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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조선 사람들도 사인을 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뒤 낙관을 찍곤 했다. 도장을 써서 자기 행위를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관문서나 토지 및 노비 매매 문서 등 일상생활에서는 사인을 사용했다. 사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수결(手決)이다. 양반 신분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명으로, ‘일심(一心)’ 두 글자를 자기식대로 쓴 것이다. 을 길게 긋고 그 아래위에 점이나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자기 수결로 정하는 방식이다. 수결은 곧 사안(事案) 결재에서 오직 한마음으로 하늘에 맹세하고 조금의 사심도 갖지 아니하는 공심(公心)에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결재를 일심결(一心決)이라고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방식의 결재가 없고 서압(署押; 자기 성명을 초서로 써서 위조할 수 없게 한 사인)만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의 독특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흥미로운 낙서가 있다. 낙서처럼 ‘→’을 반복해서 쓴 쪽이 있는데, 낙서가 아니라 수결을 연습한 흔적이다. ‘→’으로 수결을 연습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과는 다른 인간미를 느낀다.

 

이순신의 수결 연습 흔적

 

둘째는 수촌(手寸)이다. 수촌은 주로 평민이나 노비가 사용한 사인으로 왼손 가운뎃손가락(중지)을 대고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의 길이를 그린 다음 한자로 ‘좌촌(左寸)’이라 쓴다. 드물게는 오른손가락을 이용해 ‘우촌(右寸)’을 함께 표기할 때도 있다.

조선시대 노비매매문서 왼쪽에 수촌(手寸)이 보인다. (자료 출처 : 대전시립박물관)

마지막으로는 수장(手掌)이다. 수결과 수촌이 남성의 사인이라면, 수장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오른손을 사용해 손바닥을 대고 그리거나 먹물을 묻혀 손바닥을 찍었다. 이런 손 그림을 보고 낙서로 오해하기도 한다.

실제 손 크기에 맞게 그리는 것이 수장의 원칙이었다면 문서 위에 그려진 손 크기는 실제와 비슷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작게 그려진 문서들이 있다. 무슨 까닭일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수장이 형식화되면서 실제 손을 대고 그리지 않고 손 모양을 대충 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의 발바닥 크기로 그린 것도 있다. 다른 하나는 소녀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즉 소녀 손이라서 수장이 작을 수밖에 없다.

자매문기(自賣文記) 자신과 아내, 첩과 아들을 노비로 파는 내용이다. 왼쪽의 손바닥 그림이 수장이다. (자료 출처 : 대전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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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박건호, 『역사 컬렉터가 사는 법』(빨간소금, 2024), 168~169쪽에서 옮겨 적은 것이다.

어쨌든 나에겐 수집의 열망이 전혀 없다.

책은 제법 가지고 있으나, 특별히 모은 적은 없다.

사거나 얻은 것을 버리지 않고

공간이 허락하는 최대치로 쌓아 두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의 수집 이야기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이거 재밌네, 해볼까, 에이 괜한 욕심이지,

하면서 한 꼭지씩 읽다 보니 어느덧 책이 끝났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솔직하다.

 

박건호,  『 역사 컬렉터가 사는 법 』 ( 빨간소금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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