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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4년 4월 12일)

4・3사건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중략)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_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9쪽.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오백 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중략) 세월이 삼십 년이니 이제 괴로운 기억을 잊고 지낼 만도 하건만 고향 어른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잊힐까 봐 제삿날마다 모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때 일을 명심해 두는 것이었다. _현기영, 『순이 삼촌』(창비, 2015), 60, 62쪽.

 

12·3 내란 

21세기의 한국 정치의 실패이자, 헌정의 실패이자, 법치의 실패이자, 정당의 실패이자, 선거의 실패이자, 교육의 실패이자, 언론의 실패이자, 사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이해해 온 방식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숙고할 때가 왔다.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_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5)

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5)

 

가능주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_나희덕, 「가능주의자」, 『가능주의자』(문학동네, 2021). 

 

간절함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푸른 불꽃이 어른거린다// 두 손과 손 사이에/ 깊은 동굴이 열리고/ 머리 위로/ 빛의 통로가 열리며/ 신의 소리가 내려온다 _신달자, 「간절함」중에서

 

거듭나기 

새로운 감각을 갖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영혼을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지 않고 새로운 것을 느끼려 한다거나, 영혼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느끼려 하는 것은 헛수고다. 사물들은 우리가 느끼는 그대로이기 때문에(이런 것을 모르고 우리는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 왔는지) 새로운 것을 느끼는 유일한 방식은 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영혼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면 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마치 우리의 몸처럼 서서히 변한다. 어떤 병에 걸리거나 그 병을 회복하면 몸에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영혼에도 이런 빠른 변화의 방식을 조율해야 한다. _페르난두 페소아, 『이명의 탄생』, 김지은 옮김(미행, 2024), 58쪽.

 

건축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건축주”(루이스 칸)이다. 건축주의 생각, 상상력과 열정, 역할에 따라 집의 운명이 결정된다. 즉, 건축주는 ‘제2의 건축가’다. _김광현, 『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뜨인돌, 2025) 

김광현, 『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뜨인돌, 2025)

 

경이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_라인홀트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김영도 옮김(필로소픽, 2014)

 

 

경청 

살아 숨 쉬는 물질로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몸이 귀로 이루어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경청의 무릎으로 다가가 낯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_나희덕, 「시인의 말」, 『시와 물질』(문학동네, 2025)

나희덕, 『시와 물질』(문학동네, 2025)

 

경험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경험으로부터, 특히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관조해 봄으로써 그 속에 들어 있는 귀중한 교훈을 습득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명상가를 조그마한 경험으로부터 그 속에 들어 있는 최대의 가치를 추출해 내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경험으로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이다. _M. 스캇 펙, 『그리고 저 너머에』, 황혜조 옮김(율리시즈, 2022), 140쪽. 

 

고독 

그저 잠시 나란히 놓여 있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굴러가는 그런 두 개의 제로가 되자. 정의할 수 없는 시공간인 이 시간과 이 장소의 끝없는 고독 속에서 모두가 혼자라고 생각한다. _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임수현 옮김(민음사, 2005).

 

고요 

부드럽고 감미로운 여름비처럼 여인은 장소의 고요에 잠겼다. 사방의 모든 것이 고요하고 그 고요가 나무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요는 나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_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세계숲』, 노승영 옮김(아를, 2025).

 

고통 

내적 고통이야말로 창조성과 새로운 도약의 원천이다. _에릭 에릭슨, 『청년 루터』, 노승영 옮김(교양인, 2025).

에릭 에릭슨, 『청년 루터』, 노승영 옮김(교양인, 2025)

 

공무원 

재능 있고 특출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공무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연방정부가 재능 있고 특출난 사람이 일하기에는 비참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저지른 공무원은 의회에 끌려가 망신을 당하고 뉴스 화면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일을 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에는 잘해보려는 동기는 사라지고 숨기려는 동기만 남았습니다. 한마디로 연방정부에는 ‘인정받는 문화’가 없습니다. _마이클 루이스, 『정부는 누구인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118154  

 

글쓰기 

글쓰기는 일종의 여행이에요. 갔다가 오는 것, 이것이 서사의 기본 구조죠. 여기 칠판을 볼까요? 주인공 A는 오른쪽의 일상에서 왼쪽의 비일상으로 갔다가 이렇게 반원을 그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가, 처음 떠났던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거예요. 여행처럼요. 하지만 정확하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죠. 그림에도 보면 이 반원의 지름만큼 다른 위치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도착 지점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마치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온 우리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요. 그러면 돌아온 A는 뭐가 될까요? B? C? 아니면 그대로 A?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되어 있을 거예요.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거죠. _문지혁, 『중급 한국어』(민음사, 2023). 

내 안에 여러 인격을 만들었다.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내  꿈들은 즉흥적이며, 꿈으로 표현되는 순간 또 다른 인간으로 구현된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 내가 아니게 된다. 창작하기 위해서 나를 부쉈다. 내면에서 나를 외재화할수록 내면의 나는 외부가 아니고선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는 텅 빈 무대다. 여러 배우들이 다양한 장면을 연기하며 지나간다. _페르난두 페소아, 『이명의 탄생』, 김지은 옮김(미행, 2024), 76쪽.

 

글쓰기_묘사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_안톤 체호프

 

기억 

정보를 ‘덩어리’로 묶어 저장하면 더 많은 정보가 유지된다. 기억력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지만 연습으로 기억력을 확장할 수 있다. 숫자 폭 검사는 제한된 시간에 기억하는 숫자가 몇 개인지를 통해 단기 기억력을 알아본다. 단기 기억은 제한적인데 대부분 성인은 약 7자리 숫자를 기억한다. 그런데 연구에 참여한 스티브 팔룬은 훈련을 통해 80자리까지 기억해 냈다. 그는 정보를 의미 있는 단위로 묶어 더 쉽게 기억하는 전략을 썼다. 앞쪽 네 자리, 뒤쪽 세 자리로 나눠 묶어서 각각 달리기 기록과 나이로 머릿속에 저장했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627831  

 

기후 위기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다.” 최근의 ‘기후 정치’를 주도하는 전문직 계급에 대해, 자신의 고학력·고소득 덕분에 누리는 소비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기 정치’로 표출할 뿐이라고 분석한다. 큰 소득을 얻지 못하는 노동자 계급은 ‘줄이기 정치’를 지지할 수 없었으며 기후 운동이 소수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가 아니라 사회 대다수인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기후위기를 사고하며 ‘다수에게 필요한 것을 늘려나가는’ 쪽으로 기후 정치를 전환해야 한다. _매슈 휴버, 『기후위기 계급전쟁』, 심태은 옮김(두번째테제, 2025).

매슈 휴버, 『기후위기 계급전쟁』, 심태은 옮김(두번째테제, 2025).

 

낙관주의 

사유하는 낙관주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이 있는지를 사유하고 그것을 실행하면서 결과를 낙관하는 자세이다. 더 나아가 사유하는 낙관주의는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마저 사유한다. 대개 우리는 사유하지 않고 자동으로, 시험에 합격하고, 돈을 벌고, 선거에 승리하고, 인기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기준을 바꾸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며, 오히려 실패일 수 있다. 경쟁이 최고로 치열한 대학 학과에 합격하여 자신의 취향이나 소질과 어울리지 않는 전공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차라리 불합격이 성공이다. 어떤 교수는 국회의원에 당선하였기 때문에 연구 분야에서 업적을 이룰 기회를 상실했다. 깊이 생각한다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유하는 낙관주의자에게는 실패마저도 성공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_엘런 랭어, 『노화를 늦추는 보고서』, 신솔잎 옮김(프론티어, 2024). 

 

낯설게 하기 

그림이라는 것, 창작이라는 건 우리가 흔히 말하듯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장소에 가서 낯설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잘 되지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 안 돼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거죠. 단, 뭘 그릴 것 인가가 아니라 뭘 빼고 뭘 덜어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하면서 그립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말이죠. 지나치게 복잡하고 꼼꼼하게 그리기보다는 많이 덜어내고 핵심만 잡아 오자, 이런 마음으로 가도 사실은 잘 안되거든요. (생략) 저는 풍경을 스케치 해오면 항상 구석에 툭 던져 놔요. 그러다가 6개월이고 1년이고 시 간이 지난 뒤에 어느 날 문득 스케치북을 넘기다 보면 갑자기 탁 오는 게 있거든요.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그때, 바로 그때 작업을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거예요. _조풍류, 『풍류, 그림』(아트레이크, 2025). 

조풍류, 『풍류, 그림』(아트레이크, 2025)

인간의 역사와 지성은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를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한데 질서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질서는 왜곡을 낳기 때문이다. 질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정연하게 단순화하고 변형한다. 대표적인 게 별자리이다. 사람들은 별자리를 보며 우주를 본다고 여기는데, 사실 별자리는 인간이 보이는 대로 선을 그어 만든 도형일 뿐이다. 대신 두 사람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논한다. 이런 생각 아래 두 사람은 각자 영역에서 노력해 왔다. 사카모토는 조율하지 않은 피아노 현을 금속 재질로 문질러 발생하는 소리를 그대로 녹음해 앨범(async·2017)을 제작했다. 물질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항상성이 유지된다는 ‘동적평형’은 후쿠오카의 자연 표현 방식을 담은 생명 철학이다. _류이치 사카모토·후쿠오카 신이치, 『음악과 생명』, 황국영 옮김(은행나무, 2025) 

 

냉소주의(cynicism) 

냉소주의는 개(kyniko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의 냉소주의 학파는 사회 규범과 제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방랑하는 개의 자세를 추종하는 태도로 묘사됐다. 반면 현대의 냉소주의는 사람이나 기관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고, 이기심, 탐욕,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회의적 태도다. 냉소주의자는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을 진심으로 돕는 것처럼 행동하나, 실제로 그것은 표를 얻으려 벌이는 술책이라고 여긴다. 혹은 친구의 친절을 진정한 선의가 아니라, 미래에 호의적 보답을 얻으려 꾸미는 작전으로 본다. 냉소주의의 뿌리엔 비관주의가 있다.

 

[배학수의 문화풍경] 비관주의와 냉소주의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

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발전 덕택에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하지만, 비관주의와 냉소주의로 채색된 문화적 풍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진보와 성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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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카르텔

산불의 원인은 산불이 돈이 되는 시스템과 그로부터 돈을 버는 산림청의 ‘녹색 카르텔’이다. 산불이 나면 그 지역에 막대한 공공 예산이 배정된다. 산림 복구를 위해서다. 이 복구 과정은 ‘벌목-임도-사방댐 설치-나무 심기-어린나무 관리’의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그 첫 단계인 벌목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무까지 다 베어버리는 것이다. 살아 있는 활엽수는 남겨 둬야 한다는 지침 따위는 지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벤 목재를 화력발전소에 판매하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수종이 공존하던 숲을 적극적으로 황폐하게 만든 뒤 인공적으로 조림하는 숲은, 송이를 채집할 순 있되 산불에는 취약한, 단일 종 소나무 숲이다. 누군가는 “소나무는 죄가 없다”고 외치는데, 그렇다, 이건 소나무의 죄가 아니다. 계획적으로 종 다양성을 줄여 재해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하는 인간의 죄다. 그뿐만 아니라 단계별 사업의 많은 부분이 경쟁 입찰이 아닌 산림청 관계자가 임의로 진행하는 수의 계약으로 진행된다. 녹색 카르텔이 재해 복구 공공 예산을 나눠 먹는 것이다. _손희정

 

불의 시간에 떠오른 물의 애니메이션 [.txt]

“부드럽고 감미로운 여름비처럼 여인은 장소의 고요에 잠겼다. 사방의 모든 것이 고요하고 그 고요가 나무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요는 나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다이애나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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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20세기 미국에선 적은 토지와 노동으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최적화’ 농업이 시작됐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수확하기에 더 쉬운 밀 품종을 개발하고, 값싸면서도 잡초와 병충해를 강력히 퇴치할 화학물질을 뿌렸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논밭에서 흘러나와 수로로 들어간 화학물질은 멕시코만에 광활한 ‘데드 존’(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합성비료론 토양의 자연적인 재생 능력을 대체하기도 어려웠다. 농부들은 고급 장비, 신품종 종자 구입 등에 드는 비용이 크게 늘어난 반면, 대량 생산된 곡물 값은 내렸다. 한때 농경으로 결속됐던 지역사회는 서서히 무너졌다. 소비자에게도 여파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합성비료와 단일재배 등으로 곡물에서 영양소가 줄어들자 따로 영양제를 사 먹게 됐다.  _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늙음

현대 생명과학의 수명 연장 연구에는 노화 세포를 조절하는 접근법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텔로미어 조작을 통한 세포 노화 억제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부분에 존재하는 반복적인 DNA 서열로, 대부분 체세포에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점차 짧아지고 결국 세포 노화와 사멸로 이어진다. 텔로미어 조작 기술은 텔로미어를 연장하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를 활성하거나 약물을 통해 텔로미어 길이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텔로미어를 잘못 연장하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둘째, 칼로리 제한 등 대사 조절을 통한 수명 연장 기술이다. 구체적으로는 NAD+ 대사, mTOR 신호 경로, AMPK 활성화 등의 연구가 생물체의 에너지 대사를 변화시켜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늘리는 연구 분야다. 셋째, 호르몬 대체 및 최적화 요법이다. 주요 대상 호르몬은 성장호르몬,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여성의 에스트로겐, 갑상샘 호르몬 등이다.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 수치가 감소하거나 불균형해지면서 근육 감소, 피로 증가, 대사 저하 같은 다양한 노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보완해 젊었을 때의 호르몬 상태를 유지해 준다. 생화학적 수명 연장의 핵심은 영생(永生)이 아닌 영존(永存)이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수명 연장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질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고령화 시대일수록 활동 능력과 인지 능력이 중요하다. _박상철·권순용·강시철, 『노화도 설계하는 시대가 온다』(매일경제신문사, 2025).

박상철·권순용·강시철, 『노화도 설계하는 시대가 온다』(매일경제신문사, 2025)

 

단군신화 

단군신화는 외부 문명에 의해 정복당한 민족의 기억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신의 권위를 끌어온 정치적 서사일 것이다. _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5) 단군신화는 외부(하늘)의 존재가 이주해 와서 정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외부에 의해 정복된 민족의 기억일 수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신의 권위를 끌어온 정치적 서사일 수도 있다. 일찌감치 한국의 정체성에는 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드리워져 있었다. 

 

독단주의 

‘새로운 독단주의’란,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잘못된 단어’를 공격하는 일에 사활을 거는 현상을 말한다. 목소리 큰 소수가 이야기 맥락에 상관없이 사소한 단어 하나에 집착해서 이를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하곤 한다. 특히, 인종이나 젠더 관련 주제 등 가치 지향적이고, 진보 의제일수록 새로운 독단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단어 하나로 깨어 있는 사람과 안 그런 사람을 구별 짓고, 후자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격렬히 비난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독단주의가 학교, 언론, 기업, 공공기관, 문화예술계 등 미국의 일상 전반에 스며들면서 침묵을 종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기에 빠뜨린다. 본래, 표현의 자유가 진보를 위한 무기이자 약자들이 특권층의 탄압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었음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자 르네 피스터는 《슈피겔》의 워싱턴 특파원이다. _르네 피스터, 『잘못된 단어』, 배명자 옮김(문예출판사, 2024) 

 

독립 출판 

독립 출판물 저자는 유독 2030 청년이 많습니다. 부산은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청년 인구 유출이 많아 ‘노인과 바다’라 불립니다. 청년들의 발길을 책으로 돌리기 위해 독립 출판물 입고 제안은 가리지 않고 다 받고 있어요. 일반 장서는 제가 읽고 좋았던 책만 입고하지만 독립 출판물은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내용을 미리 보지 않습니다. _이성갑(주책공사 대표)

독립 출판물 판매는 서점 매출의 10% 남짓밖에 안 돼요. 그렇지만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청년들에게 ‘나와 비슷한 청년이 글을 쓰는구나’라는 의미를 안기고 책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춰 소비할 기회를 주기 위해 독립 출판물 중심으로 매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서점에서 책에 대한 재미를 느낀 청년들이 10~20년 후에도 책을 계속 들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_이성갑(주책공사 대표)

 

목사 꿈 접고 연 책방… “돈벌이 아니라 책으로 사역합니다”

[11] 부산 광안리 주책공사 이처럼 자기 존재를 웅변하는 서점도 드물 것이다. 지난달 24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 민락동 골목. 베이지색 담장 한쪽엔 커다랗게 ‘책’이라는 글자가 검정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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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는 무엇보다 한 사람의 지적 체계이자 그가 그리는 세계에 대한 지형도이다. _강창래,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글항아리, 2025)

강창래,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글항아리, 2025)

 

독서와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활동이다. 그래서 빠름과 효율이 강조되는 현대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저자는 “독서는 대체 불가능한 투자”라고 말한다. ‘느림’이 문학의 본질이며, 바로 그 점이 문학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느리게 읽고 깊이 사유하는 능력은 AI 시대에도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역량이라고 강조한다. _앙투안 콩파뇽, 『문학의 쓸모』, 김병욱 옮김(뮤진트리, 2025)

앙투안 콩파뇽, 『문학의 쓸모』, 김병욱 옮김(뮤진트리, 2025)

 

두레양서조합 

두레양서조합은 1970년대 유신 말기의 금서 조치에 대항해 양질의 사회과학도서 보급을 위해 대구에서 설립됐다. 두레양서조합이 운영하던 두레서점은 경북대 후문 앞에 있었다. 1980년 5월 22일, 두레양서조합을 주축으로 한 경북대·영남대의 농촌문제연구회, 가톨릭농민회 소속 지역 사회운동가들은 광주로부터 ‘전두환의 살육 작전’ 문건과 학살 참상을 알리는 테이프를 입수했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 대구에서 학생운동권과 연계한 연대 항쟁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5월 27일, 대구 번화가인 동성로 네거리에서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 ‘대구 민주시민에게 알림’ 5,000부를 뿌리기로 했다. 그러나 계엄군이 광주를 전면 장악했다는 비보에 계획을 취소하고 유인물은 전부 불태웠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11일, 사복 경찰이 두레서점을 덮쳐 비상계엄 아래 숨죽이던 학생들을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했다. ‘인혁당 잔존 세력이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던 흉계를 꾸미던 군부는 일찌감치 두레서점을 주시하고 있었다. 100여 명이 고초를 겪었다. 이중 14명은 보름 이상 혹독한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 성고문을 당했다. 이들은 천주교 구명 운동으로 간첩단 혐의는 벗었지만, 후유증은 평생 갔다. 일부는 감옥살이를 했고, 빨갱이란 낙인이 찍혀 10년 넘게 경찰의 감시와 사찰을 당했다. “농민운동을 했던 피해 당사자는 이후 뿔뿔이 고향으로 흩어져 10년 넘게 감시당하면서 서로 만나지도 못했다. 더구나 끝까지 행동하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국가폭력의 참혹함보다 커 당시 사건을 말하지도 못했다.” 사건 발생 42년이 지난 2022년에서야 두레 사건으로 구속기소 됐던 당사자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_김상숙,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책과함께, 2025) 

김상숙,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책과함께, 2025)

 

디테일 

디테일은 디자인의 핵심이다. 작은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든다. _렘 콜하스(네덜란드 건축가, 2010년 프리츠커상 수상) 

 

만남 

즐거운 만남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이다.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서 무엇이든 말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는, 이해와 신뢰를 쌓아야 한다. _사토 아이코,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장지현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사토 아이코,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장지현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모델 

이야기나 메타포처럼 모델도 현실을 형상으로 빚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빚어진 현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고, 그대로 굳어 선택된 틀을 강화한다. _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목적 

런던정치경제대학 행동과학 교수 폴 돌런(Paul Dolan)은 적절한 목적의식이 있을 때 즐거움이 커진다고 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재미와 즐거움이 생긴다. 그러나 너무 큰 목표는 달성이 어려워 즐거움을 감소시킨다. 이를 해결하려면 큰 목적을 작은 단계로 나누고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목표 달성 후 즐거움이 잠시 줄어도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삶에서 목적과 통제감을 찾는 것이 나다운 삶의 시작점이다. _김민태 https://www.facebook.com/share/p/1GXkK3bFZw/  

 

문학 

글을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의 저자다.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 _앙투안 콩파뇽, 『문학의 쓸모』, 김병욱 옮김(뮤진트리, 2025)

‘허구의 역설’ 사례도 흥미롭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눈물 흘렸을 때를 떠올려 보자. ‘소설, 드라마에 진심으로 감동한다’ ‘줄거리가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에만 진심으로 감동한다’는 각각의 명제를 분리해 놓고 보면, 어디에나 대체로 동의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 세 명제는 서로 충돌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명제가 참이라면 첫 번째 명제는 참일 수가 없다. 이에 학자들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짓는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내놨다.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사건을 사실로 믿는다는 ‘착각 가설’, 허구가 현실에서도 재현된다는 믿음 때문에 감동한다는 ‘상상력 가설’ 등이다. _조지 G. 슈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혜경 옮김(현암사, 2025). 

조지 G. 슈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혜경 옮김(현암사, 2025).

 

미세 공격 

미세 공격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공격으로, 일상에 스며든 무례함, 미묘한 차별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위 잘나가는 주류와 그렇지 못한 비주류를 구분 짓는 것이나, “대놓고 소리 지르거나 야단치는 것보다 더 상처가 되는 은근한 배제와 편 가르기, 조직이 선호하는 표준을 정해놓고 이와 다르면 비주류나 ‘아싸’(아웃사이더) 취급하는 것 등이 직장 생활에서 마주하는 미세 공격”이다. 경력직을 차별하거나 내성적 성격의 직원을 무시하는 등 마음의 상처도 해당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직장인이 많아지면 조직에도 부정적이다. 개인의 열정이 사그라들며 기업은 집단 피로와 무기력에 빠진다. _남대희, 『미세 공격 주의보』(김영사, 2025)

남대희, 『미세 공격 주의보』(김영사, 2025)

 

미소 

뒤센 미소(Duchenne Smile)는 행복이 가득할 때 나타나는 미소를 말한다. 입꼬리와 광대뼈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생긴다.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의 연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는 전기생리학적 실험을 통해 얼굴 근육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규명했다. 팬암 미소(Pan Am Smile)는 감정을 숨기거나, 예의상 짓는 인위적인 미소를 말한다. 입은 웃지만, 눈가에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감정보다는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팬암 항공의 승무원들이 고객을 맞이하며 짓던 미소에서 유래했다. 

 

민주주의의 역설 

특정 후보자 A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가정해 보자. 이 시민들은 여러 이유에서 A를 지지하지만, 동시에 열렬한 민주주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만약 개표 결과, 상대 후보자 B가 더 많은 표를 얻는다면 딜레마가 발생한다. 후보자 A를 원하지만 후보자 B가 과반수 표를 얻었기에 내 지지와 민주주의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A가 당선되길 바라면서도, A가 당선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영국 철학자 리처드 울하임은 이처럼 민주적인 유권자들이 겪는 내적 갈등을 ‘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명명했다. 

 

반려동물 

아폴로가 자는 모습을 지켜봐요. 평온하게 옆구리 살이 오르내려요. 배가 불룩하고 따뜻한 몸은 보송보송해요. 오늘 6.5킬로미터나 산책했어요. 평소처럼 아폴로가 도로에서 일을 보려고 웅크리면 내가 지나가는 차들을 막아 주었어요. 공원에서 누군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우리 쪽으로 뛰어오자, 아폴로가 짖으면서 그와 내가 부딪치기 전에 막아 주었어요. 오늘 아폴로와 예닐곱 차례나 줄다리기를 하고, 말을 걸고 노래를 해주고 시 몇 편을 읽어 주었어요. 손톱을 다듬고 털을 일일이 빗겨 주었고요. 이제 아폴로가 자는 걸 보니 만족감이 밀려와요. 더 깊은 감정이, 독특하고 신비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감정이 이어져요. _시그리드 누네즈, 『친구』, 공경희 옮김(열린책들, 2021) 

 

방 

왜 한국에는 ‘방’의 종류가 많을까? 라는 질문에 작가는 대답합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우리끼리만’이라는 동질감의 심리적 범위가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만화방, 찜질방, 피시방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르나요? _발검무적,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파람북, 2025). 

 

 

법치 

감옥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오랜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을 설득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탈옥이 정의롭지 못한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여기에 근대 실정법주의와 유사한, 가장 오래된 법철학의 한 관점이 엿보인다. ‘탈옥은 정의롭게 이뤄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 부당한 판결 때문에 탈옥하는 것은 법률과 조국에 보복하는 것이고,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는 자신의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보복하는 것, 그로써 조국과 법률에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의 관점은 당대의 대중적 상식적 정의관에 어긋났다. 고대인에게 정의는 응보, 즉 내가 당한 화에 응당한 보복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은 중세까지 계속되어, 복수를 기사(騎士)의 권리로 인정했고, 보복의 절차로서 결투권이 보장되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변론하며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은 것이 바로 자신이며, 추방령이나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도 자신이었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부당한 법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시민들을 설득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한 아테네의 법률을 존중했을 뿐이다. 그것은 법치의 토대인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뢰의 표현이었다. 다수결과 법치는 민주정의 기본 도구지만, 민주주의를 상실한 법치와 다수결은 악법과 대중에 의한 독재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좋은 정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_플라톤, 『크리톤』 _이수은

 

소크라테스는 왜 부당한 투옥에 저항 않았나

크리톤 아테네 시민 법정에서 500인 배심원 투표로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에게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독배를 마셨다. 이 이야기는 허구고, 소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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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보수는 본래 현재를 긍정하고, 지금까지의 성취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판을 갈아엎자는 말이 오히려 보수 쪽에서 나오죠. 그건 자기 정체성을 버린 겁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어야겠죠. 그게 보수가 원래 지켜야 할 가치고 그 죽음을 통해 오히려 부활할 수도 있어요. _김영민

 

“영화 그랜토리노 속 품위있는 죽음… 한국보수, 그길로 가야 다시 살아나”

■ ‘한국이란 무엇인가’ 출간한 김영민 서울대 교수 “우린 아직 이사태를 이해못해 그러니 해결할 수도 없는 거죠” “무책임하게 처방 내놓는 사람 속된 말로 약을 팔고 있는 셈”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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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_대화재

1657년 3월 일본 에도(현 도쿄)에서 발생한 메이레키 대화재는 도시 면적의 3분의 2를 불태우며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71년 미국 시카고 대화재는 30여 시간 만에 약 2만채의 건물을 태워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았다. 1904년 볼티모어 대화재 역시 이틀간 2500여 채의 건물을 파괴했다. 2016년 5월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주민 대피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 화재는 무려 15개월 동안 이어졌다. 피해액은 100억 달러(약 14조4000억원)에 달했고, 주택 2500여 채가 불탔으며, 2590㎢의 산림이 사라졌다.

 

불_산불 

불에 타지 않는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거나, 거주지를 숲에서 멀리 떨어뜨린다거나, 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등의 재정비는 뒷전입니다. 현상 자체를 통제하려는 이상만 고집하고 있죠. 하지만 메가 파이어는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메가 파이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_조엘 자스크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계획적 불놓기’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 아래 불을 놓아 산불 발생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연료들을 미리 태워 없애는 방법이다. “2019년 호주를 황폐화시킨 대형 산불은 과도한 더위와 가뭄 때문이지만, 숲을 관리하는 법을 알던 원주민 문화가 파괴되며 ‘계획적 불놓기’가 사라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_조엘 자스크

 

“초대형 산불, 통제에 급급… 폭발하는 화산에 뚜껑 덮는 꼴”

“메가 파이어(Mega Fire)가 판을 뒤집고 있습니다. 이제 기존의 사고방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습니다.” 지난달 경북 지역 등에 발생한 산불은 4만 ha 이상을 태우는 초대형 산불을 일컫는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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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해지는 기후변화로 인해 한번 발생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지게 된다. 불이 자연환경의 국지적 재생 또는 갱신에 기여할 수 있음에도, 더 높아진 기온과 장기적인 가뭄, 그리고 인간 거주 지역 보호를 위한 산불 억제 등으로 인해 산에는 죽은 식물이나 말라붙은 덤불 같은 연료가 쌓이게 되어 언제든 대형 화재가 터질 수 있는 화약고 상태가 만들어졌다. _제임스 후퍼,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강민아 옮김(인플루엔셜, 2025), 194쪽. 

제임스 후퍼,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강민아 옮김(인플루엔셜, 2025)

 

비관주의

비관주의는 부정적 결과를 예견하거나 최악의 상황에 시선을 집중하는 경향이다. 비관주의자는 일이 잘못될 것이고, 난관은 불가피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 방식의 바닥에는 인생이란 불가피하게 힘들고, 예측 불가능하거나, 사회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직장 면접을 앞두고 비관주의자는 자신은 지방대 출신이니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고 포기한다. 비관주의는 실망과 좌절로부터 개인의 감정을 보호하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지만, 늘 불편한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에 쉽게 우울한 기분에 빠지며, 성취 동기를 줄여버리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비관주의는 스토아주의로부터 이론적 지원을 받았다. 스토아주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예상하는 비관주의적 자세를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실패에 대비하게 하면서, 부와 성공, 명예처럼 대중이 추구하는 것들의 가치를 부정하여, 그것을 얻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 그러나 스토아주의의 전략은 종종 이점보다 훨씬 더 해악이 크다. 비관주의적 자세를 취하면 세상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므로 삶이 우울하고 지루하며, 타인의 동기를 불신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_배학수

 

빚(부채) 

빚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_김지현, 「반려빚」,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 2025), 79쪽. 이 작품에서 정현은 전세 사기를 당한 연인 서일을 위해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아 빌려주지만, 서일이 헤어진 뒤 연락마저 끊으면서 빚을 떠안게 된다. 

 

사랑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미쳤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_사포 에로스라는 욕망에는 역설이 깃들어 있다. 에로스는 기쁨인 동시에 고통인 까닭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앎에 이르는 순간은 닮았다. 이는 “나를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또는 “전기가 통하는 것과도 같은 무언가”이다. 앎과 에로스는 “손을 뻗는다는 기쁨”을 준다는 점에서, 혹은 끝내 “다다르지 못하거나 모자란다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_앤 카슨, 『에로스, 달콤 씁쓸한』, 황유원 옮김(난다, 2025).

책을 펼치면 걷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걷는다. 걷고 있는 각 인물에게는 어떠한 서사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어떤 기억을 몸에 저장한 채 아침을 맞이하고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그저 걷는다. 그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거나 길을 이탈할 때, 그들이 품고 있는 서사가 조금씩 새어 나온다. 그 잠깐, 우리는 겨우, 슬픔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잊고 싶은 마음과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안고 계속 걷는다. 그들은 잠들지 않는다.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빙빙 돌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 서로 눈이 마주친다. 먼 곳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절규를 듣는다. 때로 그 비명은 내 비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뭐냐는 질문은 이 꿈(책)에서는 소용없어진다. 인과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는 강박을 포기해야 우리는 뒤엉킨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책에서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직접 쓰이는 순간이 있다. 잠들지 못하고 계속 걷던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에게 자라고 말해 줘요.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만 자요. -그럴게요. (중략) 그녀는 잠들었다. 그는 모래를 집어, 그녀의 몸 위로 뿌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모래가 움직인다. 모래가 그녀에게서 흘러내린다. 모래를 다시 집어, 뿌린다. 모래가 다시 흘러내린다. 또 집어서, 또 뿌린다. 그가 멈춘다. -사랑.”(130p) 살아내느라 지친 상대가 쉬길 바라며,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고 모래로 몸을 덮어 주는 일. 죽음 같은 순간을 지켜주는 일. 당신을 보살피며 내 걸음을 멈추는 일. 그다음 나온 ‘사랑’이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규칙적 생의 시계를 벗어나 시간의 구멍을 만드는 일이 사랑일까. 고단함을 무덤에 담는 일이 사랑일까. _마르그리트 뒤라스, 『사랑』, 장승리 옮김(난다, 2024). _홍승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걷다 [.txt]

“언니,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동생이 물었다. “음, 나는 태도로 느끼는 것 같아. 내가 나를 챙기는 일이 가장 어려우니까, 나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모습에서 사랑을 느껴. 몸과 밥과 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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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장사꾼이 예의를 갖출수록, 손님은 더 삐딱하게 나오기 마련이지요. 모든 장사꾼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욕망까지도 만족시켜 주려고 애쓰는 반면,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을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하니까요. _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임수현 옮김(민음사, 2005). 

 

서점 

일본 출판 전문가인 고지마 슌이치는 『2028 거리에서 서점이 사라진다면』(양필성 옮김, 마인드 빌딩, 2025)에서 도시에 서점이 필요한 이유로 세렌디피티를 꼽는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행운을 발견하는 기회를 의미한다. ‘작가-출판사-서점-독자’로 이어지는 책 생태계에서 독자가 책과 우연히 만나는 장소로써 서점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일본 서점도 위기이다. 주력 상품인 만화와 잡지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서점 수도 2000년대 초반 2만 개에서 2022년 1만1,495개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존폐의 위협을 느낀 일본 서점들은 각고의 노력 중이다. 이날 포럼에선 은은한 조명, 좌석 배치, 배경 음악으로 사람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거나 추천 책을 딱 한 권만 진열하는 등 책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일본 서점들의 다양한 전략이 거론됐다. 책엔 더 과감한 사례들이 나온다. 미용실, 빵집, 코인 세탁소를 함께 운영하는 서점, 휴대전화 판매점을 내부에 유치한 서점, 맞선을 주선하는 서점도 등장한다. 기다림의 시간에 책을 들춰보다가, 누군가 읽고 있는 책 표지를 흘깃하다가 책과 만나기를 의도한 것이다. _송옥진

 

책과 '자만추' 해보셨나요... 오프라인 서점 여는 '예스24' [활자예찬]

편집자주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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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체

세비체는 해산물을 라임즙에 절여 먹는 음식으로,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물회와 비슷하다. 세비체의 기원에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고대 잉카 시대 해산물을 과일이나 허브로 보존하던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 스페인 무어인들의 초절임 요리인 에스카베체가 페루식으로 현지화됐다는 견해도 있다. 세비체에는 다량의 라임이 들어가는데 레몬과 라임 같은 감귤류 작물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 현대적 의미의 세비체는 식민지 이후에 본격적으로 탄생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세비체는 주로 농어나 도미, 틸라피아 같은 흰살생선을 주로 사용하며 라임과 레몬즙을 기본으로 절임액을 만든다.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 정도 생선을 절인 후 양파, 고추, 고수를 넣고 고구마나 옥수수를 곁들여 먹는다. 멕시코에는 세비체와 물회의 중간 정도 되는 아구아칠레가 있다. 아구아칠레는 멕시코 북서부 시날로아의 해안가에서 탄생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물(아구아)과 고추(칠레)란 이름처럼 고추를 갈아 만든 액체에 라임을 넣어 만드는데 세비체가 절임액에 가깝다면 아구아칠레는 물회의 양념장에 더 가까운 방식이다. 아구아칠레의 주인공은 새우다. 생새우를 손질해 양념장에 살짝 담근다. 세비체처럼 주재료를 오래 절이지 않고 섞은 후 바로 먹는 게 두 요리 간의 차이다. 여기에 양파와 오이, 아보카도, 고수 등을 넣어 먹는 게 일반적인데 세비체보다 산미와 매운맛이 훨씬 강하게 다가오는 게 아구아칠레의 특징이다. 물회는 잘게 썰어 낸 회를 새콤 매콤한 초고추장을 푼 물에 각종 채소와 함께 시원하게 먹는 음식이다. 동해안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물회도 시간을 거쳐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초고추장에 물을 넣어 만든 가장 단순한 형태부터 각종 과일을 갈아 단맛을 더한 물회, 생선뿐만 아니라 멍게, 해삼, 개불, 낙지, 오징어 등 한국의 다양한 해산물을 넣어 푸짐하게 담아낸 물회까지 나름의 변주와 재해석을 통해 한국의 별미로 자리 잡았다. 필리핀에는 키닐라우가 있다. 날생선을 칼라만시나 코코넛식초에 절여 만든다. 태국의 꿍채남쁠라는 생새우를 피시소스인 남쁠라, 라임, 다진 고추,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장에 담가 먹는 요리다. _장준우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남미식 물회? 입맛 돋우는 세비체와 아구아칠레

음식을 탐구하다 보면 종종 흥미로운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음식이 등장하는 경우가 그렇다. 기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상상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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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손님을 조심하세요. 그는 뭔가를 찾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걸 원하고 있답니다. 장사꾼은 짐작도 못 하는 그것을 그는 결국 얻어내고 말지요. _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임수현 옮김(민음사, 2005).

 

수정궁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은 당시 영국의 계층갈등을 봉합했다. “모두를 압도한 공간이 새로운 사회 계층인 ‘소비자’를 탄생시켰다.” _유현준, 『공간 인간』(을유문화사, 2025) 

 

숙달 

어떤 분야에서든 숙달의 경지에 이르는 요령을 한번 터득하면 낯선 일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다. _사이토 다카시, 『일류의 조건』, 정현 옮김(필름, 2024). 

 

스캣(scat) 

스캣은 가창력 뛰어난 가수들이 간혹 악기 소리를 흉내 내는 듯 흥얼대는 소리를 말한다. 그 기원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남무성은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하던 중 트럼펫을 떨어뜨려 잠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입으로 악기 소리를 흉내내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밝힌다. 이후에는 그것이 하나의 기법으로 자리를 잡아 재즈 가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었다. _남무성, 『재즈 잇 업』(서해문집, 2018) 

 

스트레스 

인간의 몸은 적의 공격 등 목숨이 위협 받는 위기 상황을 당하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속히 분비되고 활성화하도록 진화했다. 이 호르몬이 쏟아지면 심장 박동과 호흡이 증가해 적과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필수적인 근육 작동에 필요한 산소와 지방·당분 등의 에너지를 빠르게 운반하게 해준다.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와 위기대응 시스템은 절체절명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짧은 시간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오랫동안 과도하게 분비되면 사달이 난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가 사회적으로 일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별, 빈곤, 과중하고 장기간에 걸친 노동과 가사 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의 몸에는 이런 호르몬이 만성적으로 과다 분비된다. 그 결과, 고혈압과 심혈관질환으로 쉽게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다분비는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산모가 태아에게 쓸 영양분을 다른 곳에 쓰도록 함으로써 저체중아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외계층은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받는 반면, 중산층·상류층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스트레스를 비교적 쉽게 해소할 수 있다. 계층별 건강 격차의 원인이다. _알린 제로니머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방진이 옮김(돌베개, 2025) 

알린 제로니머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방진이 옮김(돌베개, 2025)

 

 

시는 수익성이 가장 높은 예술이지만, 수익은 늦게 온다. _샤를 보들레르 

시인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그려냄으로써 눈에 보이도록 만들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게 시의 역할인 것 같아요. _나희덕

 

나희덕 시인 "보이지 않는 존재 그려내는 게 시의 역할이죠"

시위현장 담은 '광장의 재발견'…"교정 마친 시집 '시와 물질'에 추가" "시인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그려냄으로써 눈에 보이도록 만들고,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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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친구』의 화자는 친한 친구의 자살을 슬퍼하는 작가다. 소설은 그가 친구가 키우던 대형 개(그레이트데인) 아폴로를 물려받으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다. 아폴로 역시 주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다. 나오미 왓츠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에서 아폴로는 화자를 떠난 친구와 촉각적으로 연결하는 존재이자, 슬픔의 광대하고 다루기 힘든 본질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애도하는 거대한 개보다 번거롭고 압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 좋은 상징은 드물다. 그러나 와츠가 아파트의 절반을 차지하는 150파운드 동물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상실에 대한 이 이야기가 더 큰 메시지를 품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인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황량하고 예민한 동물에게 베푸는 친절함으로 우리 감정을 돌본다면 더 나은 삶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_주마나 카팁(《뉴욕타임스북리뷰》 편집자 레터 중에서

 

어린이 

남산 공원에서 어린이 놀이터를 내려다볼 때마다 나는 조국의 해방, 조국의 독립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재확인한다. 거기서 노는 어린이들의 활발하고 싱싱한 모습…, 오늘 절망에 허덕이는 이, 굶주린 이가 있다더래도 조국의 독립만은 거짓이 아니오, 내 나라의 어린이들이 이렇게 기운차게 무럭무럭 자라 가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_김소운 「부러진 목마(木馬)」, 『물 한 그릇의 행복』(1968)

 

언어 

언어는 발화자가 어떻게 말하든 그 내용은 결국 발화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거기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다. 궁극적으로는 발화자 자신을 위한 것이니 중간태는 중언부언인 셈이다. (중략) 발화자가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든 중간태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소통의 도구 안에 소통을 가로막는 칼을 놓아두는 셈이다. _강창래,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글항아리, 2025), 146~147쪽

우리가 가진 언어의 빈곤은 곧 사유의 빈곤으로 이어져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도구로서 언어가 망가져 있다면, 그 사회는 스스로를 제대로 진단할 수도 없죠. _김영민

 

얼굴

얼굴은 “인간 진화의 핵심 요소이며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발전하게 만든 주요한 진화적 도구”이다. 얼굴은 감정 표현과 소통 수단으로 작용하며 인간 사회의 형성과 협력, 문화의 진화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얼굴과 뇌가 함께 발달한 ‘공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더욱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은 감정, 의도, 신호의 발신기이자 수신기”이다. _애덤 윌킨스, 『인간 얼굴』, 김수민 옮김(을유문화사, 2025).

애덤 윌킨스, 『인간 얼굴』, 김수민 옮김(을유문화사, 2025)

 

역사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불의를 경험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불의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_이창훈, 『다시, 봄은 왔으나』(삼인, 2025)

이창훈, 『다시, 봄은 왔으나』(삼인, 2025)

 

예술 

예술 끔찍한 것이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아름다움이 되고, 고뇌가 박자와 운율을 얻어 정신을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예술이 가진 엄청난 특권 가운데 하나이다. _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김용민 옮김(두산잡지BU, 1992). 우리 내면의 정서인 끔찍함과 고뇌가 미학적인 예술로 전환되는 순간의 경이를 포착 

“존경할 만한 인간들로는 세 부류만이 존재한다. 사제와 전사와 시인. 아는 것과 죽이는 것과 창조하는 것.” 살아가면서 누구나 사제, 전사, 시인이 될 순 없다. 그러나 역시 살아가면서 모든 이가 어떤 의미에선 사제, 전사, 시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구원을 염원하고, 누구나 세상과 쟁투하며, 누구나 생활 속에서 자기만의 꽃 한 송이를 틔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대가 없이 치를 수 없다. 보들레르는 간파해 낸다. “예술은, 그것이 추구하는 희귀한 목표에 걸맞은 희생을 따랐을 때에만 가장 강력한 효과를 얻는다.” _김유태

보들레르에 따르면 행동과 의도, 꿈과 현실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인간은 스스로 이중적이면서 이중적인 세상을 살아간다. 예술가는 자아와 세계의 이중성을 포착하는 대리자가 되려 할 때 도약한다. _김유태

 

[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세상에 존경할 만한 인간이라곤 사제, 전사, 시인뿐이다"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의 결기 가득한 예술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의 99.9%는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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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우울은 아름다움의 빛나는 반려자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기쁨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저속한 장식물 중의 하나이다. _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김용민 옮김(두산잡지BU, 1992).

 

웨더링(weathering, 침식·마모) 

웨더링은 불평등한 사회가 인간의 몸을 갉아먹고 소진시키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 보건학자 알린 제로니머스(미시간대 교수)가 발견한 현상이다. 원래 바위가 바람과 비에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걸 뜻한다. 제로니머스에 따르면, 인종, 계급, 성별 등에 따른 구조적 차별, 편견, 배제는 당하는 사람들에게 반복적 스트레스를 준다. 가령, 차별적 사회에서  흑인 노동 계급 남성은 원하지 않아도 매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흑인은 위협적이거나 충동적이고, 마약·범죄 등을 일삼는다는 인종차별적 선입견에 맞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까닭이다. 동시에 그는 가난한 노동계급으로 가족을 부양하려고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한다. 이런 문화적·사회적 압박감에 따른 스트레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체 구석구석에 쌓여, 서서히 그의 몸과 마음을 침식한다. 노화를 가속하고, 비만·고혈압·당뇨·심장비대 등 만성질환을 불러오며, 더 심해지면 장애나 돌연사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더 쉽게 병들고, 더 빨리 죽는다는 점이다. 가난해서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데, 열심히 살아갈수록 빨리 쇠약해지는 삶은 이들을 진퇴양난으로 몰아넣는다. 제로니머스는 말한다. “타자화되고 폄하 당한 집단의 구성원이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강력한 역풍에 맞서 성공해야만 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웨더링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웨더링은 흑인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나타난다. 백인의 경우, 20대 엄마의 아기가 10대 엄마의 아기보다 건강하다. 그러나 흑인의 경우엔 10대 엄마의 아기가 20대 엄마의 아기보다, 20대 엄마의 아기가 30대 엄마의 아이보다 건강했다. 산모 나이가 많아질수록 영아의 사망 위험도 커졌다. “웨더링은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차별에 의해 공격당하는 소외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생리학적 작용을 포괄하는 과정이다. 웨더링은 한 인간이 인종차별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사회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노화하는 동안 세포 단위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괴롭힌다.” 특히, ‘에이지워싱’(age-washing·건강 훼손을 구조적 차별이 아닌 각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고방식을 개념화한 제로니머스의 용어)의 메시지가 팽배한 사회, 즉 개인의 교육과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기대수명도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회일수록 성실한 사람들이 건강을 더 빨리 빼앗겼다. _알린 제로니머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방진이 옮김(돌베개, 2025) 

 

의미 

네가 의미와 이유를 찾으면 모든 돌은 중요한 돌이 돼. 그중에 가장 중요한 돌은 아마도 너의 손에 꼭 맞는 딱 좋은 돌일 거야. 그 돌은 어딘가에서 네가 찾아 주길 기다리고 있지. _메리 린 레이, 『딱 맞는 돌을 찾으면』, 김세실 옮김(피카주니어, 2025)

메리 린 레이, 『딱 맞는 돌을 찾으면』, 김세실 옮김(피카주니어, 2025)

 

이야기 

『빨강의 자서전』에서 헤라클레스는 속내를 알 수 없고, 매혹적이지만 바람기 많으며, 도망치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반면, 게리온은 내성적이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간다. 인물을 새로이 수식하고 묘사함으로써, 앤 카슨은 둘의 운명을 구출한다. 헤라클레스에게서는 영웅이라는 짐을 덜어주고, 게리온에게는 깊은 내면을 선물한다. 그것은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아닐까.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구출하는 것, 존재의 걸쇠를 푸는 것. 이로써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의 연애와 사랑이 시작되고, 원전 신화에서는 꿈꾸기 어려웠던 퀴어 서사가 가능해진다. _문보영

 

문보영의 ‘지금, 이 문장’ [.txt]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문법 요소인 형용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빨간 사과’, ‘노란 바나나’, ‘예쁜 여자아이’ 같은 표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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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AI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AI는 혼자만의 정신이 아니라 공동지능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인간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AI를 업무에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켄타우로스’와 ‘사이보그’를 소개한다. 켄타우로스는 내가 할 일과 AI가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분업 시스템을, 사이보그는 AI와 한 몸이 된 듯 업무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뜻한다. _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신동숙 옮김(상상스퀘어, 2025).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디지털과 AI 기술이 기후위기 해법이라고 줄곧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AI가 2030년까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5~10%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 기후재난에 대비하고 회복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보고서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과장된 거짓말이다. 인공지능은 실제로 ‘전기 먹는 하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급팽창하는 데이터센터는 규모가 클 경우 100MW 이상의 전력 용량을 요구한다. 이를 위한 연간 전력 소비량은 전기자동차 약 35만~40만대에 필요한 전력과 맞먹는다. 아일랜드에서는 외국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유치한 데이터센터가 2024년 기준 전체 전력 소비량의 20%를 차지하고, 2026년엔 32%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2023년 말 기준, 153개 데이터센터가 1기가와트급 대형 발전소 2기 이상의 발전 용량을 잡아먹고 있다.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 수요는 700개가 넘는데, 이로 인해 전력 소비는 급증할 전망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배출되는 전자 쓰레기 규모는 네덜란드에서 발생하는 모든 핸드폰 및 컴퓨터 쓰레기양과 맞먹는다.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은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를 악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_김만권, 『AI와 기후의 미래』(착한책가게, 2025). 

김만권, 『AI와 기후의 미래』(착한책가게, 2025).

 

인내

빛을 내려면 타오르는 것을 견뎌야 한다. _빅터 프랭클

 

인센스 로드(향기의 길) 

신약성서에서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친다. 황금은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영적 특별함을 상징하며, 몰약은 죽음을 상징한다. 유향의 원료는 나무줄기에서 물방울 형태 덩어리로 배출되는 유향나무의 수지(樹脂·나뭇진)다. 유향 수지는 열을 받으면, 흙냄새 나는 달콤한 향(감귤향 비슷한)을 다량으로 방출한다. 그러므로 유향은 ‘훈향(燻香·incense)’ 형태로, 즉 유향 수지를 연기 날 정도로 불에 그을려서 이용한다. 인류의 오래전부터 유향을 이용해 왔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향을 사랑해 왔다. 그런데 유향나무는 아라비아반도 남단의 해안지대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척박한 지역에서 자란다. 여기서 캐낸 유향은 이집트·아라비아 반도·지중해에 걸친 ‘인센스 로드’를 따라 사고 팔렸다. 기원전 1500~1200년, 낙타의 가축화가 이루어지면서 유향의 교역은 더 성장했다. 기원전 1000년경, 유향은 바빌론, 이집트, 로마, 그리스, 중국 등에 알려졌다. 인센스 로드를 통한 유향의 이동은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 정점에 달했다. 한마디로, 유향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교역품 중 하나였다. ‘신드바드의 모험’의 주인공 신드바드 역시 아라비아반도 주위를 항해하며 유향을 거래하던 상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_엘리스 버넌 펄스턴, 『향기』, 김정은 옮김(열린책들, 2025)

엘리스 버넌 펄스턴, 『향기』, 김정은 옮김(열린책들, 2025)

 

인종/인종화 

인종은 “권력자들이 피부색(또는 종교, 계급, 민족, 젠더, 성적 지향 내지는 성적 정체성)에 임의적인 구분선을 긋고 자신들이 보기에 ‘틀린’ 쪽에 서 있는 일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발명품”이다. 인종화는 “지배문화가 그 사회의 집단들을 자원, 명예, 권력을 누릴 자격 내지 권리가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 경멸·처벌·박탈·낙인·탄압·착취를 받아 마땅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는 강력한 수단”이다. _알린 제로니머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방진이 옮김(돌베개, 2025) 

 

일상 

일상이란 누구나 쥐고 있기에 풍요롭다. 동시에 일상은 간단히 무너지기에 너무나 허약하다. 일상의 풍요에 집착하는 문학은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외적 폭력에 의해 일상이 무너진 후에야 그 진정한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다. 

 

자궁절제술 

오늘날의 과잉 자궁절제술은 과거의 마녀사냥 및 형벌적 난소‧자궁절제술과 궤를 같이 한다. 권력을 독점한 남성이 여성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폭력을 종용하며,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다. 자궁절제술 수술 빈도는 국가에 따라, 또는 같은 국가에서도 소득, 학력, 직업,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 등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건강보험 보장범위가 가장 넓은 계층과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에서 수술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이런 편향은 자궁절제술이 객관적, 의료적 판단에 따라 시행되기보다 주관적으로, 즉 의사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2009년 기준,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자궁절제술 시행률 1위를 기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궁절제수술 환자가 51.8만 명으로 2009년(10.4만 명) 대비 5배 증가했다. 복지 및 소득 증진으로 인한 수술률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치다. 자궁절제술 당사자들은 수술 부작용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사회적 선입견과 주변의 시선 탓에 고통당한다. “여성이 자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듯한” 사회적 시선은 부당하게 자궁을 잃은 많은 이들을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여성성이 하나의 장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듯, 자궁의 부재가 여성성의 부재를 상징하진 않는다. 대지가 농사를 위한 공간이 아니듯, 여성도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재생하고, 관계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빈 땅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땅 위에서 춤을 추고, 어떤 이는 빈 땅에 누워 쉬기도 한다. 그 모든 일들은 누가 뭐래도 대지 위에서 일어나며 분명히 어떠한 종류의 ‘생산’을 하고 있다. 생산하지 않는 빈 땅도 마땅히 존재 의미가 있듯, 다양한 여성이 가진 모든 현현이 곧 여성성일 것이다. _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외, 『세 번째 전장, 자궁절제술』, 박지순 옮김(갈무리, 2024). 

 

재즈 

재즈를 흔히 흑인음악이라고 여기지만 아프리카 음악의 복잡한 리듬과 유럽 음악이 오랜 시간 교류하며 문화가 융합된 장르입니다. 어느 한 민족의 음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섞인 결과물, 용광로 같아요. 재즈는 지금도 변화하고 진화하는 음악입니다. _김유경, 『나의 첫 재즈 수업』(미다스북스, 2025). 

김유경, 『나의 첫 재즈 수업』(미다스북스, 2025)

 

전체주의 

유대인 문제와 반유대주의와 같은 (세계 정치에서 별로 중요치 않은) 사소한 현상이 처음에는 나치 운동의, 그다음에는 세계대전의 촉매제가 되었다가 결국 죽음의 공장을 건설하는 데 촉매제가 될 수 있었다는 가공할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한다. _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한길사, 2006), 35쪽. 

 

정체성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에서 정체성에 대한 깊은 혼란을 겪는다. _에릭 에릭슨

 

정치적 낭만주의 

슐레겔은 프랑스 혁명, 피히테의 『지식학』,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이 세 가지가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향을 보여 주며, 프랑스 혁명은 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의 정치적 의미는, 경찰국가가 제공하는 평화 속에서 [혁명과 같은 급박한] 사건들에 대해 느긋한 공감을 표시하던 독일 시민들[의 태도], 즉 프랑스에서 난폭한 방식으로 현실화한 추상 이념들을 다시금 [아름다운] 이상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 태도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자의 눈에 비친 불꽃이다. 슐레겔은 자신의 열광 또한 쉽게 초극해서 진정한 혁명은 아시아에서나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혁명은 그저 운 좋게 얻어걸린 시험 연습일 뿐이란 것이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자들의 혁명은 새로운 종교, 새로운 복음, 새로운 천재성, 새로운 보편 예술을 약속했다. 평범한 현실 속에서 이 혁명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낸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그건 공론화(forum externum)할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수행한 [혁명적] 실천이란 [고작해야] 잡지 간행이었다. 베를린 은행가의 딸들이 소유한 살롱에서 몇몇 부르주아 문필가들이 벌인 소동, 즉 살롱 주인과 친구들 간의 급작스러운 결혼, 괴테와 쉴러에 대한 선전 포고, 니콜라이의 분쇄Zerschmetterung, 코체부 살해 등 사회적 추문은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 [시답잖은] 몇 가지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을] 두루 여행한 마담 드 스탈은 언젠가 독일에서는 더없이 대담한 혁명적 사상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물론 그녀는 이유를 알았다. 아무도 그런 것을 심각한 문제롤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계층, 즉 귀족과 고위 관료들이 [확고하게] 우월한 위치에 있었기에 문학을 애호하는 귀부인들의 후원 아래 [살롱에서] 강연을 하며 귀족 사회가 던져주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문필가들 따위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 문필가들은 우아한 귀족 문화에 들락거리며 거기에 동화되려 애쓰는 자들, 그게 아니면 적어도 그 문화를 배워내 도시성의 철학 같은 것을 정립하려는 자들이었다. _칼 슈미트, 『정치적 낭만주의』, 조효원 옮김(에디투스, 2020), 62~63쪽.

 

중년 

끝없이 사라지는 젊음을 지켜보려 버둥거리는 것보다 중년에 맞는 정서를 함양하는 게 현명하다. _윤혜준, 『인생길 중간에 거니는 시의 숲』(교유서가, 2025). 

윤혜준, 『인생길 중간에 거니는 시의 숲』(교유서가, 2025)

 

직관 

직관이란, 무의식적 정보를 학습하고 이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더 나은 결정이나 행동을 끌어내는 능력이다. 직관(intuition)은 라틴어 안쪽(in)을 바로 본다(tueri)에서 유래한 말로, 영어엔 머리가 아닌 장에서 먼저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로 ‘gut feeling’이라는 표현도 있다. 직관의 규칙엔 자기인식, 숙달도, 충동과 중독, 낮은 확률, 환경 등이 있다. 자기인식이란, 감정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흥분, 두려움과 같은 감정에 따른 판단은 직관이 아니다. 먼저 차분히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그때 오는 직관의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다음 규칙이 숙달이다. 체스 마스터들은 설명하지 않고 실행하고, 복잡한 한판의 경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복기할 수 있다. 숙달된 것들은 직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전문적인 내 분야는 숙달된 것이니 직관이 잘 작동할 수 있으나, 다른 영역에도 직관적일 수 있다고 자만해선 안 된다. 술이나 단것처럼 도파민 보상을 주는 것에 대한 갈망을 직관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익숙한 환경이나 경험적 맥락의 친숙함이 직관적 판단에 영향을 준다. 환경이 바뀌면 재학습이 필요할 수 있다. _조엘 피어슨, 『더 좋은 결정을 위한 뇌과학』, 문희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 2025) 

조엘 피어슨, 『더 좋은 결정을 위한 뇌과학』, 문희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 2025)


질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익숙했던 언어와 관습, 사고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해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연다.” 그것이 언어를 다듬는 일이고, 정치사상을 다시 쓰는 이유다. 숙고 없는 조급함 대신, 새로운 언어와 개념을 통해 지금 이 혼란을 제대로 응시하자는 제안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에 도달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_김영민

 

“영화 그랜토리노 속 품위있는 죽음… 한국보수, 그길로 가야 다시 살아나”

■ ‘한국이란 무엇인가’ 출간한 김영민 서울대 교수 “우린 아직 이사태를 이해못해 그러니 해결할 수도 없는 거죠” “무책임하게 처방 내놓는 사람 속된 말로 약을 팔고 있는 셈”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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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_안노 다다오

 

철학 

철학 사유를 한다는 것은 단지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용어 하나를 고안해 대상을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통해 현재 존재하는 철학의 장을 다시 구성하고, 과거의 철학사를 자기 시각에서 재배치하는 이중의 작업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개념은 철학적 공간을 새로이 창조하는 원리이자, 사유의 판도를 전환하는 힘이다. 공시적 차원에서 철학자는 동시대의 다양한 철학 사조와 개념들을 자신의 철학 체계 안에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이론적 지형도를 그린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배열이 아니라, 각 철학자의 위치를 조정하고 어떤 사유를 중심에 두고 어떤 사유를 주변화할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다. 니체가 칸트를 단순히 넘어서기보다는 그를 새롭게 읽고 배치한 것처럼, 철학자는 기존의 철학들을 단지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위계를 재편함으로써 자기 사유의 공간을 확보한다. 통시적으로 보자면, 철학은 과거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환해 현재의 문제틀 안에서 다시 배치하는 기억의 실천이다. 철학사는 단순한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철학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텍스트다. 하이데거가 서양 형이상학을 ‘존재 망각의 역사’로 재구성했듯이, 들뢰즈가 니체와 스피노자를 ‘차이의 철학자’로 재배치했듯이, 철학자는 과거의 사유를 현재적 관점에서 다시 의미화하고 체계화한다. 철학 사유는 이처럼 공시적 재배치와 통시적 재구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동하며, 이 지점에서 철학은 단순한 분석이나 비평이 아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창조적 행위가 된다. _강민혁 (페이스북)

 

초국적 기업 

오늘날 다국적 거대 기업들은 막강한 권력을 통해 한 국가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새로운 제국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자국을 떠나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자원을 배분하고, 영토를 다스리며, 사법제도와 사람들 안전까지 좌우한다. 이들이 주로 쓰는 무기는 소송이다. 초국적 기업들은 국제 사법 제도를 활용해 각국 정부를 상대로 수십억 달러 규모로 소송을 제기하고, 저개발국 원조라는 비즈니스를 디딤돌 삼아 이익을 극대화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의 경제특구는 3500개가 넘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66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경제특구에서 세금과 각종 규제를 면제받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노동권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다. 더 나아거 이들은 민간 보안 조직을 만들어 국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가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원부국으로, 초국적 기업들은 광산 개발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위기를 맞았다. 기존 채굴권을 전부 취소해 광산을 계속 운영하려면 기업이 채굴권을 재신청하도록 법을 바꾸고, 광산 회사 지분의 26% 이상을 흑인이 보유토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초국적 광산 기업들은 남아공의 ‘신법’을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6년 남아공 정부가 3억 5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며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투자자들은 얼마 후 소송을 취하했다. 소송 취하 조건으로 광산 지분의 5%만 흑인에게 넘겨도 된다는 이면 계약을 남아공 정부와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국적 기업체들은 국제사법제도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며 저개발국을 겁박한다. 실제 ISDS 소송은 늘어나는 추세다. ICSID는 2014년까지 소송 500여 건을 처리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1990년대에 제기한 것이었다. 2021년 말 기준으로는 ICSID가 맡은 소송 건수는 900여 건으로 늘었다. 2021년 한 해 동안엔 평균 매주 한 건 이상 소송을 처리했다. 초국적 기업들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 “20세기 들어 유럽의 제국들이 무너지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이어 일어난 것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소리 없는 쿠데타였다. 전 세계에서 기업의 권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프라가 세워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리 없는 쿠데타에 맞서려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각종 제도와 전략을 해체하고, 수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 _클레어 프로보스트·매트 켄나드, 『소리 없는 쿠데타』, 윤종은 옮김(소소의책, 2025) 

클레어 프로보스트·매트 켄나드, 『소리 없는 쿠데타』, 윤종은 옮김(소소의책, 2025)

 


최선 

당신은 이 세상에서 즐거운 기분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당신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할 승산이 없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_M. 스캇 펙, 『그리고 저 너머에』, 황혜조 옮김(율리시즈, 2022), 281쪽. 

삶이라는 것은 기가 막히게 손익 계산을 잘해서, 이익을 극대화했을 때보다, 손익은 둘째치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진수를 맛보게 되는 것 같다. 그로부터 얻는 보람과 삶에 대한 확신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_정지우 https://www.facebook.com/share/p/15h3N7eZEe/ 

 

최적화(optimization) 

최적화는 본래 수학에서 쓰는 개념으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약조건을 고려하면서 변수들을 조절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이 개념은 물류, 광고, 자동차 생산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으로 확대됐다. 현재는 ‘한정된 자원과 상황 속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행위’로 경제학, 공학, IT업계에서 흔히 쓰인다. 미국은 최적화 이데올로기의 선구자다. 최적화 구호인 “더 많이, 더 좋게, 더 빨리”가 비즈니스 영역을 넘어서 개인의 일상까지 파고들었다. 제품은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하고, 사람은 더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며, 관계조차 ‘잘 맞는 사람’을 매칭해 주는 앱에 맡겨버린다. 이처럼 세상을 더 잘게 쪼개고,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하는 최적화 세계에선 물질도, 정보도, 심지어 감정조차도 데이터로 환원된다. 예컨대, 미국의 신발회사 자포스에선 상담원의 ‘감정적 유대감’까지 점수로 환산해 보상한다. 고객이 감탄한 순간을 수치화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것이다. 데이팅 앱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 앱은 이상적 배우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72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그 기준에 따라 ‘짝 찾기’를 자동화한다. 그러나 최적화에 모든 것을 맡긴 대가로 인류는 ‘지식’을 잃어버린다. 가령, 오늘날 미국 농업은 세계무역의 알고리즘에 따라 작물을 경작한다. 수확하기 쉬운 품종을 만들고 경작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인간은 땅에서 밀려났다. 그 탓에 이젠 농사 짓는 방법이나 그 원리를 아는 이들은 현장에 거의 남지 않았다. 농업 생산 과정이 고도로 ‘추상화’되어 아무도 알 수 없세 된 것이다.  2021년 미국 텍사스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이 추상화의 끝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설계된 전력망은 분명히 효율적이었으나, 막상 텍사스 주의 절반 이상에서 전기가 끊겼을 때 아무도 그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너무 잘 짜인 시스템은 결국 인간이 다룰 수 없는 괴물이 된다. 애초에  최적화는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시작됐으나, 실제로 그 목표를 거의 이루지 못했다. 공장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여가를 늘릴 방법이라고 홍보됐다. 하지만 정작 부의 분배는 더 불평등해졌다. 온라인 검색 알고리즘의 발전은 최적화를 통해 덜 알려진 아이디어와 상품을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유명한 상품과 콘텐츠만 강력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_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최적화는 세상의 모든 걸 숫자로 바꾼다. 그러나 사회가 효율성에 집착할수록 우울증 발병률은 높아졌고,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이 커졌다. 기후 재앙·공급망 붕괴 등 최적화 모델이 놓친 문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_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최근 20년 새 수학적 연산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효율성과 수익성의 탈을 쓴 최적화 모델이 고도화, 대형화하면서 일상과 더 큰 괴리를 낳았다. 효율화 모델로 생산성은 높였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에서 충격을 완화해 줄 여분의 자원, 지역 공동체마다 고유하게 품고 있던 ‘장소적 감각’ 등을 잃어버렸다. “최적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준 게 아니라 가짜 과잉을 주입했다. (중략) 우리가 통제 고삐를 늦춘다면 약간의 여유와 장소를, 혹은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에 들어맞고 보탬이 되는 다양한 개인들’을 되찾을 수 있다.” _코코 크럼, 『최적화라는 환상』,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2025). 

 

춤_탱고

두 사람이 추는 춤이지만 하나의 심장인 것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공유하는 춤이에요. 상대방이 온 힘을 다해서 나한테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춤이에요. 자기가 추고 싶은 대로 추면 탱고가 완성될 수 없어요. 탱고는 함께 걷는 춤인 만큼 공감이자 환대, 포용이면서 포옹인 셈이죠. _보배,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멜라이트, 202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899131 

 

키치

키치란 무엇인가. 소비사회에서 각광받는 감상적인 통속물이 아니다. 밀란 쿤데라가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화가 사비나의 입을 빌려 비판했던 키치다. ‘아름다운 거짓’ 혹은 ‘거짓 태도’로 치부되는 키치의 반대편에 삶과 역사의 진실에 충실한 태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이 있다. 이야기와 작품에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삶과 역사는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그래서 실제의 연애 사건은 어중간하게 끝나기 십상이다. 쿤데라의 또 다른 대표작 『농담』은, 루드빅과 루치에의 사랑이 흐지부지해져 버리기 때문에 리얼리티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런 소설을 읽는 일이 독자에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반성의 계기가 되는 건 아닐까. _유종호, 『고전과 키치의 거부』(서정시학, 2025)

유종호, 『고전과 키치의 거부』(서정시학, 2025)

 

타이완 

[대만은] 여러 세대에 걸친 조상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동서양 문화와 무역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만의 자손으로서 저는 대만을 번영하고 부유한 ‘하늘이 보우하는 섬’으로 만든 선천적 장점과 후천적 노력의 결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첨단 칩, 서버, 노트북의 80% 이상이 대만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원 공급 장치, 커넥터, 인쇄 회로 기판, 전자 회로 등 IT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만 기업인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_콜리 황, 『TSMC와 트럼프 이펙트』, 이철 옮김(경이로움, 2025), 212쪽. 

콜리 황, 『TSMC와 트럼프 이펙트』, 이철 옮김(경이로움, 2025)

 

탈주택 

탈주택(脱住宅)은 ‘1가구 1주택 시스템을 대신하는 새로운 주거 형식의 제안’이다. “현재의 1가구 1주택이라는 주택의 형식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고 얼마나 특수한 주택인가 하는 점이다. 이 주택은 20세기가 되어 발명된, 20세기라는 시대에 어울리는 주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이 특수한 형식의 주택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란, 예를 들면 주택을 제안하는 건축가다. 그리고 행정이며 시행사다. 그리고 주택에 사는 주민이다. 나아가 이 특수한 주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의 사회라는 공간을 그대로 승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적 맥락과 철학이 뒷받침한다. ‘1가구 1주택’이란 “임금노동자를 위한 전용주택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특별하게 설계된 주택이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주택이기에 그때까지의 주택과 비교하면 사생활(밀실성)에 대해 이상할 정도까지 신경을 썼다. 성현상(성적 욕망의 총체)을 위한 밀실성이다.” _야마모토 리켄・나카 도시하루, 『탈주택』, 이정환 옮김(안그라픽스, 2025). 


판소리 

판소리는 수행자의 삶을 요구할 정도로 높은 경지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예술이지만 그 이야기의 내용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마치 신성한 예술과 대중적 서사가 충돌하는 느낌이고 그 괴리에서 오는 긴장감이 가장 큰 매력이다. _이자람

 

[이번주 인물] 32년 만의 연극 복귀 이영애…창작 판소리 개척자 이자람

뉴시스는 한 주 동안 문화예술계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 3인을 선정해 소개한다. 이번 주에는 연극 '헤다 가블러'로 32년 만에 무대에 서는 이영애, 6년 만에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을 펴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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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삶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그날 호두가 민재에게 끝없이 전화를 걸다가 연결되지 않자 끝내 울어버리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_김지현, 「반려빚」,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 2025), 25쪽.

 

풀베개(나쓰메 소세키) 

『풀베개』는 젊은 화가가 온천 마을을 유랑하며 자연과 사람, 예술을 관조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사건이 거의 없고, 갈등도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는 이 정적의 흐름 속에 감정과 이미지, 사유의 결을 치밀하게 깔아놓는다. 화자는 감정에 거리 두며 예술을 위한 관조와 침묵을 실천한다. 삶을 해석하기보다 바라보고 통제하기보다 흘러가게 둔다. 『풀베개』는 운율과 이미지가 살아 있는 절제된 언어로 감각을 담는다. 소세키의 문장은 냉정하지만 미세하게 진동한다. 독자를 재촉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그 대신 더 멀리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덧없는 봄날, 이윤기와 소세키가 조용히 건네는 말[책볼래]

봄을 배경으로 쓰인 문학작품은 흔하다. 하지만 봄이라는 계절의 표층적 이미지를 넘어, 삶의 구조와 정서, 존재의 태도를 사유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이윤기(1947~2010)의 단편소설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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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네시스(phronesis, 실천적 지혜)

실천적 지혜란 단순히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삶의 맥락에서 올바르게 적용하는 판단력을 의미한다. 단순한 정답을 찾기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맥락, 윤리적 기준을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는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_유영만, 『모두 인공지능 백신 맞았는데 아무도 똑똑해지지 않았다』(21세기북스, 2025).

유영만, 『모두 인공지능 백신 맞았는데 아무도 똑똑해지지 않았다』(21세기북스, 2025)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나일강이라는 초기 물류 시스템을 연결한 거대한 국토 통합 프로젝트, 그로 인해 가능해진 파라오 체제의 유지라는 사회적 통치 구조의 상징물이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국가 운영 장치’인 것이다. _유현준, 『공간 인간』(을유문화사, 2025) 

 

학습 

술을 익히는 과정은 세 가지 주요 단계로 나뉜다. 첫째, 탐색 단계로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기본 개념과 원리를 익히는 과정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알파벳과 기본 문장을 익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강화 단계다. 특정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으로, 의식적 연습과 피드백이 핵심이다. 마지막은 기술에 익숙해져 무의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자동화 단계다. 테니스 선수들이 경기 중 반사적으로 움직이거나, 피아니스트가 악보 없이 극강의 연주를 들려주는 경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학습은 ‘탐색 → 강화 → 자동화’의 연속 과정이며, 각각의 단계에서 적절한 학습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뿐 아니라 연구나 학습에 뛰어난 이들도 이 과정을 따른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동기부여는 장기적 학습의 지속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보상과 칭찬 같은 단기적이고 외적인 동기에만 의존하면 쉽게 지치기에 내적 동기를 키워야 한다. 명확한 목표 설정, 작은 성취 경험, 학습을 재미있게 만들기 등이 도움이 된다. 재미와 성취감을 고려해야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모든 학습 과정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동반한다. 학습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뇌와 몸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특정 기술에 대한 선천적인 능력 차이는 존재하지만, 장기적인 성취는 의식적 연습과 효과적인 학습 방법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유전자는 확실히 학습 잠재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과장된 경우가 많다. 신경가소성, 즉 뇌가 스스로를 재조직하고 적응하는 능력 덕분에 재능이 없어도 학습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학습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작은 기술들이 시간에 비례해 변형되고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학습 전략이다. △구조화된 피드백을 바탕으로 연습하는 ‘의도적 연습’ △배우고자 하는 기술을 정신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정신적 표상’ △학습 세션을 시간 간격을 두고 배치해 기억 정착과 통합을 촉진하는 ‘분산 연습’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깊은 집중’이다. 이렇게 하면 뇌가 끊임없이 도전에 대응하며 학습 효과가 극대화한다. ‘의도적 연습’이 제일 중요하다. 의도적 연습은 전문성 개발의 핵심 요소다. 의도적 연습은 현재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과제를 설정한 뒤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반복과 성찰을 통해 기술을 개선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 기술을 잘게 나눠서 연습하고 점진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학습 효과를 높인다. 한마디로, 단순 반복이 아니라 현재 수준을 넘어서겠다는 목표와 의지를 품고 연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목표 설정, 지속적 피드백, 그리고 정신적 표상을 활용한 기술 정교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감각 입력과 운동 기술, 그리고 기억 체계를 활용해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은 무엇을 배우든 중요하다. 언어 학습에서는 반복과 맥락 활용이 어휘가 머릿속에 정착하는 것을 돕는다. 음악에서는 연주자가 특정 부분을 반복 연습하며 유창함을 기른다. 운동선수는 경기 직전 정신적 이미지를 활용해 동작을 시뮬레이션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최종 작품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통해 개념을 정리한다. 깊은 집중을 유지하려면 과제에 온전히 몰입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해 요소를 없애야 한다. 명확한 목표 설정, 과제 세분화, 그리고 번아웃 방지를 위한 짧고 강도 높은 연습이 효과적이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한 분야에서 익힌 기술은 다른 분야로 전이된다. 애슐리 바티는 크리켓을 하면서 손과 눈의 협응, 전략적 사고, 운동 조절 능력을 키웠고 이 능력은 테니스에도 그대로 발휘됐다. 이런 교차 분야 학습은 뇌가 패턴을 일반화해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음악가는 리듬과 구조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언어 학습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손흥민은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 인생 바꾸는 ‘배움의 기술’[이설의 글로벌 책터뷰]

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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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삼국을 구성한 핵심 종족은 예맥족과 한족입니다. 예맥족은 주로 만주와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분포하면서 부여, 고구려, 백제, 옥저, 동예 등의 국가를 만들었어요. 한족은 주로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일대에 분포하면서 삼한을 형성하였고, 이 삼한에서 신라와 가야의 여러 나라가 나왔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예맥족과 한족을 하나로 결합하는 1차 계기가 되었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발해 유민의 흡수는 통합의 2차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가 30여 년에 걸쳐 대몽항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각한 ‘역사문화공동체 의식’에 의해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삼국 분립 의식이 극복되어 단군을 시조로 하는 민족공동체 의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_노종국 

 

행복 

국민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금전적 요인보다 봉사와 선행을 통해 주고받은 심리적 안정이 행복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2025년 세계 주요 국가의 행복 수준과 그 결정요인에 대한 국가별 설문조사(갤럽)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과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웰빙)와 행복 지수가 높다. 심리적 만족의 행복에 대한 영향력이 금전적 요인보다 4~5배나 크다. 예컨대 ‘물리적 폭행을 당했을 때’는 삶의 만족도가 영향받는 비율(상관계수)이 -0.16, ‘수입이 2배가 늘었을 때’는 0.1이었다. 반면 ‘자선활동을 했을 때’는 삶의 만족도에 대한 긍정적 영향 비율이 0.43에 달했고, 잃어버린 지갑을 돌려받았을 때는 0.77로 높아졌다. “주변 사람들이 정직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개인의 행복감을 증폭시킨다.” 실제로 국가 행복지수 부문에서 8년째 1위를 차지한 핀란드를 비롯해, 행복지수 5위권 국가들은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 최정상급 수준이었다.또한 자원봉사, 기부 등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 “자선 활동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롭다. 주는 사람에겐 심리적 활력을 제공하고, 파급 효과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자선활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한다.” 이처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개선하고 사회관계를 강화하며 심지어 수명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행복지수 랭킹에서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최상위권에 올랐다. 5~10위는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노르웨이,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멕시코 순이었다. ‘불행 국가 순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 가장 높았고, 시에라리온과 레바논 말라위 짐바브웨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는 58위(전년 대비 6계단 하락), 미국은 24위였다. 이 수치는 갤럽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세계 147개국의 행복지수를 종합한 결과다. 

 

선행의 행복 기여도, 돈의 4~5배 높다 [세계·사람·생각]

편집자주초연결시대입니다. 글로벌 분업, 기후변화 대응, 빈곤퇴치 등에서 국적을 넘어선 세계시민의 연대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행성에 공존하는 대륙과 바다 건너편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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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perfume)

‘향수’라는 단어의 기원은 ‘연기를 통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per fumum’다. “인간은 처음 훈향에서 올라오는 향기를 사용했을 때부터 그것을 저 높은 곳에 살고 있을 신들에게 보내는 기도나 대화로 인식했을 것이다. 훈향은 메시지를 위로 전달하고, 성스러운 공간을 정화하고, 사람들이 명상과 제례 의식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장미는 꽃 전체를 증류해 향수로 만드는데, 다마스크 장미라는 종을 가장 많이 쓴다. 재스민, 월하향, 히아신스 등 열을 견딜 수 없거나 수확 후에도 향을 발산하는 귀한 꽃은 냉침법(冷浸法)으로 향기를 추출한다. 지방이 냄새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반고체 상태 기름에 향기를 입혀 굳힌 후, 알코올 세척을 통해 향기를 뽑아내는 것이다. 은방울꽃은 향기롭지만 향수 용도로 추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부분에 심장 수축력을 증가시키는 강심배당체와 독이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파는 은방울꽃 향수는 인공적인 화합물이다. 가장 유명한 향수의 하나인 샤넬 No.5는 분리된 향기 분자의 효과에 의존한 최초의 향수는 아니지만, 현대 향수의 상징이 되었다. 꽃향기가 나는 여성에게 염증을 느낀 코코 샤넬은 자신을 위해서 1920년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환상의 향수 제작을 의뢰했다. 그녀가 원한 향수는 여성스러우면서 깨끗하고 우아한 향이 나고,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팔릴 만한 향수였다. __엘리스 버넌 펄스턴, 『향기』, 김정은 옮김(열린책들, 2025)

 

형용사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_앤 카슨, 『빨강의 자서전』, 민승남 옮김(한겨레출판, 2024)

‘빨간 사과’, ‘노란 바나나’, ‘예쁜 여자아이’ 같은 표현에서 형용사는 얼핏 중립적인 수식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명사의 성격과 존재 방식을 규정하고 고정한다. “빨간 사과”는 일반적인 사과는 빨개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앤 카슨은 형용사라는 ‘존재의 걸쇠’를 풀자고 제안한다.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묘사하자는 것이다. _문보영

 

문보영의 ‘지금, 이 문장’ [.txt]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문법 요소인 형용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빨간 사과’, ‘노란 바나나’, ‘예쁜 여자아이’ 같은 표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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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저녁이 밤이 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만으로 하루가 충분해질 때가 있다. _박준,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 

박준,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

 

휴식 

학습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회복이 필수적이다. 뇌는 학습한 정보를 잠자는 동안 정리하고 강화한다. 너무 많은 연습은 인지적 피로를 불러서 학습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짧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 또 수면은 기억력을 강화하고 운동은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켜 학습 효과를 높인다. 결론적으로 ‘끊임없는 연습’이 아니라 ‘효율적인 학습과 휴식의 균형’이 중요하다. _아투로 E. 허낸데즈, 『제대로 연습하는 법』, 방진이 옮김(북트리거, 2024). 

휴식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생존을 위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상태”이다. 잠깐 일하다 말고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켜 유튜브를 보는 건 휴식이 아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에 수동적으로 빠져들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 멈춤은 있지만 집중력과 에너지를 빼앗겨 오히려 회복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 “멈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시간이 긍정적인 방향의 감각이어야, 멈춘 것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나를 회복시킬 수 있다.” 과도한 음주나, 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이 휴식이 되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순간은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와서 오히려 에너지가 방전되는 경우도 많다. 진짜 휴식은 긍정적인 감각이 끝난 후에도 지속돼야 한다. ‘좋은 건 그때뿐’인 활동은 주된 휴식 전략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휴식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서 주변에 두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필요할 때 고요하고 편안하게 쉬거나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이른바 ‘긍정 자원’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무리하게 해외여행을 가거나 호캉스를 가는 것보다 일상에서 짧은 휴식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삶의 만족감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여유 시간이 10분 있다면 잠깐 창문을 열고 햇빛을 보거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고, 1시간이 있다면 산책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을 수도 있다. 2~3시간을 낼 수 있으면 베이킹을 하거나 요가원에 가는 것도 좋다. “공부나 일은 당연히 힘든 것이다. 재미가 있을 때도 있지만, 지속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패나 좌절도 겪는다. 그때 이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휴식’이다. 이게 뒷받침되면 새로운 일을 해도 두려움이 덜하고, 힘든 일에도 도전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 때도 마찬가지. 그 관계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일단 휴식하며 충전을 하면 여유가 생겨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다.” _김은영,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심심, 2025). 

김은영,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심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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