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중산층은 6.25 전쟁으로 모든 물질적 기반이 파괴된 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빠르게 진행된 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한다.
2. 경제적 부가 품위로 전환되기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부르주아라 해도 상류층다운 아비투스를 갖추지 못한 졸부가 대부분이었다.
3. 중산층이라는 표지는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주도의 희망의 전시 공간이었고, 이에 대중이 호응하면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이 퍼져 나갔다.
4. 독특한 것은 한국 충산층 환상은 여성적 이미지, 즉 스위트홈이라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여성적 공간-사적 영역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5. 이에 따라 아내, 어머니, 안주인을 중심으로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가 구성되었고, 공적 영역을 온전히 지원하는 역할로서 중산층 가정은 운영되었다.
6. 1980년대는 군부 독재와 민주화 열망이 곳곳에서 충돌하는 정치의 시대였다. 이에 따라 중산층 가정의 아내는 해직 교수(교사)가 되어 버린 남편과 맞닥뜨리고, 데모하는 자녀들과 갈등하고 충돌하는 등 평온한 가정에 갑자기 틈입한 정치성을 관리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7.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운동권 여대생이라는 독특한 존재성이 생겨났다.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상대적으로 풍족한 집안의 딸들인 여대생은 흔히 허영, 사치, 정치적 무관심 등으로 압축되는 잉여의 상징으로 폄훼되곤 했다.
8. 더욱이 학생 운동권 전체가 가부장적 구조에 갇혀 강인한 투사(열사, 전사)로 상징되는 남성 이미지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혹여 운동하는 여대생일지라도 어디까지나 남성의 큰일을 도와주는 것 이상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 어려웠다. 남성들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형제로 표상된 반면, 어머니는 도덕적 주체로 부각되었으며, 딸의 자리는 애초에 없었다.
9. 이처럼 운동권 내의 성별 분업이 일상화해 있었고, 운동하는 여학생들은 이런 차별의 벽을 뛰어넘는 것, 자신을 독립적 정치적 주체로 가시화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치렀다. 운동권 문화에서 여성성은 정치의 타자로서 비정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리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10. 김향숙 소설들은 사적 영역에 갇혀 있던 [중산층] 어머니와 딸이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살피는 감정의 지형도를 제공한다.
- 오자은, <중산층 가정의 데모하는 딸들>, 『여자 주인공들』(생각의힘,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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