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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명(銘), 사물에 새긴 마음

창문에 새기다(窓銘) /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창문에 새기다


임성주


네 얼굴을 깨끗이 하고, 네 어깨를 가지런히 하라. 기력이 다했다고 말하지 말고, 생각을 어질게 하며 의로움을 돈독히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서 한 숨결조차도 게으르지 말라.


窓銘

整爾顔, 竦爾肩. 莫曰旅力之愆, 仁思敦義思神, 靡懈一息之存. 



사람이 거주하는 방은 사적인 공간이다. 바깥에서 남의 눈을 의식할 때는 곧잘 예의와 염치를 차리는 이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홀로 있을 때에는 마음이 무너지고 자세가 흐트러져 제멋대로 되기 쉽다. 거대한 방죽도 개미구멍으로부터 붕괴하는 법이니, 구멍이 났을 때 작다고 해서 즉시 메우지 않고 버려두면 결국에는 감당 못 할 큰일로 번지고 만다.

그래서 옛 사람은 홀로 있을 때조차 몸가짐을 조심하는 ‘신독(愼獨)’을 자기 수양의 첫걸음이자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신독’이라는 말은 『중용』의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무서워한다. 숨은 것만큼 잘 나타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만큼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戒愼乎, 其所不睹, 恐懼乎, 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는 말에서 왔다. 바람직한 인간(군자)이 되는 것은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늘 돌이켜 조심하는 자기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 중 한 사람인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방에 달린 창을 보면서 ‘신독’을 다짐한다. 사람은 흔히 방 안에 홀로 있으면 용모도 꾸미지 않고 어깨도 축 쳐져서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기 십상이다. 희망 없어 보이는 이런 무기력한 삶의 순간이 자신을 가장 쉽게 망친다. ‘여력지건(旅力之愆)’은 『서경』에 나오는 말인데, 본래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나친 스트레스 탓에 살아갈 힘을 모두 잃고 소진되어 절망적으로 삶을 맞이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므로, ‘지쳐 쓰러진 삶’의 표상으로 읽어도 좋을지도 모른다. 넘어지기는 쉬워도 일어나는 법을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숨결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시간조차도 나태하지 않고 어짊과 의로움 같은 가치를 홀로 되새기는 신독의 시간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데 작지만 중요한 출발이 된다. 선인은 홀로 있을 때조차 그것을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심사정의 산림유거(山林幽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