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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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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드로잉 그림들 실비아 플라스.현대 문학은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에 침습된 감성을 자신만의 마력적인 언어로 연주하다가 마침내 불꽃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마친 이 여성에게 어떤 식으로든 빚을 지고 있다. 이십대 초반에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를 읽으면서 받았던 그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점층법으로 점차 높아 가던 그 속말의 절규들. 너무나 사랑했기에, 괄호 속에서만 오로지 제 목소리를 내는 처연한 목소리.(번역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시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 블로그를 참고하라.)최근 실비아 플라스가 그린 드로잉 그림들이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디테일을 정교하게 재현한 솜씨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녀가 문학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존 맥그리거, 더블린 문학상 수상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존 맥그리거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국제 임팩 더블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크리스마스에 죽은 한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얼마 전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된 『개들조차도』이다. 개들조차도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민음사 국내 독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작가는 사실 재작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과 『너무나 많은 시작』이 문단의 젊은 문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주목받으면서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다.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와 중후한 문제 의식을 실험적 형식으로 담아내는 맥그리거의 솜씨가 많은 작가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존 맥..
책의 죽음과 부활 - 북 아티스트 기 라라미의 작품들 북 아티스트 기 라라미(GUY LARAMEE)의 작업은 종이책의 최후와 그것의 예술적 재탄생에 맞추어져 있다. 그는 백과사전 등과 같이 이미 사라져 버린, 아니 사라져 가고 있는 책들을 이용해 자연을 재현하려고 하는데, 이는 결국 물질의 일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공적 사물의 필연적 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풍경을 불러들이는 놀라운 광경을 통해 우리는 읽기를 넘어서는 책의 사용성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기 라라미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아래의 작품들을 보라.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출판 전문 잡지인 《기획회의》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글은 오래전에 써 두었고 투고한 지 며칠 된 글입니다. 한기호 소장님 블로그에 가 보니, 드디어 책으로 나왔기에 제 블로그에 공개합니다.저는 오래전에 여러 선후배들 앞에서 편집자로 정년퇴직하겠다고 서언한 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의 무게를 점점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정년이라는 개념은 요즈음 분위기에서 상당히 시대 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렸으나, 책을 내는 일이 하나의 중요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무척이나 행복할 겁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편집자라는 직업은 아직 그 직업적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선 책에 관련된 모든 일을 기획하고..
내가 고른 이 주의 신간(2012년 6월 4일~10일) 1. 디지털 인간학, 소셜 세계를 만나다 외로워지는 사람들셰리 터클/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셰리 터클은 아주 오랫동안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나는 그녀의 작업들로부터 지금까지 디지털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곤 했는데, 이 책은 최근에 유행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로봇의 출현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이버 인간학이라고나 할까 고수의 솜씨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디지털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인간이 디지털과 함께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알라딘에서 e비즈니스/창업으로 분류된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MD는 뭐 하는 건지??? 아래는 책 앞부분에서 뽑은 문장들이다. 우리는 도구에 의해 형성된다. 이제, 컴퓨터라..
한국문학번역원 이사가 되다 오늘 오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 이사 임명장을 받았다. 임명장 수여 후 최광식 장관과 찍은 사진이 뉴시스에 실렸다. 임명식 후 간단한 간담회에서 최 장관이 K-DRAMA, K-POP에 이어 K-CULTURE의 세계화를 역설하는 가운데 두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만들어 낸 힘이다.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에 씌운 이미지가 내게 그러했듯, 그래서 이스탄불을 찾도록 했듯, 스토리가 공간에 덧입힌 아우라는 공간을 신비롭게 만들고 그 공간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자라 기어이 그 물질적 실체를 확인하도록 이끈다. 최 장관에 따르면, 우리 드라마는 서쪽으로 옮겨가고 또 옮겨가서 헝가리에서 그 영토 확장..
무라카미 하루키, 만화로 다시 태어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 적어도 미국에서는 주류 작가에 속한다. 6월 1일자 《뉴욕타임스 북리뷰》 일요판에 요즘 내가 푹 빠져 있는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그랜트 스나이더의 만화가 실렸다. 스나이더는 지난 몇 년 동안 하루키의 책들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열두 권의 소설, 세 권의 단편집, 그리고 회고록까지 모두 섭렵한 후에 이 빙고 카드 만화를 그렸다는 것이다. 스나이더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당신이 하루키의 천재성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의 작품 속으로 뛰어들 때 이 빙고 카드를 손에 들어라. 먼저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 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시작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하루키 팬이라면 이 만화가의 관찰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0년 이상을 빠짐없이 하..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민음사, 2012) 보드리야르의 유작 『사라짐에 대하여』가 나왔다. 작은 책이지만 쉽지 않은 내용과 디자인 때문에 편집하는 후배와 디자인하는 후배 둘이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 내용과 디자인이 어우러지는 좋은 책을 만들어 냈다. 사라짐에 대하여 미디어와 가상 현실, 네트워크의 시대가 도래하자 사람들은 현실성 살해에 대해 지겹도록 떠들었다. 반면 현실이 언제부터 존재했느나는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실제 세상이 근대에 이르러, 그 세상을 변형하고자 하는 결심과 함께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중략) 인간이 세상을 분석하고 변형하려고 하면서, 세상과 작별하고, 동시에 세상에 현실성의 힘을 준 순간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실제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