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813)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2일(일)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자연은 너무나 다양하며 특히 인간 본능과 성격에 관해서라면, 자연으로부터 그 관찰과 체험을 취하는 시인의 상상력에서 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
[한시 읽기] 하수일, 봄날 옛 집을 생각하며(春日懷舊居) 春日懷舊居河受一 琴書七代業灰燼一朝空.樓倒槐疏影園荒菊半叢.御題雙障子家訓兩屛風.誨盜由藏慢休論喪亂中. (1) 하수일(河受一, 1553~1612) :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남명(南冥) 조식(曹植)의 제자이자 종숙인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에게서 배웠다. (2) 금서(琴書) : 거문고와 책. 선비를 상징함.(3) 회진(灰燼) : 불에 타서 없어짐.(4) 괴(槐) : 홰나무. 느티나무를 뜻하기도 함.(5) 어제(御題) : 임금이 직접 쓰거나 그린 것. 병자(屛子) : 병풍(6) 장풍(障風) : 병풍. 병장(屛障) 또는 청방(淸防)이라고도 한다.(7) 회도유장만(誨盜由藏慢) : 『주역(周易)』 「계사(系辭)」 상편의 "재물을 허술히 감추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며, 용모를 ..
[한시 읽기] 도연명, 술을 마시고(飮酒) 제5수 飮酒 陶潛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此中有眞意欲辨已忘言 (1) 음주(飮酒) : 전체 스무 수의 연작으로 이 시는 그 중 다섯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는 “내가 한가하게 살다 보니 기쁜 일이 적은데 더하여 밤도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좋은 술을 얻어 밤이면 마시지 않을 때가 없었다. 내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모두 마시고 나면 어느새 취하곤 했다. 취하고 나서 곧 몇 구절 적은 후 스스로 즐거워했는데, 종이에 쓴 것은 많아졌지만 글에 차례가 없었다. 이에 친구에게 부탁해 이들을 쓰게 하니 이는 다만 함께 즐기고 웃으려 했을 뿐이다(余閒居寡懽, 兼此夜已長. 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紙墨遂多, 辭無詮次...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1일(토)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 사상가들과 한 시대에 명성을 떨쳤던 각종 낭만파는, (중략) 독일이 분산되고 낙후되고 연약한 상태에서 통일되고 강대하고 풍족해지는 과정..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0일(금)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안단 말인가? (7쪽)―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그리고 우리가 ..
편집자는 고백해야 하는가? 요즘 출판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본격 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의 첫 번째 방송 제목은 ‘사장님의 SNS’였다. 여기에 이른바 출판의 소셜화에 대한 고통스러운 유머가 있고, 신랄한 자기 긍정이 있으며, 변화에 대한 슬픈 응시가 있다. 출판이란 본질적으로 소통에 대한 것이고, 책은 그것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이므로, 편집자나 영업자가 저자 또는 독자가 만나는 장을 열어 소통을 증진하는 것은 어쩌면 차라리 의무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 행위 앞에 고통, 신랄, 슬픔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이곳에서 길 잃게 한 것일까.편집자는 고백해야 하는가? 이 낯선, 그러나 신선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찾지 못했다. 소셜이 가져온 저비용 고효율의 마케팅은 말 그대로 저비용..
출판과 편집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 연말에 며칠 쉬면서 책과 출판과 글과, 무엇보다도 삶에 대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았다.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망오십을 앞둔 삶이 갑자기 부닥치게 되는 답답한 공포라고 해야 할까? 새해를 앞둔 그저그런 의례적 공포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시간 속에서 하릴없이 끙끙거렸다. 그 와중에 틈틈이 내년에 나올 번역서의 교정을 보고, 또 밀렸던 책과 원고를 읽었다.편집자 생활 20주년 기념 스페인 여행 때 내가 내렸던 답은 '읽기'였다. 내 삶의 대부분이 '읽기'로부터 나왔으니 결국 그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적 삶의 결심과 공적 인생의 사업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일까? 때마침 새해 회사 신..
거대한 여백 - 디자인에 대한 몽상(《디자인》 2012년 7월호) 이 글은 작년 7월에 월간 《디자인》에 실었던 글이다. 게재 직후에 원고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라졌는데, 북디자인과 관련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과거에 쓴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거대한 여백 디자인에 대해서 쓰려 하니 가장 먼저 거대한 여백이 떠오른다. 순전한 흰색, 어떤 문자도 문양도 그 위에 그려질 수 없는 절대 공간. 한창 산을 좋아했을 때,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첫 빛으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망막을 하얗게 태우고 언어의 길을 단숨에 끊어버렸던 눈 내린 직후의 흰색 산야. 어느 한밤중 문득 자다 일어나 꿈속에서 썼던 아름다운 시를 끼적여보려고 대학 노트를 여는 순간, 형광등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을 뿜어내 머릿속의 리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