로 거기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은 인간적 시간을 따라오기에, 억지로 시계에 맞춘 삶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50년 동안 한국에서 세 번째 시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고 타락했는지를 추적한다. ..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야말로, 동생아, 바로 이 벌레란다, 이건 특별히 나를 두고서 나온 말이야. 그리고 우리 카라마조프는 전부 이런 놈들이지, 천사인 너의 안에도 이 벌레가 살고 있어서 너의 핏속에서 폭풍우를 낳는 거야. 이건 폭풍우야, 정욕은 폭풍우거든, 아니, 폭풍우 이상이지! 아름다움이란 말이다, 섬뜩하고도 끔찍한 것이야! 섬뜩하다 함은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고, 뭐라고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다 함은 하느님이 오로지 수수께끼만을 내놨기 때문이지. 여기서 양극단들이 서로 만나고, 여기서 모든 모순들이 함께 살고 있는 거야. 나는, 동생아, 교양이라곤 통 없는 놈이지만, 이 점은 많이 생각했어. 비밀이 정말 너무도 많아. 너무도 많은 수수께끼들이 지상의 사람을 짓누르고 있어. 네 깜냥대로 수수께끼를 풀어 보라..
미(美)에 대하여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美)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골의 소박한 승려였던 아버지는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만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_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허호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17), 34쪽
조선 사람들도 사인을 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뒤 낙관을 찍곤 했다. 도장을 써서 자기 행위를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관문서나 토지 및 노비 매매 문서 등 일상생활에서는 사인을 사용했다. 사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 수결(手決)이다. 양반 신분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명으로, ‘일심(一心)’ 두 글자를 자기식대로 쓴 것이다. 즉 ‘→’을 길게 긋고 그 아래위에 점이나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자기 수결로 정하는 방식이다. 수결은 곧 사안(事案) 결재에서 ‘오직 한마음으로 하늘에 맹세하고 조금의 사심도 갖지 아니하는 공심(公心)에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결재를 일심결(一心決)이라고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방식의 결재가 없고 서압(署押; 자기..
작가 강연료에 대하여(천쉐) 지금 학교나 기관에서 섭외를 담당하는 분들께 사례금 부분을 잘 생각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다.어떤 일을 의뢰할 때는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며 작가님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작가님의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전문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좋겠다.어떤 일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사례금의 세부 사항까지 함께 알려주어,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가 입에서 먼저 돈 얘기가 나오는 어색한 상황은 피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정말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미뤄놓고 강연하고 심사를 하는 것이다. 돈 때문만이 아니라 문학을 향한 사랑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작가를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서 이 일이 작가에게 아름다운 협업 경험으로 남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작가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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