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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명(銘), 사물에 새긴 마음

주세붕(周世鵬)의 종이창에 새기다(紙窓銘)

종이창에 새기다


주세붕



종이창은 능히 밝은 빛을 받아들이나니, 그것을 더럽히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종이창은 능히 바람을 막아 주나니, 그것을 찢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방에 살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닦으려는 사람은 사악한 생각이 깃들지 않도록 힘쓰라.


紙窓銘

紙窓能納明, 汚之者自欺. 紙窓能御風, 破之者自危. 居是房而欲正心修身者, 庶幾無邪思.




이 글은 주세붕(周世鵬)의 문집인 『무릉잡고(武陵雜稿)』에 실려 있는 글이다. 주세붕은 이 글에서 종이창을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종이창이 빛을 투과하고 바람을 막는 것처럼, 마음 역시 끝없이 정갈함을 유지해 밝은 빛으로 채우고 구멍 나지 않게 챙겨서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유지해야 함을 경계한다. 요즈음은 우리의 건축 양식도 현대화되면서 주로 유리창을 쓰고 종이창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창은 재료에 관계없이 언제나 마음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현대와 같은 물질 만능의 시대일수록 마음이 바로서지 못하면, 성공할수록 오히려 불행해지기 쉬운 법이다. 더러워진 창을 볼 때마다 이 글을 한 번쯤 떠올리면서 자신을 돌이키고 싶다.

이 글을 쓴 주세붕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사람이다. 백운동서원은 지금도 경상북도 영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의 본래 이름이다. 서원이란 조선시대의 교육 기관으로, 선비의 자제들을 유학에 입각해 교육하고 향촌 사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소수서원은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광 역시 아름다워서 조선의 정신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예전에 몇 차례 들른 적이 있는데, 풍광이 정갈해서 마음이 씻기는 듯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