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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마을에서 읽는 한시 1]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獨坐敬亭山

李白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홀로 경정산(敬亭山)에 앉아서

이백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 가네.

서로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건

오직 경정산이 있을 뿐이지.


일주일에 세 번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아침에 한시를 읽고 있다. 당시(唐詩)를 기본으로 해서 우리나라 한시들을 주로 읽으려 하지만, 가끔 마을 주변에서 만나는 시들도 구해서 함께 우리말로 옮기면서 읽기도 한다. 여기에 차례대로 짤막한 감상을 붙여서 옮겨 둔다.

이 시는 예전에 이미 읽은 적이 있지만, 김연수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애송한다고 밝힌 후에 새삼 눈에 들어와서 찬찬히 살펴 읽게 되었다. 김연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두 개의 글을 읽는다. 하나는 이백의 시 「경정산에 올라(獨坐敬亭山)」이고 하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 쓰시마 유코가 쓴 짧은 소설 「꿈의 노래」다.


쓸쓸함 속에서 안식을 얻는 법을 깨닫기에는 아직 청춘인 것일까. 외로움과 쓸쓸함을 극복하고 고고하고 담담한 어조를 되찾은 이백과는 달리 아직 김연수의 어조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쥐어 짜면 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경정산에 홀로 앉아」는 이백이 마흔여덟 살 때인 천보(天寶) 12년(753년), 선성(宣城, 오늘날 안휘성 선성현)에 있는 경정산에 올라서 지었다고 전한다. 선성 땅을 지날 무렵, 이백은 벼슬길에서 뜻을 얻지 못한 채 수도인 장안(長安)을 떠나 천하를 유랑한 지 벌써 십 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사이에 근심도 잦아들고 울화도 가라앉은 듯 이 시에 표현된 마음은 고고하고 청정하기만 하다. 

시는 아름다운 그림과 같다. 시인이 언제부터 경정산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늘 높이 날던 새들도, 유유히 흘러가던 구름도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뭇 새들과 외로운 구름 한 점이 강렬히 대비되면서 시인의 고독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 고독이 좌절을 부르지 않은 것은 경정산이 한결같이 늘 그대로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묘미는 “서로 바라보아도 둘 다”라는 멋진 표현에 있다. 내가 경정산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정산 역시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내가 경정산이 물리지 않는 것과 같이 경정산 역시 나에게 물리지 않는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절묘하게 보여 주는 구절이다. 

시골 마을에서 읽으니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제쯤 나는 이백의 경지를 엿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