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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정섭(鄭燮)의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峭壁蘭) 가파른 절벽에 난초가 피다 정섭(鄭燮) 가파른 절벽은 높이가 일천 척인데,난초꽃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네.절벽 아래 캐려는 나무꾼이 있어서손을 뻗었으나 꺾을 수는 없었네. 峭壁蘭峭壁一千尺, 蘭花在空碧.下有采樵人,伸手折不得.정섭(鄭燮, 1693~1766)은 청나라 강희제 때의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양주팔괴(楊州八怪)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벼슬을 떠나 글과 그림을 벗해서 자유롭게 살고자 후원자를 찾아 양주에 정착했습니다. 화훼 그림에 뛰어났으며,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한 폭에 같이 넣어서 조화를 추구하려 했습니다. 특히 난초 그림과 대나무 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난주에는 같이 석류꽃을 공부했는데, 여름 꽃이라면 역시 난초꽃이기에 골라 보았습니다. 제목 초벽란(峭壁蘭)에서 ‘초(峭)’는 가파..
편집자가 필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제 몸으로 하는 공부가 시대의 한 대세로 올라선 느낌이다. 단지 정보를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려 쏟아내는 일만으로 사람들은 헛헛할 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라고 썼다. 알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서 껍데기를 깨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투쟁이야말로 인생에 진정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다. 이 본능적 투쟁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설령 잠시 약화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이러한 투쟁 없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연결시대에 정보 폭풍 속에서 한없이 시들어진 인간 본성을 편집은 어떻게 책으로 가져와 다시 일으킬..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전왕불망(前王不忘, 앞 임금을 잊지 못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함으로 여긴다. 백성들은 그 즐겁게 해 준 바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 이롭게 해 준 바를 이로움으로 여긴다. 이 덕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오늘 읽은 문장은 지난주에서 이어진 것입니다. 군주가 지극한 선함에 머무르면[止於至善] 그 덕이 당대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후세에까지 이어져 영향을 미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구절씩 읽겠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 임금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했다. 詩云, 於戱, 前王不忘!『시경』 「주송(周頌)」 편에 나오는 「열문(烈文)」이라는 시에..
[논어의 명문장] 필야사무송호(必也使無訟乎, 반드시 소송이 없도록 하겠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송사를 듣고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할 것이다.”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청송(聽訟)’은 소송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일입니다. ‘유(猶)’는 ‘마찬가지’ 또는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인(人)’은 보통 ‘사람’으로 풀지만, 여기에서처럼 ‘남’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필야(必也)’는 ‘어찌해서든 반드시’라고 풀이하는데, 야(也)는 특별한 뜻 없이 음절을 맞추려고 넣은 어조사입니다. ‘사(使)’는 ‘~하게 하다’입니다. 뒤에 목적어 ‘백성들’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호(乎)’는 단정적인 뜻을 표시하는, 또는 의지를 표시하는 종..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 '미움 받을 용기'에 대한 코멘트 2015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미움받을 용기』에 대하여 한국일보 오미환 기자가 기사를 썼습니다. 제 블로그 글을 인용했기에, 여기에 옮겨 둡니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 '미움 받을 용기'… 삼포세대에 자존감 가져라 토닥토닥 '능력 부족해서 불행한게 아니다, 진지하게 살면 충분'자아 상실에 대한 불안감 위로, 심리학자 아들러 신드롬 일으켜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 발행)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대형서점의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출간 이래 내내 맨꼭대기를 지키며 40만부 가량 팔렸다...
스티브 잡스 전자책을 낼 때 있었던 일 옛날 옛적에 스티브 잡스 전자책을 낼 무렵의 이야기가 이렇게 이야기되고 있군요. 뒷담화답게 당사자들에게는 소설이 많지만, 굳이 수정은 안 합니다.^^어디까지나 뒷이야기이니까요. 하지만 전자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정말 고민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래 인용된 부분은 당시 제 고민을 정확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링크를 참고하세요. 그런 시기에 스티브 잡스 전기는 제대로 된 CSS의 도입과 전용 폰트(이 폰트는 이후 개선되서 애플 SD 고딕에 채용됩니다)가 적용된 전자책으로 제작되었던 거지요. 도서 제작의 기준은 아이북스 앱에서 보이는 걸 기준으로 했습니다. 민음사같은 기존 출판사가 전자책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교본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
문학권력 문제에 대하여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제 이름이 실린 기사가 나왔습니다. 문학권력 문제는 그다지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비평 자본과 출판 자본이 한몸으로 결합되어 상생하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말 한마디 보탠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비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좋은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훌륭한 비평으로 떠받쳐 왔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 사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지금까지 헌신해 온 세 출판사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이 출판사들도 이익을 내고 손해를 줄여 파산을 면해야 하고 해마다 직원들의 복리를 향상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무슨 문학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그러한 기본 기능을 무겁게 떠맡은 회사들입니다. 문학 권력 문제를 논..
[문화일보 서평] 정보 폭풍시대 뇌(腦)를 청소해야 성공한다 정보 폭풍시대 腦를 청소해야 성공한다정리하는 뇌 /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와이즈베리 오늘은 고백해 버리자.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전문적인 학자가 최신 과학연구 결과를 이용해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책. ‘실용적 과학서’라는 이름을 여기에 붙이자. 같은 주제의 인문학 책을 읽어도 괜찮지만 과학의 첨단 연구가 밝혀주는 정보들이 신선한 시야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왠지 믿음직하게도 보인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진짜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을 정도로 생활에 밀착한 문제를 다루니까 분명히 실용은 맞다. 하지만 차고 넘치는 이른바 ‘과학적 실용서’와는 달리 ‘실용적 과학서’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구조적 통찰이 있다.대니얼 레비틴의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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