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60)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심광체반(心廣體胖, 마음이 넓어지면 몸은 편안히 펴진다) 증자(曾子)가 말했다. “열 눈이 바라보는 바요, 열 손이 가리키는 바니, 그 엄격함이여!”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면 몸은 편안히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성의(誠意)’를 해설하는 전(傳) 6장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오늘이 6장의 마지막입니다. 고본 『대학』에서는 이 장의 글들이 모두 앞에서 공부한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쳐다보니, 조개풀[菉竹]이 아름답고 아름답구나.’[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의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희가 이를 나누어서 여기에 가져다두고 ‘성의’를 풀이한 것으로 본 것..
[조선일보 서평] 빅데이터 인문학의 출현 검색창에 여름휴가(summer vacation)이라고 쳐 넣는다. 잠시 후 그래프 하나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래프에 따르면, 19세기 초엔 여름휴가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0년 무렵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산업화 덕분에 생긴 삶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라는 말의 사용은 1915년부터 1941년까지 25년 동안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현재까지 역력한 하강세를 보인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휴가(vacation)는 어떨까? 이 말 역시 19세기부터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다가 여름휴가와 똑같이 1941년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휴가라는 말은 여름휴가와 달리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다시 힘을 ..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신독(愼獨, 홀로 있음을 삼가다) 소인은 일 없이 홀로 있을 때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데, [끝내] 못 하는 짓이 없음에 이른다. 그러다 군자를 만나면 슬그머니 가리면서 그 선하지 않음을 감추고 그 선함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남이 자신을 보면, 그 폐와 간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으니, 그렇다면 [숨김과 드러냄이] 어찌 보탬이 있겠는가? 이를 일컬어 [마음]속이 정성스러우면 바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지난주에 이어서 전(傳) 6장을 읽겠습니다. 계속해서 ‘성의(誠意,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를 부연하여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본래 군자는 백..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육유(陸游)의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柳橋晩眺)」 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 육유(陸游) 작은 물가에서 고기 뛰노는 소리 들리고,가로누운 숲에서 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네.한가로운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하고,푸른 산 근처에서 흩날리누나. 柳橋晩眺陸游 小浦聞魚躍,橫林待鶴歸.閒雲不成雨,故傍碧山飛. 제목에 나오는 유교(柳橋)는 장강(長江) 하류에 위치한 항주(杭州) 근처의 지명입니다. 만(晩)은 ‘저녁’이라는 뜻이고, 조(眺)는 멀리 내다보는 일입니다. 유교만조(柳橋晩眺)는 ‘저물녘 유교에서 멀리 내다보다’로 풀이합니다. 지난주 이몽양(李夢陽)의 시 「어촌석조(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에서는 동정호(洞庭湖)의 저녁노을을 감상했는데, 이번 주에는 항주 근처의 저녁노을을 즐기게 되네요. 시를 통해 절경(絶景)을 즐기는 것은 여행을 가서 눈으로 직접 즐기는..
[논어의 명문장] 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필부에게서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군(三軍)에으로부터 그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필부로부터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외압에 맞서서 자신의 올곧음을 굽히지 않으려고 할 때 쓴다. 『논어집주』에서는 이 구절을 삼군의 용맹은 남에게 달려 있고, 필부의 뜻은 자기한테 달려 있으므로, 장수는 빼앗을 수 있지만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빼앗긴다면 뜻이라고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뜻이란 한 사람의 고유함(개별성)을 이룩하는 ‘마음의 정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조 없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정체는 마음속에 어떤 뜻이 품었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
[단상] 문학적 체험과 이타성 문학적 체험이란 근원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는 후설의 ‘이타성’ 개념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내 안에 초대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두 영혼’으로 살아볼 수 있다.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읽다 주말에 서평을 쓰려고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의 『빅데이터 인문학』(김재중 옮김, 사계절, 2015)을 다시 읽었다.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아래에 밑줄 그은 것들을 옮겨 둔다. 빅데이터는 인문학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변형시키고, 상업 세계와 상아탑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다. (17쪽)호모사피엔스가 남기는 데이터 발자국의 양은 2년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 (21쪽)데이터는 “사회적 삶의 일부”다.구글 북스는 단순히 빅데이터가 아니라 롱데이터다. (28쪽)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문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초상화를 제공한다. (29쪽)다윈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사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존재하게 됐을까? 우리가 세상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상태를 ..
[문화일보 서평] 부정부패속 기회의 땅… ‘중국의 이중성’ 까발리다 오랜 탐사로 다져진 엄밀한 사실을 토양 삼고 음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유려한 문장을 줄기 삼아서 공론(公論)의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다. 저자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면서도 전혀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 문제를 드러내려는 올곧은 정신, 취재를 누적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열정만이 허락된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주제 하나만을 다루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세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면서도 전체를 동시에 통찰하는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논픽션이다.《뉴요커》의 중국 전문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아직 이름이 낯설다. 『야망의 시대』(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2015)가 첫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썼다. 논픽션의 모범이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