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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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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냄새, 다가선 봄을 알리다 한 차례 봄눈이 쏟아진 후, 오히려 봄기운이 부쩍 다가선 느낌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한유는 「춘설(春雪)」에서 “흰 눈은 도리어 더딘 봄이 미워/ 나무 사이로 눈꽃을 흩날리는구나(白雪却嫌春色晩/ 故穿庭樹作飛花)”라고 노래했는데, 과연 이 무렵 내리는 눈은 과연 열흘 먼저 피는 매화나 다름없다. 하시라도 빨리 봄꽃을 보고 싶어 나뭇가지마다 눈으로 꽃을 빚어 매달았으니 말이다.봄볕을 맞으려고 창문을 활짝 여니, 뒤뜰 나뭇가지마다 싹들이 비쭉비쭉 올라와 있다. 인간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으나, 나무의 봄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내린 눈이 녹아서 나무를 흠뻑 적시면서 물씬 향기를 쏟는다. 그리운 마음에 고개를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켜 허파를 가득 채운다. 봄이 선뜻 내 속으로 들어온다. 이럴 때 읽으..
인간은 왜 이야기를 읽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면 몸이 이른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으로 보상을 준다. (중략) 예상보다 좋은 경험을 하면, 뇌 깊숙한 영역에서 신호를 보내어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면 도파민이 현재 상황을 빠르게 저장해서 미래에도 긍정적인 감정을 누릴 수 있게끔 돕는다. 유아들에게 자기 세계를 탐험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 물질 역시 도파민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즐겨 읽고 듣는 까닭도 어쩌면 이런 기습 효과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익숙한 세계를 떠나면 항상 모험이 시작된다. 그들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 그 길에는 적이 도사리고 시련이 기다린다. 모두를 굴복하게 만드는 절대 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가 호빗 빌보 배긴스에게 던져진다면 그 누가 ..
여사장의 탄생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서 경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아직 한 세기가 안 됐다. 김미선 이화여대 연구교수의 『여사장의 탄생』(마음산책, 2025)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후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이 ‘셀프(Self) 고용’의 형태로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독립운동 또는 국가 동원 등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 탓이다. 이에 먹고살기 위해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성들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한국전쟁 와중인 1950년대엔 사업체를 운영하는 여사장이 탄생했다. 저자는 “규모나 직원 유무에 상관없이 자기 고용을 통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제활동”을 ‘자영업’으로, 이런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을 ‘여성 자영업자’로 규정한다. ‘여사장’은 ..
명태에 대하여 명태는 대구과 명태속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주강현의 『명태 평전』(바다위의정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명태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 후기 17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1652년 사옹원 관리가 강원도 10월 분 진상품에 대한 폐해를 보고하는 가운데 대구 알과 함께 명태 알을 언급했다. 원래 함경도 앞바다가 명태 주어장이었지만,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대거 월남한 어민들이 강원도 해안에 자리 잡으면서 함경도 아바이 전성시대가 시작됐다.한국에서 명태는 ‘국민 생선’이다. 명태 상태에 따라, 생태, 동태, 북어, 황태, 먹태, 노가리 등 무려 50여 가지 명칭이 있다. 다양한 쓰임새로 명태가 우리 생활 속에 굳건히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명태는 국민 사랑을 한몸에 받아 제사상에 오르며 ‘절을 받는 물고..
목욕의 한국사 1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에 대한 기록은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를 동천(東泉)에 씻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계옥’이라는 목욕 풍습이 있었다. 고대 한국인들은 목욕을 죄를 씻는 성스러운 행위로 여겼다.  2고려시대 사람들은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만큼 목욕을 좋아했다. 이들은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시냇물에서 함께 섞여 목욕을 즐겼다. 1123년 고려를 다녀온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시대 목욕 풍습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남자와 여자의 분별도 없고,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에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왕과 귀족들은 온천을 자주 찾았는데, 선종 5년(1088)에는 관리가 병 치료를 위해 온..
세계 목욕의 역사 1가장 오래된 목욕의 역사적 증거는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로에서 나타난다. 기원전 3000년에 세워진 이 도시 유적에서는 상하수도 시설과 목욕탕의 흔적이 발견됐다.  2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목욕을 체액(혈액, 점액, 황담액, 흑담액)의 균형을 맞춰주는 의료 처치로 여겨 환영했다. 그리스인들은 건강을 위해 냉온수, 증기로 목욕했고, 로마인들은 거대한 공중 목욕탕을 매일 찾아 사교 활동과 함게 식사, 마사지 등을 즐겼다.  3로마에서 공중목욕탕은 ‘황제의 성적표’라 불렸다. 신분에 상관없이 로마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었기에 사회 통합 기능을 해냈다. 거대한 목욕탕은 황제가 정치를 잘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상징이었다. 4초기 기독교인들은 여가와 쾌락의 장소이자 남녀 혼욕, 매춘 ..
현대의 극우 애국주의 독재자들 『극우, 권위주의, 독재』(글항아리, 2025)는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독재자의 출현 현상을 다룬다. 책의 원제는 스트롱맨(Strongmen). 힘 자랑하기 좋아하는 극우 애국주의 마초 넘들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수법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정치학에선 민주주의와 독재(극우 포퓰리스트)가 결합하는 이 역설적 현상을 ‘하이브리드 정권’ ‘선거제 독재 국가’ ‘신독재주의’ 등으로 부른다.   저자는 루스 벤 기앳. 미국 뉴욕대 교수로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다. 저자는 20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나타난 독재 통치를 1919~1945년 파시스트 시대, 1950~1990년 군사 쿠데타 시대, 1990년부터 현재까지의 신독재주의 시대 등 세 시기로 나눈다. 첫 시기를 대표하는 인..
냉전과 한국전쟁 미국과 소련은 모두 유럽계에서 파생했으나, 19세기 말 공통의 적 유럽의 팽창을 저지하는 데에서 그 마음이 일치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이 전개되는 내내 그 공통점을 유지했다. 『냉전』(서해문집)에서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냉전을 “미국과 러시아가 점차 국제적 사명감을 갖춘 강력한 제국으로 전환한 과정”이자 “자본주의와 그 비판자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첨예화한 과정”으로 정의한다.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 대결을 기반으로 형성된 국제 질서를 말한다. 힘과 폭력이 국제관계의 기준이 된 이 차가운 전쟁 시기는 유럽 제국주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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